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박정기의 공연산책 97] 극단 노을, 강재림 연출 ‘오 행복한 날들’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1-01-03 02:34:02
  • 수정 2021-01-03 23:09:59

기사수정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제54회 정기공연 겸 노을소극장 폐관공연, 사무엘 베케트 작, 오세곤 번역 강재림 연출의 <오 행복한 날들>을 관람했다.


오세곤 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고 ‘장 주네의 희곡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 한국 대학 연극학과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부회장, 극단 노을 예술감독,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 아산문화재단 이사, 충청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배우의 화술』등이 있다. 우리읍내(쏜톤 와일더 작), 도둑일기(장 주네 작), 보이첵(게오르그 뷔히너 작)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 순천향대 공연영상미디어학부 명예교수다.


강재림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출신으로 극단 노을 대표를 역임한 작가 겸 연출가다. 현 백석예술대학교 극작과 겸임교수, MTM 연기강사 및 교육진흥원 연극 강사, 세명 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성결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 <팔관회> <오박사의 복수> <눈의 여인> <인터뷰> <지구침공> 뮤지컬 <킹 오브 드림스> 가족 극<바리의 여행> 그 외 다수 작품을 집필했다. 연출작으로는 <왕은 죽어가다> <별이 빛나는 밤> <눈의 여인> <돌아온 오박사> <너바나> <인터뷰> <소나기2> <에브리맨> 외 다수, 뮤지컬 <킹오브드림스> <2011년 아산성웅이순신축제 주제공연 이순신> <안내견 탄실이> <라스트 콘서트> <우리도 혼자 산다> <백야> <생산적 장례식>외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1950년대 프랑스 문단에 일기 시작한 이른바 누보로망(nouveau roman)은 1950년대 등장한 프랑스 소설의 한 유형으로, 기존의 소설 형식이나 관습을 부정한 새로운 기법의 실험적 소설의 견인차 역할을 한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출생하였다. 1930년 모교인 트리니티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근무하였으며 1938년에 프랑스로 이주, 정착하였고 이 당시 같은 더블린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친교를 맺었다.


그의 문학적 출발은 시와 소설로 파리에서 발간되던 전위잡지 '트란지존'에 최초엔 영어로 쓴 시집『호르스코오프』(1930),『반경의 기개』(1936) 등과 소설『중과부적』(1934),『마아피』(1938)를 발표했다. 1945년 이후 그는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몰로이』(1951)를 비롯하여『말로지온은 죽다』(1953),『생명하기 어려운것』(1953)에 이어지는 3부작은 전후 가장 중요한 소설로 주목되었다.


1953년에 대표작이라 할『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일약 앙티테아트르의 기수가 되었다. 종래의 희곡과 연극방식을 완전히 뒤엎고 그 이후의 새로운 연극 형식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러한 업적으로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새로운 형식의 희곡이 발표된 배경과 그 파장에는 누벨버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이라는 새로운 예술풍조가 자리한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의 기성세대의 영화를 거부하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 누벨바그(Nouvelle vague)운동은 68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운동 중 하나로 기록된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 방송은 최근 68혁명 50주년을 맞아 “누벨바그 운동이 68혁명이라는 프랑스 젊은 세대의 반란을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모든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누벨바그는 68혁명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계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당시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젊은 감독 지망생들은 기성 감독 아래에서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야 했고 데뷔의 기회는 극소수에게만 돌아갔다. 이에 젊은 신인 감독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었고 기성세대 영화적 문법에서의 탈피를 추구했다. 자유로운 형식의 영화는 자유로운 주제가 담길 수 있는 그릇이 됐다.


누벨바그의 대표적 영화로 꼽히는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는 부모 세대와 과거의 이상에 등을 돌리고 권위주의에 반항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렸다. ‘400번의 구타’로 누벨바그의 시작을 알린 프랑수아 트뤼포는 ‘쥴 앤 짐’에서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사랑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 혁명을 이야기했다.



