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개인전
  • 민병훈 기자
  • 등록 2020-12-20 18:47:10

기사수정
  • '남미의 피카소' 국내 첫 공개...전쟁.군부 독재에 고통받은 민중의 비극 통렬히 고발


[민병훈 기자] 비명이 흘러나올 듯한 그림들 틈에 영혼의 안식처 같은 작품이 있었다. 어머니가 발가벗은 아이를 따듯하게 품고 있는 그림이다. 20세기 남미의 고통을 붓질하던 에콰도르 국민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은 말년에 '어머니와 아이' 연작을 그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전쟁과 군부 독재에 대한 분노, 원주민의 상처와 눈물이 모성(母性) 안에서 사그라들었다.


과야사민은 사랑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이라는 붓자국을 남기면거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폭력성에 날을 세우던 거친 색채를 버리고 온화한 황토색 계열로 어머니에게 안기거나 기댄 아이를 그렸다. 기하하적 색면 분할로 대상을 재구성하는 입체주의(큐비즘) 화면을 보여 '남미의 피카소(스페인 입체주의 거장)'로 불리는 과야사민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그의 유화 작품과 드로잉 등 89점이 내년 1월 22일까지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에콰도르 문화영웅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국외 전시가 가능한 그의 전시는 양국 문화 교류 차원에서 열리게 됐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외교부가 후원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과야사민은 문화 변방 지역 작가지만 회화의 힘을 보여줘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중남미 민중미술의 사실적인 언어, 에콰도르를 지배한 스페인의 혁신적인 입체주의와 표현주의를 결합해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한 거장"이라고 설명했다. 


트랙터.택시 운전사 아버지를 둔 과야사민은 유년시절 사회의 민낯을 보면서 성장한 그의 어린 눈에도 에콰도르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부당해 보였다. 1930~194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흑인, 원주민, 메스티소(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의 고통을 체감한 그는 현실과 정면승부하기로 결심한다. 펜만큼이나 날카로운 붓으로 시대의 비극을 비추는 거울 같은 그림을 그려나간다. 앙상하고 비틀린 인체와 공포에 질린 얼굴을 어둡게 채색하면서 20세기 시대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했다.


'온유'(1989)./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

1960~1970년대에는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독재자에 대한 분노를 화면에 터트린다. 독일군 장교, 라틴아메리카 장군, 스파이 군인 등을 괴물처럼 묘사하고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간 젊은이를 나란히 그린 '펜타곤에서의 회의'(1970)가 이 시기 대표작이다. 


1956년 스페인을 여행한 작가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눈물 흘리는 여인들'(1963~1965)도 걸작이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 7명의 해골 같은 얼굴과 손만 그려 비극을 극대화시켰다. 작품 수 7개는 일주일을 상징하면서, 스페인 여인의 눈물과 고통은 일주일 내내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작가의 딸인 베레니세 과야사민은 "스페인 민중의 고통, 특히 여성이 겪는 불행은 당시 모든 이가 공감했다. 세계 공통어인 미술작품으로 보여줬기에 세대를 뛰어넘는 호소력을 갖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붓으로 억압과 차별, 폭력을 고발한 작가의 종착역은 평화였다. 


그의 아들인 파블로 과야사민 재단 이사장은 영상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는 평화를 쟁취하기 위한 절망을 그렸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포용하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역설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