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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염병 보도는 꼭 무서워야 할까
  • 박성조 기자
  • 등록 2020-03-18 05:15:21
  • 수정 2020-03-18 17: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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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는 감염 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라는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를 다룬다. 이 가상 상황을 통해 영화는 감염 위험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공포를 느끼고, 결국 어떤 혼란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 영화 ‘감기’가 다시 회자된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역주행’하며 온라인 상영관 순위권에 다시 진입했다. 바이러스 감염, 격리, 언론보도와 루머 속에서 커가는 불안감 등이 현재 상황과 유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물론 영화처럼 감염 속도가 빠르지 않고 치사율 100%도 아니지만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만큼은 공감하게 된다. 다만 영화처럼 급격히 진행되어 죽음에 이르지 않기에 집단적인 공포로 발전하지 않을 뿐이다.


언론은 연일 코로나19 상황 보도에 바쁘다. ‘연일’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끊임없이 확진자 수와 발생 지역을 보도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모든 관심은 코로나19 상황에 쏠려 있다. 코로나19는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언론의 보도량도 늘어난다. 사람들의 불안감 때문에 보도량이 늘어났는지, 아니면 보도량이 늘어서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논쟁과 비슷하다. 넘치는 뉴스와 개인의 불안심리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불안의 소용돌이를 만든 가운데,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도 모바일 메신저와 커뮤니티를 타고 퍼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2일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 관련 정보가 넘치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인포데믹(infodemic), 즉 ‘정보감염증’이라고 설명했다.


# '공포와 혐오'라는 쉬운 재료


언론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 자세히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역할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 ‘감기’ 속에서는 정보 통제로 인해 더욱 공포에 빠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정보가 부족하면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믿을 만한 미디어가 정확한 상황 정보를 알리고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보도에 있어서 언론이 비판을 받는 것은 뉴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하나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꼽히는 ‘팩트풀니스’에서 한스 로슬링은 이렇게 썼다. “언론은 우리의 주목 필터를 통과하지 못할 이야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중략)... 언론이 그 본능을 이용해 주의를 사로잡는 탓에 우리는 늘 세상을 과도하게 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극적 본능 중에서도 뉴스 생산자가 정보를 선별해 우리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포 본능이 아닐까 싶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야 할 때, 공포와 혐오는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중국 우한에서 전파됐다는 정보가 알려지자 한 신문은 국내 중국인 밀집 지역 한 곳의 위생 상태를 취재한 르포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 체류 중국인들이 위생에 둔감하다는 내용의 보도는 한국 체류 중국인들을 향한 혐오 조장 의도가 다분했다. 또 일부 매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또는 ‘코로나19’ 명칭을 사용하는 가운데에서도 굳이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 등으로 지역 이름을 붙여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포와 불안감을 자극하는 보도 행태도 많이 지적된다. 한 기사에서는 확진자가 5명에서 25명으로 늘어난 시기를 보도하면서 ‘다섯 배나 증가했다’고 표현했는데, 공포심 자극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보도량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보도 중 확산에 따른 피해를 다룬 기사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예방이나 대응 상황 보도보다 병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기사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시민인식조사 결과 시민들이 관련 보도를 보고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안’(60.4%)이었다.


스포츠 중계를 하듯 숫자를 고쳐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생중계식 보도’는 재난 보도의 오랜 문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보도하면서 ‘○○명 돌파’라는 식의 제목이 곧잘 등장했다. 당연히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언론이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준칙이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가이드라인’이 있고,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만든 ‘감염병 보도 준칙’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정확한 보도와 감염자 인권 보호를 중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감염자 격리 숙소를 멀리서 확대해 촬영하고, 이동 경로를 통해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보도들은 인권 보호를 중시하라는 보도 준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지나친 속보 경쟁으로 감여자의 이동 경로 장소가 잘못 보도되는 초보적인 실수도 있었다. 더 빠르게 더 눈에 띄는 보도 ‘콘텐츠’를 내보내려는 ‘본능’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 미디어를 위한 변명


물론 감염병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혹시 모를 피해를 알려 철저히 대비하도록 만드는 기사도 필요하다. 이번에도 언론 보도가 불안감을 일으켜 국민들이 초기 행동요령을 잘 따랐고, 이것이 초기에 큰 확산을 막는 데 주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공포를 자극하는 ‘나쁜 기사’와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좋은 기사’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같은 내용을 보도해도 수용자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모든 기사를 공포 조장 또는 불안감 자극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제정된 ‘재난보도준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언론의 기본 사명 중 하나”라고 명시하고 있다. 감염병도 물론 재난에 포함된다. 감염병을 보도하는 언론은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함을 의미한다. ‘재난보도준칙’은 뒤이어 이렇게 정했다.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 사람들의 삶의 밀접한 영향이 있는 일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언론 보도보다 루머를 믿는 것은 더 위험하다. 미우나 고우나 언론의 검증은 재난 상황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선언적인 보도 윤리를 넘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 과학기자연구회가 감염인의 구체적인 개인정보 공개 수준을 지역 인구밀도와 같은 특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필요하다. 


‘감염병 보도준칙’은 이 같은 필요를 반영해 ▲신종 감염병의 보도는 현재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달 ▲연구결과가 전체 연구과정 중의 단계적 결과물인지, 최종 연구결과물인지 확인하여 보도 등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감염병 보도준칙’ 내용은 표현에 관련된 부분으로 보인다.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간다 ▲감염병 증상에 대한 자극적인 수식어의 사용을 자제한다 등이다. 필요한 정보를 취재해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면, 보도의 기본적인 원칙도 함께 지켜야 한다. 코로나19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 하는, 남아 있는 ‘좋은 언론인’들의 바른 역할을 기대한다./출처=한림대 건강과뉴미디어 연구센터 웹진 '월간연구동향' 3월호 전문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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