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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1-19 15:23:05
  • 수정 2021-11-19 15: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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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선열의날 특집], 임시정부 요인 18위와 배우자 애국지사(1)

[박광준 기자]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우리 선열들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같은 해 4월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정식 공포했다.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사 최초의 국민 주권 국가로서 삼권분립 제도를 채택해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27년 동안 외교자주운동, 광복군 창설, 의열 투쟁, 교육문화 활동 등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제 강점의 역사 단절을 거부하고 우리 민족 5000년사의 맥을 잇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에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천명함으로써 민족자존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있다. 이에 본지는 임시정부 요인 18위와 배우자 애국지사에 대해 살펴보자.<편집자주>


국립서울현충원은 1993년 상해만국공묘에 안치돼 있던 상해 임시정부 요인 5위의 영현을 환국봉안하면서 임시정부요인 묘역을 조성했다. 임시정부요인 묘역은 총 1,499m²의 부지 위에 계단식으로 조성돼 있고, 임시정부 요인 18위와 배우자 애국자시 3위가 안장돼 있다.


이 묘역에는 '한국통사'로 민족혼을 일깨웠던 박은식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비롯해 외무총장을 역임한 신규식, 의정원의원 및 서로군정서 참모장을 역임한 김동삼, 군무총장 및 정의부 총사령을 역임한 지청천 등이 있다.



박은식(朴殷植)은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승만을 대통령에서 탄핵하고, 대통령 서리 겸 국무총리를 맡고 있던 박은식을 2대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박은식은 7월 임시정부의 정치 체제를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무위원제로 바꾼 뒤, 국무위원제의 최고 대표자격인 국무령에 이상룡을 추천해 당선시켰다.


박은식은 부친이 서당훈장이었기에 서당에서 주자학을 배웠고, 이 무렵 안중근의 부친인 안태훈과 교류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초기에는 위적청사사상에 매료돼 동학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40세 무렵부터 신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주필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의 묘/사진-박광준 기자 그러다가,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그 이듬해인 1911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해 만주 환인현 흥도천에 '윤세복'이 설립한 동창학교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대동고대사론' '동명성왕실기' '명림답부전' '천개소문전' '발해태조건국지' '몽배금태조'를 집필했다.

 

이후 상해로 와서 1914년 망명 이후 줄곧 써오던 '한국통사'의 집필을 완성하고 이듬해인 1915년에 간행해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러면서도 일제에 대한 독립 운동도 중시해 의병 활동은 정신 역사적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높이 평가했다. 박은식이 쓴 '한국통사'는 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교포 사이들에서 널리 읽혀졌고,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도 출판돼 우리 교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통사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같은 해 1911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해 만주 동창학교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대동고대사론’ ‘동명성왕실기’ ‘명림답부전’ ‘천개소문전’ ‘발해태조건국지’ ‘몽배금태조’를 집필했다. 이후 상해로 와서 1914년 ‘한국통사’ 집필을 완성했다.


1919년 박은식은 3.1운동을 경험하고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해 책으로 냈다. 1919년 10월 15일 국민교육 연구장려, 유학생파견 및 지도 목적으로 대한교육회(大韓敎育會)를 상해에서 조직했고, 회장 겸 편집부원으로 활약했다


또한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이 없는 이승만 중심의 구미위원회를 폐지했고, 헌법을 개정해 임정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박은식은 1925년 11월1일 인후염으로 6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25년 11월4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최초로 국장을 거행해, 유해는 상해 정안사로(靜安寺路) 공동묘지 600번지에 안장됐다.


1993년초 그의 유해는 임정 요인 유해 봉환사업에 따라 1993년 8월5일 서울로 운구, 봉환돼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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