누벨바그를 이끈 감독들은 68혁명이 발발하자 혁명을 지지하며 그해 5월에 열린 제21회 칸영화제의 상영장을 점거, 영화제를 도중에 중단시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누벨바그는 다른 나라들로도 이어졌다. 1962년 독일에선 26명의 젊은 영화감독이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했고 이는 영국의 프리 시네마 운동, 미국의 뉴 할리우드 운동,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체코의 뉴웨이브 운동 등으로 번져나갔다.  


사회·문화적 혁명이었던 68혁명은 샹송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전문가는 “현대 샹송의 진정한 출발점은 68혁명”이라고 입을 모은다. 68세대의 샹송은 과감했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배우 브리짓 바르도와 함께 불렀던 ‘널 사랑해, 나 역시 널 사랑하지 않아’는 그 대표적 곡으로, 문법도 맞지 않는 제목의 노래에서 그는 육체적 사랑을 노골적으로 읊었다. 이 노래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금지곡이 됐다. 갱스부르와 더불어 당시 샹송 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가수는 미셸 폴나레프다. 그가 내놓은 ‘너와 사랑을’이라는 노래는 밤 10시가 넘어야 전파를 탈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미셸 폴나레프의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라는 노래는 우리나라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로 번안됐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행복한 나날들(Happy Days)>에는 위니(Winnie)라는 이름의 50대 여성이 등장한다. 1막에서 위니는 허리까지 모래에 묻혀 있는 모습이다. 하반신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지만, 그래도 위니는 양치질을 하고, 핸드백을 소제하고,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독백을 한다. 2막에서 위니는 이제 턱까지 모래에 잠긴다. 그녀는 더 이상 머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혼자서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관계들은 깨어지고,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늘도 행복한 날이 될 거야’라는 공허한 독백뿐이다.


이 희곡은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의 모습, 스스로 아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인간의 모습, 그럼으로써 육체는 살아 있지만 사실상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 즉 조르조 아감벤의 “살아 있는 죽은 자(living dead)”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니는 자신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모래에 턱이 묻힐 때까지도, 자신이 아무런 변화를 이룰 수 없는 무력한, 부자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위니는 사실상 우리의 모습을 아프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지순한 행복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모래’는 무엇일까?


획일화된 삶의 방식과 사유 방식을 요구하는 다양한 제도들은 우리의 일상적 공간을 지배하면서, 각자가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개별성을 묻어버린다. 한 사회가 만들어낸 정형화된 삶을 따라 사는 것만이 ‘확실한 안전성의 삶’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굳건히 믿게 한다. 이러한 획일화된 가치체계는 정치·경제·교육·예술과 같은 공적 공간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여타의 친밀성의 관계 등 사적 공간들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정형화된 제도적 삶에 대한 무비판적 맹신은 우리로부터 모든 물음표를 제거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모래’의 기능을 한다. 또한 자본주의적 가치를 종교화한 다양한 종교들은 그 현상 유지와 권력 확장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구원과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성을 억누르는 ‘모래’들을 퍼붓는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모래’들은 그 모래가 턱까지 차올라서 모든 자유가 차단되는 것과 같은 처절한 부자유의 삶, 지순한 행복감이 부재한 삶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허리까지 차오르는 모래 대신 진흙으로 보이는 봉분에 파묻혀 있는 것으로 설정되고, 흰색의 파라솔과 검은색 핸드백을 옆에 둔 위니는 칫솔로 이를 닦고, 자주 핸드백을 열어 그 속에 든 화장품과 용기를 꺼내 얼굴치장을 하면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하는 대사는 독백과 다름이 없다. 2부에서는 목까지 파묻혀 얼굴만 들어낸 채 이야기를 계속하고 오 행복한 날들이라고 외치며 신에게 감사기도를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공승아가 위니 역으로 출연하고, 남편 윌리 역으로 원덕희와 김성식이 더블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1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을 거의 독백이나 다름없는 대사로 공연을 이끌어가는 위니 역의 여배우의 기량은 한국 여배우의 고수준 고품격의 연기력을 반영시킨 듯싶어 관객을 극에 심취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어우리, 무대 최병훈, 조명 백기렬 등, 스태프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노을의 정기공연 겸 노을소극장 폐관공연, 사무엘 베케트 작, 오세곤 번역 강재림 연출의 <오 행복한 날들>을 원작을 뛰어넘는 창아기발(創雅奇拔)한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