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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국립국악원 우수학술상 수상
  • 민병훈 기자
  • 등록 2021-01-22 1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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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


[민병훈 기자] 국립국악원(원장 임재원)은 국악학술과 우수인재 발굴을 위해 지난해 10월 한 달간 제9회 국립국악원 학술상을 공모했다. 공모결과 인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가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로 우수학술상(국립국악원상)을 수상했다.


우수학술상으로 선정된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조선말 개화기에 인천지역에서 불려졌던 ‘인천아리랑’의 최초 기록과 음악적 선율.곡조에 대해 규명코자 했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에 한국 최초로 채록된 ‘인천아리랑’의 생성유래를 살펴보고 항일과 배일감정을 담은 노래가사의 정체성을 고찰하고자 했다. 


또한, ‘인천아리랑’이 어떠한 선율과 곡조로 불리어졌는지, 그 당시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유행됐던 ‘자진아리랑(구조아리랑)’ 계통의 악곡과 어떠한 음악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했다. 


이번 연구의 결과, 첫째 ‘인천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된 ‘아리랑’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는 1894년 5월 일본에서 발간한  ‘유우빈호우치신문’ ‘조선의 유행요’, 1894년 8월 일본인 유학생 ‘홍석현’의 ‘신찬조선회화’, 1904년 ‘하시모토 데이수케(橋本貞造)’의 ‘신찬일한회화’ 에서 ‘인천’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아리랑’ 가사를 유학생과 일본인들에 의해 기록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1896년 ‘아리랑’을 오선보로 최초 채보한 H.B.헐버트 ‘아르렁’과 같은 해 조선인 유학자에게 ‘아리랑’을 최초 음원으로 녹음한 A.C.플레체 ‘아라랑’보다 2년을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인천아리랑’ 가사 내용의 정체성은 항일정신과 배일감정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각 지방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도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민요의 대이동이 일어났고 ‘인천아리랑’의 노래가사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전해지는 가사는 3절이고 노래가사 중 1절은 “인천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 왜인(왜놈) 위세(등살)에 못 살겠네” 라는 부분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인천에 가장 많이 들어와 있던 시기에 배일감정(排日感情)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왜인(왜놈)이라는 가사는 외세에 반항하는 민중들의 염원이 드러난 항일정신이 깃든 노래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2절은 “에구 데구 흥 성화로다 흥 / 단 둘이만 사자나 흥”은 노동자의 힘듦 삶을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3절은 “산도 설고 물도 설고 / 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라는 부분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인천아리랑’ 가사는 근대 민요로서 일반 아리랑과의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상업적이거나 유흥적이기 보다는 노동의 현장에서 현실성 있게 저항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인천아리랑’ 가락의 모곡은 경기 ‘자진아리랑(구조아리랑)’ 계통의 악곡이다. 개화기에 경기 ‘자진아리랑’ 계통의 악곡은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기층민중과 전문예인들에 의해 유행됐고, 1896년 H.B.헐버트는 아리랑을 오선보에 채보했다. 


1914년 이상준은 조선속곡집에 ‘아리랑타령’으로 채보했고, 1933년 김죽파는 가야금병창 ‘자진아리랑’을 음원으로 수록했다. 따라서 이들이 기록한 자료와 음원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최초 ‘아리랑’을 오선보에 채보한 H.B.헐버트 ‘아르렁’은 경기 ‘자진아리랑’계통의 악곡이다. 이는 ‘인천아리랑’의 모곡임을 이번 논문으로 확인했다.  


이번 학술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유영대 심사위원은 19세기말 인천지역에서 불렸던 ‘인천아리랑’에 관한 총체적 연구이다. 이 논문의 장점은 관련기록을 철저하게 찾아서 확인한 점이다. ‘인천아리랑’의 노랫말을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했다. 또한 선율과 곡조에 대한 분석도 기존의 견해에 대해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첨가하고 있어 우수한 논문으로 평가했다. 


백석예술대학교 한국음악전공 교수 윤아영 심사위원은 인천 아리랑의 발생 시기를 아리랑 음악의 전파 경위를 역사적으로 고증했고 인천 아리랑의 음악적 분석을 통해 경기 구조 아리랑 계통임을 밝힌 최초의 논문이라고 했다. 또한, 인천 아리랑이 최초로 기보된 아리랑이라는 점을 밝힌 것은 학계에 기여도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논문은 올 4월에 발행되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국악논문집’에 게제되는 특전이 부여된다.  


서광일 대표는 현재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 전)부편풍물대축제 행사국장, 단국대학교대학원 국악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번 논문으로 학문적으로만 전해지는 인천아리랑이 음악적 선율과 곡조가 인정되었다며, 인천이라는 근대 개항공간에서 불린 지역적 가치를 조명하고 300만 인천시민이 함께 부르는 문화예술의 콘텐츠로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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