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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적연금 개혁으로 노인 빈곤 악순환 고리 끊어내자
  • 이재섭/서울신학대학교 교수
  • 등록 2020-11-01 02:11:09
  • 수정 2020-11-08 09: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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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와 행정부는 지금 국정감사에 바쁘다. 예년 같았으면 신문이나 방송에 크게 부각됐어야 할 국민연금 개혁 이슈들이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연금특위에서 국민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 결과를 정부에 통보한 지도 1년이 넘었다. 


# 표류하는 국민연금개혁 논의, 누구의 책임인가?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성화에 밀려 마지못해 정부입법안을 만들어보겠다던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회 주도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만들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인다. 지금의 형국이라면 국민연금개혁 논의는 언제 재개될 지 가늠할 수 없다. 왜 이럴까? 먼저 그 이유부터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국민연금 개혁 논의보다 시급한 국정과제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남·북·미 대화, 일본의 경제 제재, 코로나19 사태 등 국가 차원의 전력 대처가 필요한 미증유의 사태들이 계속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사라지게 만든 핵심 이유라고 볼 수 없도록 만드는 행태들을 국회는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선, 국회를 이전투구의 전쟁터가 되게 만든 야당의 행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는 국민의 여망과 관계없이 개혁 입법을 막겠다는 이유로 허구한 날 국회를 떠나 길거리 시위를 일상화했다. 뒤늦게 국회로 돌아와서는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까지 무용지물로 만들며 수개월씩 입법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도 모자라 검찰개혁 의지를 가진 장관들을 낙마시키기 위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여당의 책임도 없다 할 수 없다. 거대 정당이 된 이후에도 협치라는 허명을 앞세워 일탈적 야당의 행태에 무력하게 끌려다니며 국민이 위임해 준 입법 권한을 방기하는 우를 범해왔다.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위기도 무시하는 그들의 눈에 국민연금개혁 과제가 국민의 생존과 관련된 긴급 현안으로 비춰질 리 없을 것이다. 야당의 정략적 행태와 여당의 무기력한 대응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표류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재개되면 노인의 삶이 개선될까? 


그렇다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빨리 재개되기만 하면 좋은 개혁으로 이어져 노인들이 빈곤의 늪에서 헤어 나오고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그렇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욱 절망스럽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촉구하기 이전에 국민연금을 위시한 공적연금 개혁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추진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발상의 대전환을 행동에 옮길 때라야 비로소 국민연금제도가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거듭나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공적연금 개혁 모습이 어떠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숙의 토론이 배제된 정부 주도의 개혁이었다. 연금 개혁은 항상 정부의 의도와 구상대로 이끌어왔다. 노인 빈곤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은 매우 소홀했다.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 절차는 없었다. 최근 진행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형상 국민의 의견 수렴을 거치고 집단 간의 상충되는 이해를 조정하여 타협을 이루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논의기구의 책임과 권한이 불확실하여 논의가 파행되거나 논의 결과가 사장되었다. 


