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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파 세 모녀, 성북 네 모녀,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
  •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의대 교수
  • 등록 2019-11-12 05: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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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나름의 대책을 세웠지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일상적 경제활동을 영위해오던 가계가 갑자기 상황이 어려워져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운 사례를 복지 사각지대 정도로만 간주하는 우리 사회 주류의 인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에는 탈북자 모자의 아사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도 우리 사회의 낮은 연대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 이제 제대로 성찰하고 정치·사회적 논의를 통해 제도적 대안을 합의해야 한다. 


# 성북구 네 모녀와 ‘고독사’의 범주 


성북구 네 모녀는 시신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됐다. 경찰에 의하면 사망한 지 한 달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시신이 방치된 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에 더해, 이번 사건의 경우는 가족·친지 또는 이웃 주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건물 보수를 위해 이 건물을 찾은 리모델링 업체 관계자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경찰에 신고해 발견됐다. 독거노인 등 한 명의 사망이 아니라 네 모녀의 시신이 이런 식으로 발견된 것은 우리 사회의 ‘단절’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잘 보여준다. 타살의 흔적이 없고 유서가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자살로 추정되는데, 결국 제도적 연대가 작동하지 않는 각박한 세상에서 경제·사회적 고립과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 


네 모녀 사건은 몇 주가 지난 후 타인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된 사망 상태를 뜻하는 ‘고독사(孤獨死)’의 범주에 속한다. 고독사는 언론 등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법정 용어가 아니며,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의 근거가 되는 공식 용어도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시사상식사전에서는 고독사를 ‘가족, 친척, 사회에서 격리돼 홀로 떨어져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음에 이르러 오랫동안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로 정의한다. 위키백과에서는 여기에 더해 ’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돌발적인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것인데, 초기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문제로 인한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가 대부분이었지만 개인주의 가치관의 확산 등으로 독신자가 늘면서 경제력이나 연령과 상관없는 고독사도 나타나고 있다‘며 좀 더 진전된 설명을 붙인다.(이상이 칼럼, 국제신문 2018년 5월11일자) 


경제.사회적 고립과 불행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고, 또 오랫동안 아무도 이 죽음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성북 네 모녀 사건은 고독사에 속한다. 여기서 긴 시간 동안 발견되지 못하고 시신이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 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네 모녀의 극단적 선택 그 자체이다. 그런데 위의 두 사실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엮여 있다. 사회 병리적 관점에서 이런 극단적 선택의 본질적 원인이 바로 ‘단절과 고립’이기 때문이다. 즉 ‘연대의 해체’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대가족과 지역사회의 공동체라는 ‘자연적 연대’ 질서가 존재했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이런 자연적 연대 질서가 해체되고 말았다. 그래서 연대의 큰 공백이 생겨났고 지금도 메워지지 않고 있는 바, 단절과 고립은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적 연대의 근거가 된 유교적 공동체주의 대신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개인주의라는 서구적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렸다. 이 과정은 경제·사회적 발전의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기존의 대가족 체제와 마을 공동체 하에서 생애주기에 따라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하던 가족과 이웃들 간의 ‘자연적 연대’가 사라진 바로 그 공백 상태의 방치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수년 동안 발생한 극단적인 선택들과 사망 후 여러 날이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된 일련의 ‘고독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선진 복지국가들은 달랐다. 그들도 역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정에서 오랜 시기 동안 역사적으로 작동했던 자연적 연대 질서의 해체를 경험했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 공백을 메울 새로운 연대의 질서를 제도화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사라진 자연적 연대 질서를 대체할 만한 ‘복지국가의 제도적 연대’를 아직까지 확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경제·사회는 선진 복지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제도적 연대 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채 경쟁만능과 승자독식 체제를 주된 존재 양식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실패한 사람들은 위기·고립과 불행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한다. 


