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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근의 기본소득법안과 포퓰리즘 정치
  •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 등록 2020-10-11 0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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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 국회에 기본소득법안 두 개가 발의됐다. 2020년 9월 16일 조정훈 의원 등 14인(조정훈, 이수진<비례>, 김승원, 양정숙, 허  영, 이규민, 류호정, 김민석, 김남국, 이동주, 서영석, 유정주, 양이원영, 민형배 의원)이 ’기본소득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9월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회부됐다. 9월 24일 소병훈 의원 등 12인(소병훈, 김승원, 양정숙, 정성호, 이수진<비례>, 김남국, 허  영, 임종성, 정청래, 주철현, 서영석, 윤재갑 의원)도 ’기본소득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9월 25일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회부됐다.


두 법안은 ‘기본소득법안’으로 제목도 같다. 두 법안의 발의에 참여한 의원 수는 각각 14명과 12명인데, 양쪽 모두에 이름을 올린 의원이 6명이므로 두 개의 기본소득법안 발의에 참여한 실제 의원 수는 20명이다. 300명 중 20명의 국회의원이 기본소득법안 발의에 참여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 소득 불평등의 심화, 저출생·고령화의 위기 등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서둘러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해할 것이 분명한 기본소득 도입을 주창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국회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 조정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조정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은 대한민국의 실거주민(대한민국 국민과 영주자격을 가진 외국인)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금전(또는 지역화폐)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 대통령 소속으로 기본소득위원회(2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를 두도록 했는데, 이 위원회가 연간 기본소득 금액의 결정,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와 평가, 기본소득의 지급 방법, 정비대상제도의 개선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본소득위원회가 기본소득의 효과적인 시행 방법 및 정책적 효과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기본소득실험)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기본소득위원회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기본소득실험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 제17조는 ‘기본소득 예비시행’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본소득위원회는 2023년 이전까지 재정 부족 등의 사유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한민국의 실거주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연령·성별·주거·기타(대통령령이 정한)의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 법안 제18조는 기본소득 금액의 결정을 다루고 있다. 기본소득위원회가 매년 기본소득 금액을 결정하도록 했는데, 기본소득 금액의 상승률 또는 감소율은 연 10퍼센트 이내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기본소득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의 기본소득 금액은 월 30만 원 이상으로, 2024년의 기본소득 금액은 월 35만 원 이상으로, 2029년의 기본소득 금액은 월 50만 원 이상으로 하도록 했다. 더불어, 2029년도 이후의 기본소득 금액은 전년도 GDP의 100분의 10을 인구수로 나눈 금액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 소병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소병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은 기본소득의 목적과 정의 등에서 조정훈 의원 등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다른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법안에서는 ‘국가기본소득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위원회는 기본소득에 관한 주요 사항(기본계획의 수립 및 변경, 기본소득 지급액의 결정, 기본소득 정책 추진에 대한 평가 및 개선)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도록 했다. 이는 조정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이 기본소득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도록 한 것과 다른 점이다. 


국가기본소득위원회(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고, 위원으로는 기획재정부장관 등 관련 부처의 장관이 당연직 위원이 되도록 했고,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중에서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규정했다. 이 부분도 조정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과 차이가 나는데, 조 의원 법안에서는 대통령이 위원장 또는 위원을 임명하기 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위원장 또는 위원이 될 ‘후보’를 국민으로부터 추천받도록 규정했다. 


또 이 법안은 제7조에서 국무총리로 하여금 5년마다 기본소득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했는데, 이 기본계획에는 기본소득의 목표 및 추진 방향, 필요한 재원의 규모와 조달방안, 기본소득에 관한 제도 개선 및 관계 법령의 정비, 기타 기본소득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했다. 이후 이 기본계획은 국가기본소득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도록 했다. 더불어, 이 법안은 제10조에서 지방기본소득위원회를 지방자치단체 장 소속으로 두도록 했고, 제11조에서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중앙의 기본계획과 조화를 이루는 지방기본소득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했다. 