둘째, 공적연금 체제 전체를 함께 논의하지 않는 각개 전투 개혁이었다. 공적연금 전체를 놓고 노후소득보장 체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이면 공무원연금, 하나의 제도만을 가지고 개혁 논의를 진행했다. 타 연금과 함께 분석하고 비교하고 논의해야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까지도 개별 연금제도만 가지고 논의하다 보니 쟁점이 겉돌았다. 노후 빈곤의 책임 소재나 공적연금 간 형평성 문제 등의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가 없었다. 일례로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는 대타협기구와 여야 정당 대표들의 합의까지 있었지만 타 연금제도에 대한 월권적 논의라고 비판받고 결국 무산되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 시 공무원연금을 거론했다고 장관끼리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었다. 개별 연금제도만의 개혁 논의로는 풀기 어려운 제도 간에 복잡하게 얽힌 이슈들이 많이 있음에도 그동안 공적연금 전체를 놓고 논의를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셋째,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개혁 조급증이 있었다. 개별 연금법에 정해진 일정에 얽매여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행태를 매번 반복했다. 언론들은 개혁 논의가 길어질 경우 논의 기간의 지연만을 문제 삼고, 그것이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한 치열한 고민 때문인지 책임 회피 때문인지 구분 없이 질책만 했다. 여기에는 정권과 관료들의 조급한 성과주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개혁을 통해 국민 생활에 어떤 긍정적 결과를 미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기금고갈 시기 연장 등 수리적 산출물을 개혁의 성과로 포장해 과시하기에 바빴다. 공공선택 이론이 지적하듯이 정권의 실적 홍보와 관료 또는 정치인들의 입지 강화를 위한 행태가 공적연금개혁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넷째, 잘못 설정된 개혁 우선순위가 문제였다. 개혁 논의의 출발점은 항상 재정 불안정이고, 논의의 우선순위도 항상 재정 안정화였다. 개별 연금법에는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하고 종합운영계획을 세워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렇게 재정 재계산을 하도록 법에 명시된 것은 서구 복지국가에서 공적연금의 재정위기가 대두된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당시 그들은 복지국가 황금기를 거치면서 공적연금 급여 수준을 근로기 소득의 70%를 넘어 90%까지도 보장해주고 있었다. 개인의 보험료 지출과 국가의 재정 투입이 과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때부터라도 정기적으로 연금재정 문제를 검토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도시 자영업자들을 제도에 편입한 때로부터 21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제도가 성숙될 때까지는 상당 기간 노후빈곤 해소와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진력해야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재정안정화가 공적연금개혁의 우선순위이고 노후빈곤 해소나 소득보장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적연금 개혁 때마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홍보하지만 노후소득보장 수준은 의미 있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공적연금의 불명확한 개혁 목적과 성과평가 지표가 문제였다. 어느 정책이든 ‘개혁의 목표’와 개혁 결과를 평가하는 ‘평가지표’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 있는 개혁이 가능하고 개혁의 성과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적연금 개혁에는 가장 중요한 성과지표인 ‘노인빈곤율’이 빠져 있다. 공적연금 개혁을 통해 노인빈곤율을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으로 얼마만큼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노후의 삶이 얼마나 개선된 것인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언론은 이런 관점에서 연금개혁 문제는 다루지 않고, 국회도 이를 따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정부나 국회나 언론이나 공적연금 개혁에 있어서만큼은 허깨비를 앞에 놓고 주먹질을 해 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적연금의 존립 목적에 부합하는 올바른 개혁 목표와 평가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정부나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되는 조치이다. 언론도 이런 관점에서 개혁 논의를 비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사실관계와 이해관계를 두루 반영할 개혁 기구가 부재했다. 어떤 제도가 반복적인 개혁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개혁을 논의하고 대안을 찾는 곳은 ‘개혁 논의 기구’이다. 개혁논의 기구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와 같다. 따라서 그동안 여러 번의 공적연금 개혁에도 불구하고 정책 실패에 이르렀다면 ‘개혁 논의 기구’의 구성과 운영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개혁 논의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올바른 개혁의 출발점이다. 제대로 된 개혁 기구를 설치할 수만 있다면 개혁은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국민 대토론 추진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개혁 기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두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하나는 국내외 제도들, 국민의 삶의 형편, 재정 전망, 사회 경제 변화 등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을 분석하고 제시해 전문가들의 동의를 받는 ‘전문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전문가 또는 학자들 간에도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며 논의하다 보니 서로 접근 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은지 낮은지의 평가는 비교 기준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 것인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OECD의 기준으로 소득대체율을 평가한다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명목소득대체율만으로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평가한다면 노인의 삶의 모습을 크게 왜곡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사실관계와 평가 기준을 면밀하게 만드는 것이 논의에 앞서 우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전문가뿐만 아니라 정치인이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첩경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실 자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 자료로 제공해야 한다. 국민이 사실관계를 숙지한 후 여론조사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개혁안에 접근할 수 있고 합의에도 이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나 국회가 그런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도록 숙의 토론을 진행할 ‘국민 대토론 추진기구’가 필요하다. 이는 국민의 신망을 받으면서도 사회정책이나 복지국가에 전문적 식견이 있는 지도자가 전문가들을 모아 책임을 지고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정할 기회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럴 경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사실관계에 대한 대 국민 자료 제공과 설명회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지금이 공적연금 개혁 논의의 적기이다!  
 
필자는 지금 국민연금 개혁 입법을 국회가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빨리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시간에 쫒긴 채 개별연금제도만으로 짜깁기 식의 개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공적연금을 보는 과거의 관점과 개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조금 늦더라도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다른 길을 모색함으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제대로 된 노후소득보장제도 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올해는 공무원연금 재정 계산의 해이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을 포함한 특수직역연금들도 재정 계산 결과를 공표하고 종합운영계획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조만간 이들에 대한 논란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용돈연금과 귀족연금이라는 대칭어가 다시 난무할 것이다. 사실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도 그동안 많은 제도 개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판받을 요소들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해서 그나마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특수직역연금들이 무분별하게 공격받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제 공적연금제도 전체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 안으로는 남북관계, 옆으로는 한·일 간의 반목, 세계적으로는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정국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책문제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더욱 치열하게 올바른 제도 개혁의 길이 무엇인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세계의 복지 선진국들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괄목할만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과감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근대 복지국가의 제도적 초석을 놓은 베버리지 보고서는 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만들어졌다. 극심한 전쟁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복지국가의 황금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외환위기로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온 국민이 겪고 있을 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었다. 또한 그 해에 국민연금을 도시 자영업자들까지 확대해 전 국민을 포괄하는 제도로 만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지금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노인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 이재섭은 영국 켄트 대학교에서 공적 연금을 주제로 사회정책학 박사를 받았고, 공무원연금공단에서 공무원연금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사회복지위원장 겸 공적연금개혁대책위원장과 공적연금수급자유니온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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