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정기의 공연산책63] 관악극회, 최종률 연출 ‘동굴가족’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0-10-26 04:06:35

기사수정


예그린씨어터에서 관악극회의 윌리엄 써로연 작, 김기팔 번역, 최종률 연출의 ‘동굴가족’을 관람했다.


윌리엄 써로연(William Saroyan)은 19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프레즈노에서 아르메니아 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작가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난으로 인해 그와 동생들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오 년 뒤 그의 가족은 다시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사로얀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해야 했다. 써로연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버지가 쓴 작품을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1930대부터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1933년에는 시라크 고리얀이라는 필명으로 아르메니아의 한 잡지에 ‘부서진 바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4년 잡지 ‘스토리’에 실린 단편 ‘공중그네를 탄 용감한 젊은이’는 써로연의 첫 성공작으로, 대공황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가난한 젊은 작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후 써로연은 프레즈노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애환을 담은 작품들을 활발히 발표했고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43년 출간된 ‘휴먼 코미디’는 2차 대전 당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가상의 도시 이타카를 배경으로, 전보 배달원 소년 호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타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내 큰 호평을 받았으며,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 소설가인 동시에 극작가이기도 했던 써로연은 1939년에 발표한 희곡 ‘네 인생의 한때’가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자 상업이 문학을 판단하는 것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내 이름은 아람’(1940) ‘웨슬리 잭슨의 모험’(1946) ‘록 워그럼’(1951) ‘트레이시의 호랑이’(1952), 희곡 ‘내 마음은 고원에’(1939) ‘아름다운 사람들’(1941) 등이 있다. 20세기 미국의 주요 작가로 평가받는 윌리엄 써로연은 1981년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캘리포니아와 아르메니아에 반씩 뿌려졌다.  


번역을 한 김기팔 (본명 김용남) 작가는 1937년 7월 13일 평양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재학시절 KBS 대학생극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산울림 이야기’로 1등을 차지하고, 1960년 KBS 라디오 연속극 현상공모에 ‘해바라기 가족’으로 당선되어 방송계에 등단했다. 


1963년에 개국한 동아방송에서 1968년 ‘한국찬가’ 1970년 ‘정계야화’ 같은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집필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TBC-TV에서는 연속극 ‘춘하추동’으로 많은 시청률을 올렸으며, 1969년 MBC-TV의 개국 드라마 ‘사랑과 슬픔의 강’을 집필하고 1980년대에 이르러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을 비롯하여 ‘야망의 25시’ ‘아버지와 아들’ ‘억새풀’ 등의 연속극과 1990년대에 집필한 ‘땅’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방송극에 민주와 정의를 방송극의 주제와 내용으로 한 드라마를 씀으로써 민주화의 한줄기 불빛이 되어 이 땅을 밝히고, 철학과 의식이 분명한 방송작가로서의 활동을 벌이다 1991년 12월 24일 55세의 나이로 요절한 불세출의 작가다. 


특히 ‘춘하추동’과 ‘사랑과 슬픔의 강’은 필자가 연기자로 활동을 하던 시절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이기에 감회가 깊다.



윌리엄 써로연의 동굴가족(원제: 혈거부족(穴居部族)은 김기팔 선배가 대학 재학시절에 번역해 서울대극회에서 황은진 연출, 김동훈, 정행도, 김지하, 박경수 외 다수 연극회원이 출연해 원각사에서 공연했고, 뒤이어 필자가 연출한 서울미대 공연에서는 국전 동양화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한 황창배가 대왕, 조각가 최남진이 공작, 극작가 장소현이 곰, 민정기 화백이 미소년, 윤숙희가 소녀로, 모두 재학시절에 출연해 갈채를 받았다.  .


1910 10월 16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행해진 한국언론학회 미디어발전 공헌상을 故 김기팔 선배가 수상하게 되었고,시상식장에는 최현철 한국언론학회 회장, 오연천 서울대학교 총장, 극단신협대표이며 연출가 전세권, 극작가 조성현이 필자와 함께 자리해 수상을 축하했다.


1992년 故 김기팔 선배의 추모비를 시인 김지하의 비문과 조각가 심정수의 제작으로 고양시 장곡동 통일공원에 건립했는데, 2010년 10월 16일 고 김기팔 선배의 ‘한국언론학회 미디어발전 공헌상’ 시상식장에서 김기팔 선생을 대신해서 수상한 필자가 답사에서 낭송한 비문의 추모시를 소개한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새다가 신 새벽에 돌아가셨다
밤새 사악한 무리를 질타하고,
한 품은 이들을 달래시던 님은
민주와 통일의 먼동이 틀 무렵 기어이 돌아가셨다.
그리던 북녘고향 저만큼 보이는 곳에서 님이여
아직도 걷히지 않는 어둠을 지켜,
다가올 대낮으로 증거하시라.