# 정부는 ‘성북 네 모녀’의 위기를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이웃과 왕래 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영위했다고 해도 성북 네 모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왜 몰랐을까,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다. 그렇다면,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적합한 대답으로는 “아니다, 있긴 있다”가 좋을 것 같다.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2016년부터 우리나라도 고립과 불행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를 제도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민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가스 공급 중단 등 29개 지표를 이용해 복지 지원이 긴급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으로 ‘사회보장정보 시스템’ 지금까지 4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성북구 네 모녀의 경우는 이들 29개 지표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된 적이 없었다.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가구는 기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발견되지 못했던 것이다. 각종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해당 구청에 통보되는데, 이번 네 모녀 가구는 체납 기간이 2개월 정도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빠졌다.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에서 경제적 위기 가구로 표시되지 않았으므로 구청에 통보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네 모녀 가구는 단기간에 경제적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경우에 해당할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70대 어머니와 둘째 딸은 월 건강보험료가 최저 수준인 1만3100원 정도로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는’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다. 그런데 이것이 3개월 체납됐다. 셋째 딸은 쇼핑몰을 운영했고 첫째 딸은 이 쇼핑몰에서 함께 일했는데, 이 사업장도 7월부터 3개월 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집 우편함에 은행, 카드사, 신용정보회사 등에서 보낸 채무 이행 통지서가 20통 가까이 쌓여 있었다. 네 모녀는 2016년부터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인 14평짜리 다세대 주택에 거주해 왔는데, 최근 2∼3개월은 월세를 내지 못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네 모녀 가구는 최근 2~3개월 사이에 많은 빚을 지면서 급격하게 생활고에 빠진 것 같다. 결국, 급격하게 경제적 위기로 내몰린 경우엔 기존의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이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으로 잘 작동하긴 어렵다. 


# 성북구 네 모녀는 왜 사회적 조력을 구하지 않았을까? 


살다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위기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이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렸을 때, 이를 극복하려는 당사자들의 노력이 시도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제도적으로 잘 갖추어진 경우라야 극단적 선택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누구라도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자구책으로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사회적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법률적 조력도 있고, 정부의 복지 지원이라는 직접적 조력도 있다. 그런데 왜 성북 네 모녀는 이런 사회적 조력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나씩 따져보자. 


성북 네 모녀 가구의 생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쇼핑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이들이 지게 된 채무가 경제적·심리적 고통의 가중으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 규모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보다 훨씬 짧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런 크고 작은 위기와 도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위기·고통과 어려움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장적 방식을 통해 극복하거나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게 된다. 그리고 경제적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서 도저히 시장적 방식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제도적으로 이용 가능한 법률적 조력 절차가 마련돼 있다. 개인 채무자의 도산 절차가 그것인데, 여기에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절차가 있다. 


‘개인회생’ 절차는 쉽게 말하면 원금을 탕감 받고 일정기간 나누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제도이다. 개인회생 신청 자격은 채무가 재산보다 많아야 하고 소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소득이 있어야 채권자에게 매월 일정금액을 변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심사는 6~8개월 정도 걸린다. ‘개인파산’ 절차는 개인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경우, 채무의 정리를 위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는 파산법원의 재판을 통해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을 면제시킴으로써 채무자의 경제적 재출발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법적 절차는 복잡해서 변호사나 법무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 전화(1644-0120)를 하면 상담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지역마다 있고, 여기서 필요한 복지서비스까지 연계해준다. 그런데 성북 네 모녀는 이런 법률적 조력을 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누구라도 관련 법령에 따라 ‘정부의 복지 지원’이라는 직접적 조력을 요청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은 뒤, 이른바 ‘세 모녀 법’이란 것도 정비됐다. 이런 제도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이런 장치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네 모녀가 정부의 복지를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법’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3가지 법을 말하는데, 이 법들은 2015년 7월부터 시행됐다. 이들 복지 3법의 핵심은 ‘맞춤별 개별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과거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지원 대상이 되면 생계·주거·의료 등 모든 종류의 급여를 받지만 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하면 어떤 급여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법의 개정으로 소득 수준에 따른 개별 급여가 가능해졌다. 또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에 따라 긴급복지의 지원도 확대됐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 처한 복지 대상자의 발굴을 위해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의 정보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했다. 내년부터는 수급자의 재산 기준도 완화된다. 결과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수가 확대되는 것이고, 그만큼 빈자들을 빠짐없이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빈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단계적으로 수용한 것이자, 동시에 ‘송파 세 모녀 법’의 내실을 더 확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사각지대에서 ‘안타까운 죽음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경제사회적으로 무너진 사람들이 공공부조인 선별적 복지를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나 이후에 일어난 여러 일가족 살해·자살 사건들, 그리고 이번 성북 네 모녀 사건의 공통점은 당사자들이 정부의 공공부조를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공부조인 ‘선별적 복지’를 근간으로 짜인 ‘송파 세 모녀 법’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경제-복지 체계, 일자리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중심에 놓는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부조는 여전히 ‘낙인(수치심, stigma)’으로 인식된다. 태풍과 홍수 때 잠시 피신처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공공부조가 극단적 어려움이 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적 조력으로 인식되면 좋겠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 곤경에 처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공공부조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조를 요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결국, 복지에 대한 개념과 인식을 선진 복지국가의 그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복지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가 근간을 이루도록 하되, 그럼에도 부족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을 일정 기간 동안 선별적 복지(공공부조)로 메워주면 된다. 복지 제도를 이렇게 운영하게 되면 선별적 복지에 대한 ‘낙인’은 크게 줄어든다. 당연히 복지 사각지대도 저절로 줄게 된다. 


