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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196] 국립극장, 김광보 연출 ‘명색이 아프레 걸’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2-01-01 14:21:58
  • 수정 2023-02-15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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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국립극장의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합동공연 고연옥 작, 나실인 작곡 편곡, 김광보 연출의 <명색이 아프레 걸>을 관람했다.


 고연옥은 1994년 부산MBC아동문학대상 소년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활동하였으며,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사월간지의 기자로, 방송국 시사프로 구성작가로 일했다. 2000년 결혼 후 서울로 이사하였고, 2001년 청송보호감호소의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올해의 우수희곡에 선정되었다. 


2003년, 한 독거노인의 죽음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의 단면과 죽음의 의미를 짚은 ‘웃어라 무덤아’가 역시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03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에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제도권에서 일탈해 있다는 이유로 강간치사사건의 주범이 된 소년들의 이야기 ‘일주일’ 한 하급 장교를 통해 계급과 구조 속에 자아를 상실해 가는 군대 구성원들에 대한 ‘백중사 이야기’가 공연되었다. 두 작품은 ‘인류 최초의 키스’와 함께 사회극 삼부작 ‘남성 삼부작’이라고 회자되었다. 2007년 ‘발자국 안에서’가 김광보 연출로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그 해 고연옥의 첫 희곡집 ‘인류 최초의 키스’(연극과 인간)가 출판되었다.


작품으로는 ‘주인이 오셨다’ ‘지하생활자들’ ‘연서’ ‘내 이름은 강’ ‘칼집 속에 아버지’ ‘단테의 신곡’ ‘달이 물로 걸어오듯’ ‘나는 형제다’ ‘검은 입김의 신’ ‘처의 감각’ ‘손님들’ ‘꿈속에선  다정하였네.’ 를 발표 공연한 미모의 여류작가다.


작곡가 나실인은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및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에서 디플롬을 취득하였다. 그 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9년 성남시 합창음악 콩쿠르 1위, 2002년 중앙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바 있다. 국립 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 TIMF앙상블, 서울시립교향악단, KBS심포니오케스트라,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위촉작품을 발표하여왔다. 주요활동분야는 오페라, 음악극, 뮤지컬, 발레이며 2015년 음악극《호모루덴스》, 2016년 연극《일몰》의 OST제작, 음악극《Beyond Life》, 2017년 오페라 《나비의 꿈》, 《비행사》 (리딩공연), 발레《처용》을 작곡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수원대학교, 서울예고, 예원학교를 출강 중이다. 



김광보는 국립극단단장이자 예술감독으로, 2014 제 51회 동아연극상 - 작품상, 연출상 <줄리어스 시저>, 2014 PAF 예술상 - 연극연출상 <사회의 기둥들>, 2012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연극 베스트7’ <그게 아닌데>, 2012 히서 연극상 - 올해의 연극인상, 2012 연극평론가협회 - 올해의 연극 베스트3 <그게 아닌데>, 2012 대한민국연극대상 - 대상, 연출상 <그게 아닌데>, 2012 제 49회 동아연극상 - 작품상, 연출상 <그게 아닌데,> 201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11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연극 베스트7’ <주인이 오셨다,> 2009 일본 삿포로 씨어터 페스티벌 연출상 <게와 무언가, 2008 일본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 특별상 <발자국 안에서>, 2007 삿포로씨어터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발자국 안에서>,2007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발자국 안에서>, 2007 일본 삿포로 씨어터 페스티벌 비경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발자국 안에서>, 2004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 연극부문 우수상 <웃어라 무덤아>,2004 포항 바다국제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웃어라 무덤아>, 2001 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인류 최초의 키스>, 2000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5’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1999 한국일보사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뙤약볕>, 1998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5’ 신인 연출상 <뙤약볕>, 1996 오늘의 젊은예술가상(문화체육부),1996 한국연극협회 선정 96년을 이끌어갈 젊은 연극인 연출분야 1위 등을 수상한 우수 연출가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극단 단장 겸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