법안 제12조에서 국무총리가 매년 12월 31일까지 국가기본소득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된 다음 연도의 기본소득 지급액을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급 받으려는 사람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기본소득의 지급을 신청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기본소득의 지급을 결정하고, 이를 현금 또는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 제24조에서는 기본소득 특례를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제1항에서는 “이 법에 따라 보장기관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조의3제1항의 개별가구의 실제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로 규정했고, 제2항에서는 “이 법에 따라 보장기관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개인소득세 부과를 목적으로 하는 과세소득이 아닌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3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때까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령별·지역별 대상을 한정하여 우선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기본소득법안은 기본소득의 요건을 제대로 담고 있나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은 ‘국민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현금을 정부가 지급하는 것’이므로 ‘좋은 것’ 또는 ‘의도가 선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고유담론과 무관하다. 기본소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이란 용어의 이런 측면, 즉 보통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우호적 성격의 ‘일반명사’로 이해하는 경향을 악용한다. 기본소득은 고유담론으로 5가지의 요건을 모두 갖출 때라야 기본소득 명칭이 허락된다. 즉, 사회구성원 모두에게(보편성) 개인을 대상으로(개별성) 아무런 조건 없이(무조건성) 매달 지속적으로(정기성) 기본적 생활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충분성)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수년 전에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내부의 조직적 논의를 거쳐 기본소득의 ‘충분성’ 요건을 제외했다. 충분한 금액이 아니라 푼돈을 지급하더라도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이들의 변형된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기본소득 제도의 취지이자 본질적 목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의 실질적 자유 구현’은 실현하기 어렵게 된다. 무차별적 푼돈 지급으로는 실질적 자유가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도 충분성 요건을 갖춘 기본소득 제도는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완전기본소득’ 논리에 따르면, 모두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연간 GDP가 2000조 원이므로 이것의 25%는 500조 원이고, 이를 5200만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월 80만 원씩 돌아간다. 이 금액은 2020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현금 급여인 1인 가구의 생계급여(52.7만 원)와 주거급여(서울 26.6만 원, 광역시 17.9만 원)를 합한 금액과 비슷하다. 2020년 중앙정부 재정이 512조 원임을 감안할 때, 500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기존소득 주창자들은 중간 이행 전략으로 1인당 GDP의 10~15%를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두에게 매달 32~48만 원을 지급하면 ‘부분기본소득’이 성립된다. 월 32만 원씩 지급하려면 GDP의 10%인 200조 원이, 월 48만 원씩 지급하려면 GDP의 15%인 300조 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의 충분성 요건과 관련해 이번에 국회에 발의된 두 기본소득법안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조정훈 의원 등의 법안을 보면, 제18조에서 기본소득위원회가 매년 기본소득 금액을 결정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의 기본소득 금액은 월 30만 원 이상으로, 2024년의 금액은 월 35만 원 이상으로, 2029년의 금액은 월 50만 원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더불어, 2029년 이후의 기본소득 금액은 전년도 GDP의 10% 이상을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도록 했다. 이대로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2024년 이후부터 1인당 GDP의 10~15%를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을 실현하게 된다. 이런 부분기본소득 방안은 2019년 발표된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에 구체적으로 잘 담겨있다. 그런데 이 방안은 기본소득의 논리적 결함과 한계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도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 같다. 이 법안 제17조에는 ‘기본소득 예비시행’이 규정돼 있는데, 2023년 이전까지 재정 부족 등의 사유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본소득위원회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연령·성별·주거·기타(대통령령이 정한)의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가령, 24세 청년이나 농촌 같은 특정 지역 등 각종 기준에 따라 선별적 기본소득을 지급해도 좋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의 요건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보편성’인데, 이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방식의 현금 지급에 대해 기본소득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명백하게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와 관련해 더 심각한 것은 소병훈 의원 등의 법안인데, 이 법안은 조정훈 의원 등의 법안과 달리 매달 지급할 기본소득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자체가 아예 없다. 다만, 법안 제12조에서 국무총리가 매년 12월 31일까지 국가기본소득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된 다음 연도의 기본소득 지급액을 고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기본소득 지급액 월 35만 원 등의 방식으로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진 못하더라도 언제부터 전년도 GDP의 몇 퍼센트(%) 이상을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식의 규정조차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법안이 이재명 지사 등의 ‘푼돈 기본소득’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푼돈 기본소득이 우리나라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얼마나 해로운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글을 통해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 5일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증세나 재정건전성 훼손 없이 기본소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공개토론을 제안했었다. 그는 첫해 연간 2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증액하여 수년 내에 연간 50만 원까지 만들면 재정 부담은 연간 10~25조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일반회계예산의 조정을 통해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럴 경우 5200백만 국민에게 나눠줄 현금은 첫해 월 1만6천 원이고, 수년이 지나도 월 4만 원에 불과하다. 그 후에는 증세를 하자는 것이므로 그의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딱 여기까지다. 문제는 월 1만6천 원은 ‘부분기본소득’인 월 32만 원의 5%에 불과한 ‘푼돈’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나는 “20% 알콜을 소주라고 부른다면, 1% 알콜은 확실히 가짜 소주”라고 수차례 비판했다. 


