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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04]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묘소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1-11-21 20:08:42
  • 수정 2024-04-10 1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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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1869-1953)의 묘소이다. 


이시영은 대한 제국의 신진 개화 관료로서 17세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해 외교부 교섭국장, 한성재판소 소장, 평안감사인 평안남도 관찰사 등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이시영은 형제와 가족 40여 명과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중국에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해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했고 법무총장, 재무총장을 지내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광복된 뒤에는 귀국해 신흥무관학교의 건학 이념을 잇고 인재를 양성키 위해 1947년 지금의 경희대학교인 성재학원 신흥대학을 세웠다. 



1948년 7월 20일 제헌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고, 1951년 5월 9일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의하면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성명서에 '시위소찬'이라는 말을 남겼다. 1953년 4월 17일 85세 대 피난처인 부산 동래에서 서거했고, 전쟁 중임에도 여야는 만장일치로 국민장에 합의했다. 9일 동안 장례를 치른 뒤 정릉 묘소에 묻혔다가 1964년 이곳으로 옮겨갔다. 국가에서는 이시영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주었다. 



묘소는 돌을 2단으로 높게 쌓아 올린 석축 위에 있다. 봉분 아래쪽에는 병풍석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리는 향로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 문인 모양의 문인석,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 등 돌로 만든 석물들이 있다. 계단 아래 숲가에는 '성재선생경주이공시영지묘'라고 생긴 묘비가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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