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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숙련된 도공이 무아지경에서 만든 작품에서 나온다”
  • 박광준 기자
  • 등록 2019-05-06 11:25:28
  • 수정 2019-05-12 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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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흙이 단단한 도자기가 되고 그것이 상품화 되어 판매될 때까지 거쳐야 할 여러 공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상당하지만 여성 도예인을 향한 조명은 아직까지미약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록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여성 도예인의 삶의 기록은 특정한 개인사를 뛰어 넘어 넘는다. 이러한 가운데 스스로 도예의 길을 개척해 온 여성 도예가 손유순(65, 소정도예연구소) 씨를 만났다. 이천 토박이 손 작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도자기로 자신의 삶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손 작가가 도자와 함께 40여 년의 삶을 통해 ‘여성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박광준 기자] 부드러운 흙이 단단한 도자기가 되고 그것이 상품화 되어 판매될 때까지 거쳐야 할 여러 공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상당하지만 여성 도예인을 향한 조명은 아직까지미약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록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여성 도예인의 삶의 기록은 특정한 개인사를 뛰어 넘어 넘는다. 이러한 가운데 스스로 도예의 길을 개척해 온 여성 도예가 손유순(65, 소정도예연구소) 씨를 만났다. 이천 토박이 손 작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도자기로 자신의 삶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손 작가가 도자와 함께 40여 년의 삶을 통해 ‘여성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처음 도자기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손 작가는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았다. 단돈 몇 천원이 없어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가슴 속 깊이 간직 했던 푸른 꿈을 접고, 농사일이나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장시간의 노동과 박봉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더욱이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난 죄로, 조국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아왔다. ”고 말했다. 

 

손유순 작가는 1955년 9월 13일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맏딸로 태어났다. 형제는 3남 3녀로 당시에는 어느 집이나 다산을 하는 시절인데다, 또한 한국 전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자기의 꿈을 버리고 현실에 기대어 먹고살기에 바빴던 그 때, 비록 상급학교 진학의 꿈은 빼앗겼지만 현실의 벽을 향해 옹골찬 도전을 해오며 살아온 맹렬 여성 도예가 손유손. 

그럼 손 작가가 도자기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일까. 도예를 본 적도 권유받은 적도 없었던 손 작가가 어떻게 도자기와 인연이 되었을까. 

 

소정 손유순을 아끼는 신의 섭리일까?

 

1971년 2월 중학교를 졸업하고 합격한 고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설움을 삭이고, 그저 어려운 집안을 원망하면서 지내던 중 무심코 친구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이 ‘해강고려청자연구소’ 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또 그길로 성공하고자 했던 것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됐다. 또한 지금까지 외조를 해주고 있는 반려자를 만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기다림
       
꿈많던
소녀가
도예의
혼으로
재능을
키워온
삼십년
세월의
기다림

 

하늘뜻
섭리에
뽑혀서
수료식
하던날
외롭던
장인길
헛되지
않았네

 

자기위해
가정위해
민족위해
동방에서
서방으로
문화예술
꽃피우리 -2002. 1 20.  

 

 

본 기자는 ‘약 40여년의 세월동안 전통도예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었는지?’에 대해 손 작가는 “1972년 8월 도예의 길로 접어들어서 허드렛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기술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남몰래 어깨너머로 기술을 터득하면서 공부를 할 기회를 찾던 중 1975년 서울창덕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2학년까지 마치고 76년 12월 결혼과 동시에 부풀었던 꿈을 또다시 접게 됐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1983년 5월 5일 한밤중 깊은 잠속에서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얼굴에 불똥하나 튀지 않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멀쩡하게 네 식구가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7살, 5살짜리 두 딸을 맡길 곳이 없어 목에 집 열쇠를 걸어주고 일을 하러 나가면서 어린 두 딸에게 약속을 했단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과자 사줄게”

 

이럴 때 아이들은 “엄마 있을 땐 배가 부른데 엄마가 없으면 배가 고파요. 다른 엄마처럼  우리랑 같이 놀아요. 난 과자 먹기 싫어요”라면서 울고 보채는 딸을 뒤로 한 채 눈물을 삼키며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단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도 손 작가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40여년의 오직 한길 남자들도 가기 힘든 도예의 길을 현재까지도 걷고 있다. 

 

희망 

 

삶속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긴 터널을
거쳐 가니
달려라

 

환난과
핍박
어려움은
한 때
터널 같다.

 

가다보면
수시로
터널 같은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잠깐이니

앞날위해

 

신나게
멋있게

뛰고
달려라     

 

 

1990년 손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였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큰 딸이 중학교 입학을 하던 해 다니던 도자기 공방을 그만두고 ‘소정도예연구소’라는 공방을 오픈한다. 난생 처음 본인의 이름을 걸고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손 작가는 “직장 생활만 하면 딸들에게도 나와 같은 삶을 살 것만 같아서 힘든 상황에서도 큰아이 중학교 입학하던 1990년 3월에 연탄창고로 쓰던 장소를 정리하고 소정도예연구소라는 상호를 걸고 도자기를 혼자서 빚으면서 여러 공모전에 출품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손 작가는 점차 외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각종 도자기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하고, 국내외 전시를 다수 개최했다. 도예발전 공헌대상, 사회발전기여 수상 등과 함께 도예부문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됐다. 이외에도 각종 언론에서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도자 워크숍 초대작가로 선정됐다. 특히 2000년 경기도세계도자기 프로엑스포 경인방송 포커스 토론자로 초대됐고, 2001년 8월 20일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 때 김대중 대통령 접견자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신문, TV, 월간지 등 여러 매개체를 통해 언론에 보도됐다. 