이재명 지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토보유세로 연간 15~20조 원을 걷어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국민 1인당 매달 2만4천~3만2천 원씩 돌아간다. 정부 재정 15~20조 원을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다 보니, 이렇게 ‘푼돈’이 되고 만 것이다. 이 금액을 모두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실질적 자유’가 구현될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실질적 자유의 구현이라는 기본소득 담론의 철학과 비전을 상실한 ‘푼돈 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임이 분명하다. 배척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이것이 복지국가의 미래를 망칠 ‘포퓰리즘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병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은 이재명 지사의 온갖 ‘가짜 기본소득’이 대한민국 정치에 똬리를 틀 수 있도록 합법적 틀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이다. 


소병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 제24조가 규정하고 있는 기본소득 특례는 “이 법에 따라 보장기관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조의3(소득인정액의 산정) 제1항의 개별 가구의 실제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기본소득 금액을 개별 가구의 ‘공적 이전소득’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수급 가구가 기본소득을 받은 후 그 금액만큼을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생계급여에서 삭감 당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원칙적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기존의 현금성 복지를 모두 폐지하고(사회보험은 제외하더라도), 여기서 나오는 재원에다 추가적 세수를 더함으로써 ‘충분한 기본소득 금액’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 그런데 이 법안의 해당 조항은 기존의 현금성 복지는 그대로 둔 채, ‘푼돈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에 해당한다. 


게다가 기본소득법안 제24조 제2항에서는 “이 법에 따라 보장기관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개인소득세 부과를 목적으로 하는 과세소득이 아닌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가 지급된 기본소득에 대해 과세한다는 기획과 다른 점이다. 왜 그럴까? 원칙적인 의미의 부분기본소득을 설계하자면, 필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LAB2050의 국민기본소득제의 경우처럼 기본소득 지급액을 과세대상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푼돈 기본소득이라면 굳이 과세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재명 지사의 경우처럼 국토보유세로 연간 15~20조 원을 걷든 아니면 기존의 정부 재정에서 빼내든 국민 모두에게 월 2만4천~3만2천 원씩의 ‘푼돈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이 금액에 과세를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전 국민 기본소득 로드맵’에 의하면, 1단계엔 국민 모두에게 연 1회 15만 원씩을 지급하는데, 여기에 연간 7.8조 원이 소요된다. 2단계엔 연 2회 15만 원씩(연간 15.5조 원 소요), 3단계엔 연 4회 15만원씩(연간 31.1조 원 소요), 그리고 4단계 이후부터는 매달 15만 원 이상을 지급하도록 기획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 등 푼돈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권력의 의지에 따라 기본소득 1단계와 2단계는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간 7.8조 원에서 15.5조 원의 재정을 마련함으로써 이런 식의 푼돈 기본소득은 충분히 실행 가능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소병훈 의원 등의 기본소득법안은 제3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때까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령별·지역별 대상을 한정하여 우선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령, 청년이나 농촌 등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결국, 이들 기본소득법안은 현재 경기도가 조례를 통해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청년기본소득·농민기본소득·농촌기본소득 등의 ‘가짜 기본소득’, 즉 기본소득의 보편성 요건을 어긴 선별적 기본소득을 옹호해주는 엉터리 법안이자 포퓰리즘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 기본소득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


