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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도(三多島)이야기(5) 고향의 향수(故鄕의鄕愁)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
  • 양승천 기자
  • 등록 2020-11-26 17: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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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 정의현청(旌義縣廳) 북문 돌 하르방 4기

 [양승천 기자]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가 알려진 동기는 1938년대에 조명암의 시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로 불리면서부터이다.


 "조명암시 서귀포칠심리(西歸浦七十里 "


1.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2.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머리 빨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저녁달도 그리워라, 저녁별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졌다

 3.모래알이 철썩철썩 소리치는 서귀포. 고기 잡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모래알도 그리워라, 자개알도 그리워라. 서귀포 칠십리 맹서가 컸소.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에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鄕愁)와 애틋한 그리움을 끌어내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됐다.


1653년 제주 목사 이원진에 의해 서귀포는 정의현청(旌義縣廳)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고, 원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 배갸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 였다고 전하고 있다.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가 처음에는 정의현청((旌義縣廳)이 있었던 현재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가 단순한 거리개념 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마음속에 언제나 안식과 위로, 그리고 꿈과 희망을안겨주는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는 '서귀포의 뿌리와 정서, 이미지'를 함축한 발전된 개념으로 정착되어 '영원한 고향의 향수(鄕愁)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의현청((旌義縣廳) 근민헌 마방(馬房)터 퉁시(화장실)

성읍 주민 생활주거지

서귀포(西歸浦) 삼매봉(三梅峰)奇 시민공원

서귀포(西歸浦) 삼매봉(三梅峰) 기암괴석(奇巖怪石) 외돌개

서귀포(西歸浦)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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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암 돌담길 넝쿨

서귀포 생산작물 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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