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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슈퍼예산과 민부론, 어떻게 봐야 하나
  •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 등록 2019-11-09 11: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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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 정부가 수립한 예산 안을 설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2020년 예산 심의가 시작되었다. 28일과 29일에는 종합 정책 질의, 30일과 내달 4일에는 경제부처 예산 심사, 그리고 11월 5~6일에는 비경제부처 예산 심사를 하고, 이 기간 각 상임위별 예산 심사도 동시에 진행된다. 11일부터는 예산소위가 가동되며, 11월 29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올해의 예산안 본회의 처리시한은 12월 2일이다. 


# 진짜 슈퍼예산인가? 


다수의 언론과 보수 야당에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다룰 예산이 사상 최초로 500조 원 규모를 넘기 때문에 이를 슈퍼예산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정부여당도 슈퍼예산이라는 말에 적당하게 수긍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513조 원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 돈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는 결코 “슈퍼예산”이 아니다. 이 정도의 예산은 우리나라가 가야할 국제적 표준의 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정도이며, 슈퍼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높은 게 아니다. 국제적 기준에서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언론에서는 ‘경제성장율 보다 높은 재정증가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3년 연속 재정지출의 증가율이 경상성장률의 2배를 뛰어넘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노란색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이들은 “한국의 재정지출 증가율은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고는 항상 경상성장률의 2배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총지출 증가율(7.1%)이 경상성장률(3.1%)의 2.2배였고, 올해는 총지출 증가율(9.5%)이 경상성장률 전망치(2.0%)의 5배에 달할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나랏돈을 마구 풀어 경제위기 때나 볼 수 있는 이례적인 확대 재정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을 늘려서, 또 적자 재정을 편성해서라도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은 정부의 정상적인 역할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국제경제가 어렵거나 내수의 침체 등으로 국내경기가 어려울 때 적극적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원론 수준의 상식이다. 특히 경제신문들은 한편으로는 경제가 위기라고 주장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위기 때나 하는 확장 재정을 편다고 비판한다. 건전한 대안의 제시보다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몰두한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우리나라는 농업 부분의 일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국제기구에 통보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정부의 재정 지출을 경제성장율 범위 내에서만 하라고 했다면, OECD 국가로 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 대부분의 보수 언론들은 국가채무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것인데, 이들은 재정적자 규모가 내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3.6%를 기록하는 등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GDP 대비 46.4%로 급증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부의 예산안대로 해도 내년도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40%를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OECD 평균 국가채무 비율인 110%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고, 재정 건전성 면에서 주요 국가들 중 최상위 수준이다. 


슈퍼예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513조 원이 엄청나게 큰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 재정 규모는 ‘GDP 대비 32.5%’ 정도로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작다.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1조6,194억 달러(1,936.5조 원)로 전 세계 205개국 중 12위였다(세계은행, 2018).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정부의 크기는 33.3%에 불과하다. 이는 OECD 국가들 평균치 42.8%에 비하면 약 10%포인트니 모자란다, 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한 일반정부의 크기(재정 지출)가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비해 연간 약 194조 원이나 작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율 만큼만 재정지출을 증가시키라는 ‘보수적인 주장’은 OECD 최하 수준인 현재의 정부재정 규모를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선진 복지국가의 길로 가지 말자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경제성장율 이상의 높은 재정지출 증가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게 국제적 표준이기 때문이다. 


# 오히려 정부 예산을 줄이자는 민부론, 어떻게 봐야 하나?


얼마 전, 황교안 대표는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경제 정책으로 ‘민부론’을 발표했다. 민부론은 3대 목표로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가구당 연간소득 1억 원 달성, 중산층 비율 70% 달성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4가지 전략으로 1) 국부 경제에서 민부 경제로의 대전환, 2) 국가 주도 경쟁력에서 민간 주도 경쟁력으로 전환, 3) 자유로운 노동시장 구축, 4) 나라가 지원하는 국가 복지에서 민간 주도로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 구현을 제시했다. 