나는 기본소득 도입을 반대한다. 혹자는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와 양립 가능하며, 심지어 보편적 복지국가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단언컨대, 이는 기본소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치적 이유로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제대로 살펴보자. 누진적·보편적 조세(증세) 원리에 따라 정부 재정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은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가 동일하다. 환경 관련 세금을 부과하거나 인공지능·데이터를 이용해 큰돈을 번 기업이나 고소득자·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자는 것도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복지’나 맥락이 같다. 다른 점은 이렇게 마련한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배분)하는가, 바로 이 부분이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에게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즉, 보편적 복지는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 보장’을 의미한다. 보편적 복지의 ‘소득 보장’에는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이 있다. 사회보험은 소득 단절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산재·고용·질병보험·국민연금)이고, 사회수당은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인구에게 정부가 재정에서 매달 현금을 지원하는 제도(아동·장애인·노인수당 등)이다. 다음으로 ‘사회서비스’에는 일생에 걸쳐 작동하는 보육·교육·의료·요양과 직업훈련·평생교육·일자리의 보장뿐만 아니라 보편적 주거 보장도 포함된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즉, ‘① 대상자 모두를 포함’하고 ‘② 적정 수준의 보장성을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실질적 보편주의’(사각지대 없는 보편적 복지)이다.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를 위해서는 큰 재정 지출이 요구된다. 경험적으로 GDP의 약 25%가 공공사회복지에 지출돼야 이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복지 지출의 비중이 GDP의 11%로 OECD 평균(20%)의 55% 수준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실질적 보편주의’를 달성하는 한국적 복지국가 건설이다. 시급한 것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양질의 고용을 확충하는 일이며, 동시에 보편적 복지(소득과 사회서비스 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이 길을 빠르게 달려왔다. 가던 길을 재촉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나눠주면서도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심지어 20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두 개의 기본소득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기본소득이 학술적 논쟁을 넘어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들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 부분기본소득이든 푼돈기본소득이든, 진짜기본소득이든 가짜기본소득이든, 모두 ‘포퓰리즘 정치’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국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은 제도의 작동 원리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재정 지출을 놓고 서로 경합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무차별적 보편성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보편적 복지국가는 각종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생애주기에 따라 복지 필요가 발생했을 때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충분한 지원을 받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사회보장)에 비해 ‘복지 효과’가 현저하게 작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이나 각종 복지(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안전망과 복지체제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다. 가령, 실업의 경우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충분히 지급된다. 우리나라도 월 160만~198만 원을 지급한다(2019년 고용보험 재정 연간 9.3조 원 소요). 선진국들은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훨씬 높다. 그런데 GDP의 10%짜리 부분기본소득(연간 200조 원 소요)의 경우라도 기본소득 지급액은 1인당 월 32만 원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은 소액의 현금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에 비해 필요 충족의 ‘복지 효과’가 작다. 


둘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사회보장)에 비해 ‘경제 효과’가 현저하게 작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경기 침체 때 한계소비성향이 큰 실업자와 경제적 약자들이 충분히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한다. 가령,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빈자가 많아지면 고용보험과 공공부조 등이 작동해 정부 측에서 가계(시장)로 재원이 이전돼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반대로 경기 활성화 때는 고용보험과 공공부조의 지출은 줄고 세금 수입은 늘어나므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줄어든다. 사회보장의 ‘경기조절 기능’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언제나 모두에게 소액의 동일 금액을 나눠주므로 소비 진작의 경제 효과가 작고, 경기조절 기능은 아예 없다. 


셋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기 때문이다. 누진적 증세를 추진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핵심은 급여 방식의 차이다. 획일적 평등 급여인 기본소득보다 형평 급여 방식인 보편적 복지에서 소득재분배 효과가 훨씬 더 크다. 게다가 부분기본소득 지급에 사용될 연간 약 200조 원 중에서 100조 원 정도는 기존 복지의 구조조정으로 마련한 것인데, 사회적 위험(실업·빈곤 등)에 처한 경제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받던 100조 원의 공공복지를 회수해서 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므로 기본소득은 역진적 재분배를 초래하게 된다. 어렵게 마련한 정부 재정을 ‘보편적 복지’에 투입하는 것이 ‘기본소득’ 방식보다 소득재분배에 훨씬 유리하다. 이는 각종 사회적 위험과 복지 필요 상황에 처할 확률이 경제사회적 약자에게서 더 높기 때문이다. 