아프레 걸이란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에 영어 단어 소녀(girl)를 합성한 이 조어는 향락, 사치, 퇴폐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명색이 아프레 걸>은 한국 최초의 영화 <미망인>의 감독인 박남옥(1923~2017)의 일대기다. 경북 하양에서 태어난 박남옥은 어려서부터 영화를 무척 사랑했고 문학, 미술, 체육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던 만능 소녀였다. 특히 운동 실력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인데,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1938, 39년 전조선육상선수권대회에서 투포환 부문 우승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타고난 체력은, 훗날 영화연출 현장에서 갓난아기를 둘러업은 채 레디 고를 부를 수 있는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이다. 신문기사 속 그의 이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각 대학의 입시합격자를 게재한 1940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 ‘입시합격발표’란을 살펴보면, 박남옥은 이화여자전문학교의 합격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해방 이전의 이력들이 정확하게 확인되는 셈이다.



박남옥은 일제 시기 조선영화의 최고 스타였던 김신재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영화잡지인 <신영화>(1942년 11월호)에 나온 최인규 영화에 대한 기사 중 부인 김신재에 대한 언급을 읽고 팬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집없는 천사>(1941)에서 꽃파는 소녀 역을 맡은 김신재의 모습에 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김신재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기사와 사진들은 모두 스크랩했다는 그의 증언은, 식민지 조선의 한 소녀가 영화에 열중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어 무척 인상적이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 석사과정 중 <아름다운 생존> 촬영에 참가했는데, 이때 박남옥 감독을 실제로 뵙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일제 말기 노골적인 국책영화들 사이에서 조선의 농촌 풍경을 담은 <풍년가>(감독 방한준, 1942)가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고, 최인규의 <수업료>(1940), <집없는 천사>가 얼마나 뛰어난 예술영화였는지 증언하시던 대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이기 전에 식민지 영화 문화를 향유하던 영화 팬이었고, 초창기 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박남옥이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참여할 기회는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친구의 남편인 윤용규 감독(그는 해방기의 대표작 <마음의 고향>(1949)을 감독하고 월북했다)의 소개로 조선영화건설본부 산하의 광희동 촬영소에 스탭으로 입사한 것이다. 그곳에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김신재를 만날 수 있었고 이후 말년까지 인생의 친구로 지내는 출발점이 된다. 이 시기 박남옥은 돈암동의 예술인촌이라 불린 마을에 살았는데, 바로 이웃이 유명한 영화인들, 즉 김신재와 최인규 부부, 김소영과 무용가 조택원 커플, 문예봉, 전창근, 독은기, 윤용규, 한형모 등이었다. 해방 직후 영화인들이 집결했던 광희동 촬영소에서 편집조수로 일하던 박남옥은 드디어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바로 배우 최은희의 데뷔작이기도 한 <새로운 맹서>(감독 신경균, 1947)에서 스크립터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당시 영화 현장에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딴따라 판’을 벗어나 정상적인 결혼을 바라는 부모의 강요로 귀향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망이 너무나도 강했던 것일까.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박남옥은 다시 영화계로 돌아갈 기회를 잡는다. 1953년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해 기록영화 작업에 참여했고, 극작가 이보라를 만나 결혼까지 이른다. 전쟁이 끝났고, 드디어 그는 자신의 영화에 착수한다.



박남옥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미망인>은 이보라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일단 언니에게 돈을 빌려 영화에 착수했다. 영화사 이름이 ‘자매영화사’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친했던 이민자를 주연으로 내세웠고, 스탭 역시 지인들로 꾸렸다. 촬영도 아예 저예산 제작의 기본이라 할 16mm 필름으로 시작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데뷔작에 착수하기까지도 힘들었지만, 영화 현장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촬영하는 날보다 제작비를 빌리러 다니는 날이 더 많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포대기에 둘러업고 촬영현장을 누볐다. 직접 편집을 하고 전창근 감독 등의 도움으로 겨우 녹음실을 구해 후반작업을 마치는 등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영화를 개봉시켰다.


