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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주황빛의 아름다움, '땅끝 해오름'
  • 박성환 기자
  • 등록 2021-01-12 16: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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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오름-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1158-5


무덤덤한 마음마저

가벼움으로 바꾸어 주는 힘,

자연의 풍경이 주는 에너지다.

부드러운 색 번짐이 아름다웠던 

해남 땅 끝 마을의 일출이다.



“마음 무거우니 오름도 황혼이다.”

누군가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무난한 나이가 언제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골똘히 생각할 것이다. 정작 묻는 사람은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바로, 지금이 찰나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유일의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삶, 가장 아름다운 날은 언제였을까? 

돌아보는 것이 빠른가? 아니면 내일을 기다려 보는 것이 옳은가?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 짚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땅의 기운에 기대어도 보고, 산의 푸르름에 녹아들어 본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행여나 달라질까, 오히려 마음 조아리며 변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닐지, 가슴에 묻고 내가 답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바다를 보면 달라지는 가슴이 된다. 삶속의 궁핍은 내가 만들어 낸 것들이라고 한다.


바다는, 

오라 손짓하지 않는다. 가라 밀어내지 않는다. 온다하면 받아주고 간다하면 보낸다. 붙잡고 매달리는 법이 없다. 바다는 매몰차다. 그러면서도 제 것 모두를 사람들에게 내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바다를 동경하게 된다. 한 없이 펼쳐진, 누구보다도 넓은 가슴을 가진 바다를 여행자는 참 좋아한다. 


무의식중에 잡은 핸들, 차를 어느 구석에 멈춘다. 그리고 그 앞은 한없는 낭떠러지,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러한 끄트머리다. 그런데, 그 끝이 진정한 끝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나라의 땅 끝, 해남이다.


전망대가 들어선 곳을 ‘갈두마을’이라 하는데, 칡이 많아 칡머리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변한 것이 ‘갈두葛頭’가 되었고, ‘송호리’는 마을 앞 200년 묵은 무성한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맑은 호수의 모습과 같다하여 ‘송호松湖’라 했다.



땅이 바다를 만난 마지막 자리, 백두대간이 남으로 흐르다 또아리 틀며 멈춘 곳으로 좋은 혈이 뭉친 자리라며 신성시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제를 올려 기를 받아가는 곳이다. 그러한 운에 의지하고 싶은 누군가는 소원을 빈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이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신성하게 여긴다.


산과 바다가 하늘을 만나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에 사람들이 찾아 들자, 그 자리에 전망대를 세웠다. 


검은 어둠속에 자리한 ‘땅 끝 전망대’, 오르는 방향의 바다에는 여적 휘영청 달님이 떠 있다. 길을 따라 계단을 올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땅덩어리의 마지막을 밟고 서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는 묵시적인 시작의 꿈을 꾼다.



어둠이 막 가시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은 붉은 하늘 아래 그 보다 더 진한 붉은 바다를 가르며 일터로 향한다. 멀리서 전해지는 아득한 삶의 색은 지나간 뱃전의 길을 길게 그려 넣는다. 


누군가는 끝의 땅으로 알고 있는 곳에서, 누군가는 풍요를 기대하는 만선의 꿈을 안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좀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차가운 바다 바람이 모가지 틈 사이를 기어이 비집고 들어온다. 한기에 어깨가 움츠려 든다는 것은 이제 곧 해오름이 시작된다는 자연이 알려주는 시간이다.


어둠은 가시고 서서히 붉은, 그리고 오렌지 빛으로 환해진다. 수평선의 위로 오르는 장엄함이 아닌 능선 너머로 오르는 수줍은 해오름이다. 그래서 참 부드럽다. 강렬하지 않은 빛의 고요 속에 여행자의 마음도 녹아든다. 




많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기대에 부응하는 자연의 모습, 순수한 자연으로 이루어진 장관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구지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은 그러한 모습이다. 


자연의 시계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순 없지만, 자연은 스스로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을 내보이면서 환한 미소를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정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가득 묻어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자연의 힘은 그토록 위대한 것이었다. 



이토록 위대한 풍경은 삶을 돌아보고,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계획하는데 더 없이 좋은 무대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디서나 시작되는 하루의 시작이 뭐 특별하냐며 유난스럽다고 한다. 북적거리는 빌딩숲에서, 방구석 이불속에서도 해는 뜬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정해진 시간이다. 


그러나 공평한 시간에 느끼는 마음가짐의 달라짐은 명확하다. 오늘 바다와 하늘이 만나 자리에서의 일출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감탄사를 뱉어낸다. 누군가에겐 감탄사를 자아내는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켜주는 일터다. 


풍경의 감동 속에 그의 부지런함을 만날 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겸손해지면서 순수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 다시 길을 나선다.


처음과는 다르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떠날 수 있다. 부드러운 오렌지 빛의 아름다움을 곱게 간직하고 환하게 길을 나선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쥐꼬리만큼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땅 끝 마을의 해오름에 감사하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일터에서 잠시의 미소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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