 

정신 생각 줄

 

절벽에서
오로지
줄 하나에
매달린 사람

 

줄에
의지하여
절벽에서
조금씩
올라가고

 

이때
줄을 놓치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돌아올 수
없는 삶


사람이
성공 하려면
정신을
성공해야
하는 것

 

정신 줄과
생각 줄을
느슨하게
잡고 살면

 

인생
절벽 길에서
떨어져
낙오자가
되고 말지

 

조석으로
변하는 마음과
생각의 줄을
꽉 잡아야
인생 성공하지    

 

 

2014년 10월 1일 계간 ‘가온문학’ 가을 창간호 시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손 작가는 국립박물관 견학을 하면서 옛 선인들의 맑고 은은한 고려청자에 반했다. 1998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1년 과정 최고기술자과정 수료를 하면서 남들이 번거로워 사용하지 않는 참나무재유를 1999년 개발했다. 1999년 - 2000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 강의를 하면서 접었던 학업의 꿈을 2000년 3월 서울 경기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졸업했다. 그리고 2013년과 2016년, 그리고 2017년에는 선후배의 만남 시간에 ‘나의 삶’을 시낭송과 작품사진을 보여주면서 강의도 했다. 

 

“천년의 비색을 재현하다”
청자 참나무재유(棌灰釉)
 

은은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의 비색은 어느 나라도 재현하지 못한 고려만의 우수성이다. 그러나 청자 참나무재유의 시유가 까다롭고 번거로워 현재는 산화철(Fe₂O₃)이나 산화크롬(Cr₂O₃)등과 같은 안료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정 손유순 여류 도예가로 옛 고려청자의 맑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전통기법인 참나무재유를 1999년에 개발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해냈다.
 

참나무재유는 박지(剝地), 인화(印花), 상감(象嵌) 기법 등에서 백화장토의 빛이 여느 청자들과는 달리 푸른빛을 전혀 머금지 않는 흰빛 그대로를 나타내게 하며, 상형(象形)이나 투각(透刻) 기법에서는 푸른빛이 고여 있는 느낌이 아닌 맑고 신비로운 비색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소정 손유순 여류 도예가로 비색고려청자 재현으로,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 강사, 2000 - 현재 ‘청자참나무재유’ 에 대한 설명 언론보도 기사, 2001 경기도 세계 도자기 엑스포 개막식 ‘김대중 대통령’ 접견 자 - 재단법인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 2002  국제도자워크샵 초대작가, 2004 경기으뜸이(도자기부문 : 청자 참나무재유 개발) 선정 2005  제20회 경기도 여성상 예능부문 수상, 2005  제3회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클레이올림픽 심사위원, 2009 대한민국환경문화대상 예술부문 수상, 2012 이천시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기념 초대작가로 선정, 손유순 도자전 - 인사동 노암갤러리, 2014 계간 가온문학 창간호 -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손 작가는 지난해부터 모교인 신둔초등학교에서 이천시교육청 지원 사업 초등교과 특성화학교 도예강의와 경기도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기획단 꿈의학교 지원으로 운영되는 사업으로 이천의 특색인 도예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도예가(세라믹 아티스트)’ 라는 꿈을 키우기 위해 모인 학교이다. 학생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미래의 꿈을 직접 그리고 빚음으로써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도예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5월 12일까지 이천도자기축제에 참여 하고 있다. 관람객은 드물게 오지만 내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감상 하면서 방명록에 글을 작성하기도 한다.

 

“선생님 작품 깊이 있게 삶을 담아 놓으셨네요.”  - 심정애

 

“수준이 다른 작품 잘 보고 갑니다.” - 장신영

 

"멋진 작품 잘 보고 갑니다.“ - 조현우

 

“은은한 청자빛깔에 고운 선매는 선인의 숨결을 새로이 느낄 수 있도록 살아 다시 여기 왔나보다.” - 충청도 구인사 수산 스님

 

“아름답고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작품 속에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네요. ”
- 아베 미여코

 

작가노트 

 

웅장한 대우주 신비한 태양계
우주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행성인
지구에 사람이 살도록
생명체 세계로 창조하시고

 

우주만물 중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신비한 값진 보석 인간의 영육을
창조주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해주신 뜻 깨닫도록

 

지식과 지혜 재능의 달란트로
흙을 빚어 문화예술로
꽃피울 수 있게 키워주신
창조주께 감사와 영광.....   

 

손 작가는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도자기와 함께해 왔다. 그동안 청자뿐만 아니라 분청사기, 백자 등 전통도자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현재 손 작가는 여전히 도자기를 빚고 문양을 새긴다. 특히 콜라보전시회를 기획 중이고 우리 도예의 기술과 우리 도자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손 작가는 끝으로 “아름다움은 숙련된 도공이 무아지경에서 만든 작품에서 나온다. 또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빚는 동안에는 어떤 잡념도 침범할 수 없고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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