“여성감독이 아니면 착안하기 어려운 ‘앵글’의 각도와 사건의 ‘템포’ ‘리듬’의 명쾌, 화면과 동작(연기) 등에 생활감정을 예리하게 융화”(<동아일보> 1955년 2월 27일자)했다는 개봉 직전 영화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평단의 인정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후 여성들의 욕망을 과감하게 묘사한 그의 영화가 너무 앞서갔던 탓이었을까. 변재란 등의 영화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미망인>은 단지 최초의 여성감독의 영화로 수식되기보다 여성영화로서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안타깝게도 박남옥은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1960년 창간된 <씨네마 팬>의 편집장으로(그는 해방 전 대구의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쓰기도 했다) 영화 일을 이어나가다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영화판에서 기회를 잡은 것이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전후, 즉 한국 사회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남옥 이후 <여판사>(1962)의 홍은원, <민며느리>(1965)로 연출에 데뷔한 배우 최은희, <첫경험>(1970)의 황혜미,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의 이미례 등 한손에 꼽을 정도로 여성감독이 이어졌다. 이후 임순례 감독을 필두로 굳이 여성감독으로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성 영화인들은 각 분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이 박남옥에서 출발한 계보를 이룬다고 또 박남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기 위한 고군분투의 역사가 박남옥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의 영화 인생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무대는 배경에 영상을 장면변화에 따라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인다. 폐관된 국도극장, 중앙극장, 그리고 박남옥의 사진, 영화배우의 사진, 바닷가 파도, 전후의 건물, 기상의 변화 뿐 아니라, 추상화의 화면까지 투사해 관객의 감성을 절묘한 음악연주와 함께 부추긴다. 기존의 대극장 무대를 한단 높이고 배경 앞에도 높은 무대를 만들고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자리를 잡고 연주를 한다. 


박남옥이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당대 유명영화배우들이 등장하고, 아기를 엎고 촬영에 임하면서, 박남옥의 투포환 선수로의 활약 그리고 남자관계나 친지, 여식이 등장하고, 윤심덕의 노래가 고령의 관객의 기억을 되살린다. 출연진의 호연은 물론 열연과 열창으로 극을 이끌어 가고, 영화 <미망인> 이 단지 3일 상영으로 막을 내리면서 안타까운 상황이 종반까지 이어지면서 출연진 전원이 등장해 합창과 무용으로 대단원을 장식한다.


국립창극단 출연진, 박남옥 역 이소연, 김신재 역 김지숙, 이민자 역 김미진, 이택균 역 김수인, 김영준 역 이광복, 방영자 역 조유아, 박영숙과 유계선 역 이연주, 나애심과 윤심덕 역 민은경, 신동훈과 전창근 역 유태평양 그리고 R 역 조영규, 앙상블로 안미선, 한진수, 이성현, 홍서영, 김기진, 채정원, 박차오름, 정제이, 안은혜, 문경태, 송인준, 김유민, 조형진, 박리안, 장종원, 안유진 등이 출연한다.



국립무용단 출연진 장현수, 노문선, 이세범, 조수정, 최원자, 정세영, 박기환, 엄은진, 박미영, 전정아, 박기량, 이민영, 박지은, 황용천, 송지영, 이석준, 박수윤, 박소영, 이태웅, 이도윤  등이 출연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주진, 대금 문형희 장광수, 소금 김대곤, 피리 태평소 강주희, 피리 이상준, 생황 홍지혜,해금 장재경 허은영 지현정 이경은, 가야금 문양숙 최용희 서희선, 거문고 손성용 마현경 신지희 , 소아쟁 정재은, 대아쟁 현졍진, 타악 이승호, 가야금 문세미, 양금 송승은, 그리고 객원연주진 피아노 이미나, 기타 천상혁, 베이스 정원호, 드럼 이주현 등이 출연한다.


 작·편곡 나실인, 안무 금배섭, 협력연출 윤혜진, 협력안무 장현수, 무대감독 오상영, 무대조감독 정헌탁 이상명, 무대디자인 박상봉, 영상디자인 정재진, 조명디자인 이동진, 음향디자인 지 영, 의상디자인 김지연, 소품디자인 정윤정, 분장디자인 백지영, 조연출 박주영 김하늬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국립극장의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합동공연 고연옥 작, 나실인 작곡 편곡, 김광보 연출의 <명색이 아프레 걸>을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명작 총체극으로 탄생시켰다.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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