최종률은 서울대 미대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연극 ‘금관의 예수’(극단 상설무대) ‘낮은 데로 임하소서’(극단 에저또) ‘사랑의 전화’(민중 극단) ‘루터’(극단 증언) ‘빈 방 있습니까’ (극단 증언) ‘챔피언 쉽’(극단 학전) ‘유리동물원’(극단 소리) ‘가마솥에 누룽지’(극단말죽거리) ‘엄마의 계절’(극단 JD씨어터) ‘The Miracle Worker’(헬렌 켈러) (극단AM), 뮤지컬 ‘바람처럼 강물처럼’(민중극단) ‘꿈꾸는 시계바늘’(극단 낮은 울타리) ‘오, 마이 갓스!’(극단 나들목) ‘건맨’(극단 너른마당) ‘그’(He)(극단 우물가) ‘킹’(The King) (극단 예맥) ‘모정의 세월’( KBS 탤런트 극회), 오페라 ‘사랑의 묘약’ ‘Carmen’, 극작 ‘빈 방 있습니까’ ‘달맞이꽃’ ‘그’(He), ‘The King’ 등을 연출한 한동대 겸임교수이자 대학로 동숭교회의 장로다.


무대는 전쟁의 참화로 가옥과 건물이 파괴된 도시 언덕에 극장건물이 남아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평생 활동을 벌였던 배우, 오페라 프리마돈나, 복싱 챔피언, 거리의 흥행사 등이 공연활동을 벌일 수 없어 걸인이나 다름없는 구걸행각을 하며 어렵게 살아간다. 그러나 자존심은 있어 함께 거주를 하는 인물에게 대왕, 여왕, 공작 같은 호칭을 하며 자신들의 신세를 비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낡아 너덜너덜해진 커튼, 변변한 침대하나 구하기 힘들기에 낡은 침대나, 침대로 사용할 수 있는 조형물을 늘어놓고, 매일 구걸을 하며 세월을 보내는 바로 이 무대에 폭음소리에 놀란 소녀하나가 등장을 한다. 


권투선수 덕분에 부모도 집도 없는소녀는 극장에 머물 수 있게 된다.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들었기에 소녀의 등장은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생각조차 못하던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고, 사랑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에 곰을 데리고 흥행을 하던 거리의 흥행사가 아내의 분만장소를 찾아 이 극장무대로 찾아들게 되고, 아기가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권투선수는 몇 군데 안 되는 상점에서 우유를 몰래 집어오면서 가게 주인인 벙어리 미소년이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극장 속에서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하는 인물들을 본 미소년은 우유를 들고 나가려다가 소녀에게 우유병 들은 상자를 통째로 주고 떠난다. 


미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극 속에서 살포시 피어오른다. 대왕은 구걸행각을 나갔다가 신발 한 짝 만 신고 들어온다. 그리고 도시건물 철거반원들에게 구두 한 짝을 걸고 연기를 보여 음식을 얻으려 했다가 실패해, 구두만 잃고 돌아 온 이야기를 자조와 한탄하듯 들려준다. 그러나 후반에 극장건물을 부수러 온 철거반장은 극장 안에 거주민들이 있음을 알게 되고, 거주민들의 대표가 자신들에게 연기를 보여준 나이든 배우였음을 알게 되면서, 노배우의 연기로 인해 사실 자신은 눈물을 흘렸다며 대왕의 신발을 돌려주도록  한다. 


권투선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에게 권투선수는 자신은 상대가 아니라며 벙어리 미소년을 데려다 소녀에게 다가가도록 한다. 소년과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깊은 포옹을 한다. 


대단원에서 철거대상이 된 극장을 떠나며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새로운 극장을 향해 떠나가는 장면과 노배우의 독백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국보급 국민배우 이순재 원로배우가 대왕으로 출연해 연세에 어울리는 적역을 맡아 혼신의 열정으로 일생일대의 명연을 해 보인다. 나호숙이 여왕으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박재민이 권투선수인 공작으로 출연해 작중인물에 부합한 체격과 용모는 물론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일신에 집중시킨다. 지주연이 소녀로 출연해 남성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모습과 호연으로 극에 활기를 제공한다. 김인수가 흥행사로 등장해 유쾌한 개성창출로 그늘진 무대에 모닥불 역할을 한다. 


이유빈이 임산부외 1인 다 역으로 호연을 보인다. 김태진이 곰으로 출연해 실제 곰이 아닌가 할 정도로 관객의 착각을 유도한다. 길지혁이 벙어리 미소년으로 출연해 여성관객의 호감을 산다. 유정기가 철거반장으로 출연해 능숙하고 능란한 연기로 철거반장 역을 200% 살려낸다. 김보람이 철거반원으로 출연해 역시 호연을 보인다.  정창욱, 박우열, 이규빈, 정인범, 허은영, 태윤이 더블캐스팅되어 출연한다.


예술감독 이순재, 조연출 김혜수, 무대감독 김태진, 무대디자인 최종률, 무대제작 드림아트, 조명 김종호, 음악 음향 박상철, 의상 하경희, 분장 조성환 주선진, 안무 양동탁, 사진 윤정기, 제작총괄 윤완석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관악극회의 윌리엄 써로연 작, 김기팔 번역, 최종률 연출의 ‘동굴가족’을 통해, 전쟁의 참화로 TV방송국은 물론 운동경기장 또는 극장이 파괴된다면, 공연예술가들이나 운동선수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걸인처럼 구걸행각을 해야 함을 이 극을 통해 제시한 공연이라 평하겠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