# 계속되는 ‘안타까운 죽음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현재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은 전기세나 수도세 등의 각종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관련 정보가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에 올라가고, 이런 위기 정보는 각 구청에 통보된다. 기존의 법령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는 6개월 동안 체납돼야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에 등록됐다. 그런데 이것도 지난달부터 3개월 체납으로 변경됐다. 6개월 체납보다는 3개월 체납 시점에서 관련 정보가 구청에 통보되면 위기에 처한 가구를 발견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기간을 단축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잘 작동할 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가 3개월 이상 체납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수백만 가구가 체납되는데, 구청에서 제대로 확인하는 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민원이 빗발칠 개연성이 크다. 건강보험료 3개월 밀렸다고 구청에서 연락하거나 불쑥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찾동’이다. 서울시는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듬해인 2015년부터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찾동)’ 사업을 운영했다. 네 모녀가 숨진 성북구의 경우, 매년 65세와 70세가 된 노인들을 찾동 방문 대상자로 정해 방문 상담을 실시한다. 그러나 사망한 70대 노모는 2016년부터 해당 집에 살았지만 이사 온 당시 이미 70세를 넘어 찾동 대상이 아니었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인 ‘찾동’도 이들에겐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찾동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어땠을까. 긴밀한 대면 상담과 마음이 소통되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그런 상호 관계가 구축됐더라면, 극단적 선택 이전에 이들이 방문 요청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찾동)’ 사업이 내실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상담 능력을 갖춘 ‘잘 훈련된 전문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인력이 다수의 대상자를 행정적으로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주민의 제보 체계를 운영하면서 통장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최대한 연계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노원구의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상당한 복지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 전개될 커뮤니티 케어 등의 ‘지역사회 돌봄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 이하 단위의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연결고리를 확보하고 강화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민생과 복지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크게 존재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경쟁만능과 승자독식의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승자와 패자 간의 거대한 격차, 양극화, 불평등 등 격차사회 대한민국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성찰은 제쳐놓고, 성북 네 모녀 사건 같은 일이 생길 때마다, “왜 그분들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느냐, 발로 뛰고 찾아내서 긴급복지 지원을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지적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위기 가구를 발견하는 방식을 더 열심히 강구하는 것은 부차적인 해법이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의사가 없거나 수급자의 낙인을 거부하면 지방정부가 찾아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네 모녀 사망 사건의 경우도 주민센터를 방문한 두 모녀가 기초연금 지급 계좌를 압류가 들어오지 않는 계좌로 변경했는데, 당시에 주민센터의 직원이 이들에게 상담을 시도했지만 두 모녀가 거부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더 확충하는 식으로 선별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보편적 사회보장과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누구라도 추구·향유할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빈곤층으로 떨어질 확률이 낮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쟁만능주의 체제에서 다수 국민을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해놓고, 일부 극빈자들을 발굴해 선별적 복지로 보호하다 보니,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가공인 극빈자가 되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보편적 사회보장이 제도적으로 잘 작동하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급격하게 무너져내린 상태에서 경제.사회적 고립과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긴급 심리 상담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상담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찾동’이 이런 역할을 하면 좋겠으나 우선은 효과적인 긴급 상담이라도 가능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래서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 복지국가의 지역사회 공동체 구축이 이런 문제의 근원적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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