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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어떤 섬인가?(1)] 아름다운 섬 독도
  • 이근봉/독도수호국민연합총재, 경복대학교 초빙교수
  • 등록 2020-11-20 03:31:38
  • 수정 2020-12-25 20: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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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운 섬 독도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동해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89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뱃길로 약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동도(73,297m²)와 서도(88,740m²) 2개의 바위섬과 89개의 부속도서(25.51m²)로 이루어졌다. 동도는 최고봉 98.6m로 정상이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며 서도는 최고봉이 168.5m로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이다.


동.서도 간의 폭은 적조시를 기준으로 151m이고 해안선은 약 5.4km정도 된다. 전체 면적은 187,554m²이며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이다. 독도의 관리청은 국토해양부이며 현재 울릉도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독도는 460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울릉도(250만년)이나 제주도(120만년)보다 훨씬 오래된 화산섬이다.


이 화산섬을 독도(獨島)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종18년(서기 1881년)때 부터이다. 조선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쇄환정책(刷還政策)을 종료함으로서 울릉도에 입주하게 된 주민들이 처음엔 “돌섬”이라고 하였다가 獨島(독도)라 표기하고 뜻 중심으로 한자표기 할 때 石島(석도)라고 표기하였다.



2. 독도는 언제부터 대한민국 “땅”이 되었는가?


독도가 대한민국 땅인 것은 명백한 사실로 한국의 많은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예) 역사증기록책,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군정면 외 33권


이제 우리가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에 대하여 역사적 자료를 통하여 실증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가 된 것은 신라(新羅) 지증왕 13년(서기 512년)에 이사부장군을 시켜 울릉도를 완전히 굴복시킨 이후부터이다. 이사부장군은 배에다 사자목각을 만들어서 울릉도에 사는 주민들에게 “너희가 항복하지 않으면 이 섬에 사자를 풀어 너희를 잡아먹게 할 것이다. 사자 밥이 되기 싫거든 항복하라”고 외치자 울릉도 섬사람 모두가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가 울릉도와 독도를 점령하여 현재까지 실효지배하며 관리해온 것이다. 즉 1500년 전인 삼국시대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가 지키고 관리해온 우리의 영토 대한민국(땅)이다.


그럼에도 일부 어부들이 몰래 와서 고기를 잡아가곤 했다. 현재도 일본 정부 아베신조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말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항상 흥분하게 한다. 일본은 이제 확실하게 독도가 대한민국 땅(영토)임을 알아야 될 것이다. 망언을 즉각 중지하라!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지증왕13년(서기 152년) 여름에 우산국(于山國:현재의 울릉도)이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곤 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에 복속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의종 때 김유립이 울릉도를 현지 답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지(地理志)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凌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볼 수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凌島) 두 섬이 현의 정동(正東) 바다에 있다. 두 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않으며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하였다.


위의 삼국사기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가 있고 또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가리킨다고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영의정이던 남구만(南九萬)은 숙종15년(1689년) 희빈 장씨 소생인 균(均)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자 망상동 약천마을로 1년여 간 유배돼 권농가 시조를 남겼다. 학식이 깊고 고매한 인격의 정치인이던 남구만은 “울릉도와 독도 지키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임금인 숙종이 우리땅 지키기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특히, 숙종20년(1694년)엔 “삼척첨사를 보내 울릉도 등지의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는 한편,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진을 설치토록 해 달라”는 국토수호 대책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숙종은 장한상(張漢相)을 삼척사로 삼아 울릉도 등지를 관리, 주민들이 왜적들의 해적행위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숙종22년(1696년)인 울릉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던 안용복이 사사로이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자 선처를 호소, 극형을 면하게 하기도 했다.


일본 군도에서 158km나 떨어져 있는 독도는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섬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욕심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일본인 스스로도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자인(自認)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일본정부가 1693년 작성한 1차 서계(書契)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어 1696년에도 안용복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맞다”고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 다음 호에서는 일본에 건너가 두 번이나 서계를 받아온 안용복에 대한 글을 쓸 것입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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