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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60] 극단 시민극장, 임정은 협력연출 ‘변신’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0-10-18 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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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공간 아울에서 극단 시민극장의 프란츠 카프카 작, 장경민 재구성 연출, 임정은 협력연출의 ‘변신’을 관람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유대계 독일 작가로,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카프카는 프라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한 보험국 관리로 일하며 밤에는 필사적으로 글을 쓴 사람이다. 프라하와 자신의 답답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했건만 결국 떠나지 못한 사람, 세 번이나 약혼하였으나 평생 독신이었다가 마흔한 살 생일을 앞두고 결핵으로 죽은 사람, 문학에 유래없을 만큼 모든 것을 걸었으면서도 작품을 불사르게 하고 나머지도 없애라고 유언을 하고 간 작가 등이 카프카에 대한 요약일 것이다.  


1922년에 ‘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장경민 연출은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일천구년 궁’ ‘위대한 선택’으로 충북 연극제에서 연출상을 비롯해 대상수상을 했다.


임정은은 서울예대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들풀2, 비극의 일인자, 우정어린 두 여자의 낯 뜨거운 이야기에서 호연을 보였다.


무대는 흰 천을 여기 저기 늘어뜨려 놓고, 주인공이 하나 하나 치우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중앙에 커다란 기둥에 높고 낮은 철봉 형태의 조형물을 연결시켜, 주인공이 마치 기계체조 선수처럼 철봉조형물을 옮겨 다니며 매달려 연기를 한다. 장면변화에 따라 출연진이 의자와 탁자를 배치하고, 주인공의 회사 지배인이 등장해 책을 보며 해설자 역할을 한다. 앉은뱅이 모습의 세 명의 출연진이 커다란 공 같은 원형의 의상을 입고 출연을 한다.
 


연극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어 깨어난다. 그는 출장 영업사원으로서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다섯 시에 기차를 타러 가야 하는 고달픈 신세다. 천식을 앓는 어머니,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17살도 안 된 여동생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 온 성실한 남자다.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도 출근하지 않으니 회사 지배인은 직접 찾아와 주인공이 왜 출근을 하지 않았냐며 따져 뭇는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말은 인간이 아닌 벌레의 언어로 바뀌었기에 예전과 같은 의사소통은 전혀 불가능하다. 


마침내 그가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배인과 집안 식구들은 모두 경악한다. 지배인은 도망가고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주인공을 돌봐주기 시작하지만 생계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마련하자 갑충으로 변한 주인공을 귀찮아하게 된다. 특히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주인공이 도우려던 여동생은 노골적으로 오빠를 매몰차게 대한다. 견디다 못해 주인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는 ‘변신’을 한국 최초로 번역 소개하면서, ‘변신’은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가 “이 벌레 같은 녀석”이라고 화를 내자, 그대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가 되자, 가족의 멸시를 받는 상황에 빠진다. 여기서도 카프카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카프카의 무의식을 우리는 떠올려 볼 수가 있다. 또한 확실한 것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잠자(S.A.M.S.A)는 카프카(K.A.F.K.A)가 자신의 이름처럼 자음-모음-자음-자음-모음 패턴으로 지은 이름이다.
 
카프카는 후기에는 국가나 법, 관료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오늘날에는 ‘아버지’라는 남근적 존재를 국가, 관료제 같은 ‘대타자’와 연결 짓는 것이 낯설지 않다. 카프카가 글을 쓰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당시에도 정신분석학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프카 역시 당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국가나 법, 관료제에 대한 관심을 카프카의 ‘사회비판적 의식’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카프카는 결국에는 모두 받아들인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쓰지만, 끝내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카프카는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6개월 정도의 베를린 여행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날 카프카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가 될 줄 본인은 절대 몰랐다.
 
그리고 카프카는 죽어서는 아버지와 함께 묻히게 된다. 죽어서도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카프카의 운명이었다.
 
이상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번역한 전영애 교수의 글이다.전영애는 1974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할 때 서울대 문리대 전체 수석을 했다.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튀빙엔 대학과 칼 대학에서 수학했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8~2013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을 겸임했다. 2011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주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 같은 해 서울대 교육자상을 받았다. 서울대에서 20여 년 동안 교양 과목으로 ‘독일 명작의 이해’를 강의했다. 수업을 통해 연을 맺은 제자들은 졸업 후에도 오마토(5월 마지막주 토요일)와 시마토(10월)란 모임으로 만난다.저서로는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 ‘괴테와 발라데 ‘서·동 시집 연구’(공저) ‘독일의 현대문학: 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저서와 연구서를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다. 


시집으로 ‘카프카, 나의 카프카’와 독일어로 쓴 ‘Regenbogen für Franz Kafka(프란츠 카프카를 위한 무지개)’가 있다. 번역서로 ‘괴테 시 전집’ ‘서-동 시집’ ‘데미안’ ‘나누어진 하늘’ ‘보리수의 밤’ 등 60여 권이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의 주인공은 생각하는 벌레다, 다시 말해 몸은 벌레이나, 영혼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주인공은 변신 이전의 부정하고 싶은 상태에서 벗어나, 오히려 생각하는 존재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벌레가 되면서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할까.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벌레 같은 삶을 살던 과거와, 벌레이면서 새로운 삶,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현재가 교묘하게 병치된다. 무엇이 벌레이고 무엇이 인간인가? 주인공이 생각하는 벌레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시종 일관 연극 속에 명료하게 강조되고, 관객에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각자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현실에 대한 깊은 생각과 함께 극장을 나서게 되는 연극이다.
     
이호림, 한진우, 김채원, 민채연, 이동협, 임종현, 정수련, 정서윤 등 출연자 전원의 열과 성을 다한 호연과 열연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의 기계체조선수를 연상시키는 열연도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제작 주관 후 플러스, 주최 극단 시민극장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원작, 장경민 재구성 연출, 임은정 협력연출의 ‘변신(變身)’을 독특하고 새로운 표현형식의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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