#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제대로 건설해야! 


최근 국회에 제출된 기본소득법안들은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고도화 등에 따라 전통적 산업 기반이 변화되면서 고용 불안, 소득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법안의 ‘제안 이유’로 들고 있다. 더불어, “혁신기술의 도입을 통해 생산성은 증대되었으나 고용의 기회는 줄고 있고, 생산성의 증대로 생겨난 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특정 소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됨으로써 빈부격차가 커지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이들 문제의 해법이 기본소득일 수는 없다. 북유럽을 위시한 제대로 된 보편적 복지국가들은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실질적 보편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기본소득 담론은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면서 기본소득 도입의 불가피성을 설파해왔다. 그런데 주요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를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도 없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가 플랫폼 경제의 진전과 고용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조건 변화에 능동적·제도적으로 대응하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보험도 전통적 고용 관계의 임금이 아닌 소득 중심으로 제도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있다. 보편적 복지가 혁신기술의 도입과 노동시장의 변화 등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식으로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획일적 현금 제공은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심 조장에도 불구하고, 장차 예견되는 일자리와 고용 구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무정부적 기본소득의 배분보다 책임성 강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재정적 역할(교육·훈련 강화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사회서비스 확충 등의 일자리 정책, 인적·사회적 자본 확충, 능력배양과 기회의 평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또 기존의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복지 행정의 복잡성과 비효율성 문제는 각종 전산시스템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활용 등으로 문제의 크기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중복 수혜나 복지 의존 등의 도덕적 해이도 이후 보편적 복지국가의 보편성과 포용성을 확대하고 지역사회의 참여와 연대 등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이지,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최근 제출된 기본소득법안들은 “기존의 선별적 복지로는 새로운 시대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인위적으로 ‘선별적 복지 대 기본소득’의 구도를 설정했다. 이는 진실의 왜곡이다. 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고, 최근 20여 년에 걸쳐 보편적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설할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사회보장)와 기본소득을 대비시키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명백하게 말하자면, 기본소득의 보편성(또는 보편주의)은 보편적 복지의 보편성과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기본소득은 ‘무차별적 보편성’일 뿐이다. 


이에 비해, 복지국가의 보편주의(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보장을 의미한다. 즉, 무차별적으로 아무 때나 모두에게 복지가 제공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 필요(욕구)가 발생했을 때 충분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기본소득법안에서 보는 것처럼 ‘기본소득이냐 선별적 복지냐’, 이런 식의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포퓰리즘 정치’에 가까울 뿐이다. 


또, 기본소득법안들은 마치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진실은 정반대 편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에 비해 원리적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게 뒤떨어진다. 기본소득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현금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개인 단위로 소득재분배 효과를 계산할 때보다 이를 가구 단위로 환산해보면 결과는 더 한심해진다. 왜냐하면 상위 소득계층일수록 가구원의 수가 많고, 하위 소득계층은 대부분이 1인 혹은 2인 가구이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현금을 무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은 결국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게 뒤떨어진다. 


최근 제출된 기본소득법안들은 공유자원과 공공의 기여에서 나오는 부(wealth)를 모두에게 분배하는 게 옳다는 주장을 편다. 이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공유부(common wealth)를 모두에게 현금으로만 배분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나는 공유자원과 공공의 기여에서 나오는 부를 사회서비스 형태로 모두에게 분배하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누구나 일생에 걸쳐 필요로 하는 보육.교육.직업훈련.고용·의료·요양·돌봄·주거 등의 질 높은 사회서비스를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할 수 있다면, 이는 복지-일자리-경제의 유기적 발전에도 기여하고 장차 4차 산업혁명시대를 제대로 준비하는 중대한 방책이 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복지체제에서 ‘실질적 보편주의’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이며, 지금 우리가 서둘러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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