우선 제목만으로도 민부론이 박근혜의 ‘줄푸세’나, 이명박의 ‘747 경제 정책’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서 국가의 개입을 줄이면 기업들이 자유롭게 알아서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민부론이 제시하고 있는 경제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들은 이런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1) 법인세 인하, 2) 가업상속을 위한 상속세법 개편, 3)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도 죄를 묻지 않는 수준으로 기업 경영에서 배임죄 엄격 적용, 4) 규제 중심의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전환하여 불공정 경제 행위나 대기업의 갑질과 부당한 원·하청 관계를 확대하고, 5) 일감 몰아주기 규제완화를 통해 재벌 대기업이 부당 상속을 하거나 대기업의 몸집 불리기를 정당화하자는 등 사실상 친기업적인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또 민부론에서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주장한다. 1) 탄력근무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여 근로시간 단축을 무력화시키고, 장시간 근무를 합법화하고, 2) 근로기준법을 근로계약법으로 전환하여 양자 간의 자유로운 근로계약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도록 하며, 3) 파업기간에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직장 점거를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4) 부당노동행위의 형사적 처벌 규정 삭제를 통해 부당 노동 행위를 해도 형사적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본의 경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상속을 자유롭게 해주며, 중소기업들에 대한 보호를 없애서 자유방임 시장에서 기업들이 각자 알아서 스스로 생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화문에서 촛불혁명이 일어났을 때, 왜 재벌 대기업들조차 박근혜 정부를 외면했는지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다. 그저 지난 10년 보수정부 기간 동안 되풀이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던 낡은 정책들을 ‘민부론’이란 이름으로 표지갈이를 해서 다시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부론’에서는 당연히 예산을 최소한으로 편성하고 예산 증가율도 낮추어 재정의 건전성 확보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초래된 세계적 경제위기나 일본의 경제침탈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 축소로 내수의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현재의 ‘민부론’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예산 국회를 앞두고 언론에서 쏟아지는 기사들은 대부분이 국가의 재정 수입이 적은 문제만을 지적하고 있다. 어느 것이 먼저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복지 지출을 적게 하고, 세금을 적게 부과하니 당연히 조세 등을 통한 재정 수입이 적은 것인데, 재정 수입이 적은 것은 지적하는 언론들은 증세를 해야 한다거나 복지 지출을 늘려 전체적으로 정부 재정 지출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보수 씽크탱크인 안민포럼은 최근 개최된 세미나에서 정부의 재정 지출 규모가 작은 것의 원인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현재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 GDP의 10.4%에 불과하여 OECD 평균치인 2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재정 지출 부족의 대부분이 복지 예산의 부족 때문인 것을 보수 경제학자와 이론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역으로 해석하면 GDP의 약 10%, 즉 매년 약 194조 원 이상의 추가적인 복지 지출을 해야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에 더 활력 있는 경제를 위한 ‘혁신’, 더 따뜻한 사회를 위한 ‘포용’, 더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공정’, 더 밝은 미래를 위한 ‘평화’, 이렇게 네 가지의 목표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첫째, 우리 경제의 ‘혁신의 힘’을 키우는 재정, 둘째, 우리 사회의 ‘포용의 힘’과 ‘공정의 힘’을 키우는 재정, 셋째, 우리의 미래 ‘평화의 힘’을 키우는 재정이 될 수 있도록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미 2007년부터 이런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정치권에 실천을 요구해 왔다. 적극적 재정 확대와 전략적 지출을 통해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로 사람과 사회안전망에 투자하고, 동시에 복지를 통해 내수경제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출해 왔다. 또한 공정한 경제 질서의 구축과 더불어 복지의 적극적 확대 속에서만 “혁신적 경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복지국가를 통한 경제성장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513조 원 이상의 보다 과감한 재정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슈퍼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었다. 또 재정 확대와 조응하는 적극적인 증세에 대한 논의도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정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항상 국회는 예산 심사를 하면서 ‘졸속 심사’ ‘밀실 심사’ ‘쪽지 예산’ ‘정쟁 연계’ ‘지각 처리’ 등 이른바 ‘5대 구태’를 되풀이해 왔다. 그런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어느 때보다 국회의 제대로 된 ‘깊이 있는 예산 심사’가 요구된다. 이번 국회의 예산 심의에서는 오래된 적폐로 지적돼온 이들 5대 적폐를 되풀이하지 말고, 예산안을 둘러싼 민부론과 복지국가론 간 정책 논쟁의 장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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