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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세계적 거장 ‘아이 웨이웨이’의 첫 국내 개인전 개최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1-04 03: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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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웨이웨이 서면인터뷰

[이승준 기자] 아이웨이웨이는 1957년생으로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 아이칭이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때 지식인으로 추방당한 인물이다. 아이웨이웨이는 성장과정에서 엄청난 고난과 소외를 겪어냈고, 1982년 뉴욕시에 입성한다. 빈민촌인 이스트빌리지(지금은 부촌이다) 지하 아파트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뉴욕의 예술혼을 빨아마셨다. 나는 1966년 이스트빌리지에 살았는데 그때 그를 못 만난 게 아쉽다. 앤디 워홀의 어처구니 없는 팝아트, 라우센버그의 네오다다이즘,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의 세계적 작품들이 아이웨이웨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미술에 대한 그의 고정관념을 깨버린다. 특히 이때 1960년대 최고의 비트 시인인 앨런 긴즈버그와 친구가 된다. 긴즈버그 역시 아이칭을 늘 존경해왔고 아이웨이웨이는 그를 통해 잭 케루악 같은 전위 시인, 밥 딜런과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같은 사이키델릭 음악가를 소개해 관념의 문을 넓혀줬다.


무엇보다 아이웨이웨이는 뉴욕 길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통에 시달리는 마약중독자들, 타임스스퀘어의 창녀들, 배고픔에 시달리는 노숙자들이었다. 아이웨이웨이도 센트럴파크에서 관광객들 초상화를 그려주고 생활고를 이겨냈다. 그리고 유명한 미술학교 아트 스튜던츠 리그(ASLNY)에 입학한다.


2008년 중국 스촨성 대지진 후 정부를 극심히 비난한 죄로 그는 뇌진탕에 이르도록 폭행당하고 4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후 여권을 다시 돌려받고 그는 세계적인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중국 정부도 최고의 대가를 더 이상 가둬둘 수 없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디자인한 사람이다!


지금 뉴욕 미술계는 아이웨이웨이 열풍에 빠져 있다. 그가 감독한 다큐영화 'Human Flow(인류의 흐름, 즉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의 난민 위기)'가 각광받고 있다. 베네치아 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고 있다.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지구촌 난민 6500만명은 길 없이 움직인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전쟁터에서 평화를 찾아서, 기후 변화 때문에 무더운 나라에서 차가운 나라로. 이러한 인류의 흐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이웨이웨이는 말한다. "We all bear the res ponsibility(이 문제는 인간 모두의 책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이웨이의 '인간의 미래' 전이 오는 4월 17일까지 열린다. 전시에 앞서 아이웨이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들었다. 


# 얼마전 홍콩의 M+문화박물관이 선생님의 대표작인 '원근법 연구' 작품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관내 전시에서도 제외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정부의 문화예술검열 강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 가치라고 보시는지요?


보통 표현의 자유는 좁은 의미로 어떤 정치환경이나 정치체제 안에서 개인이 실제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라 여겨지지만 더 중요하게는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란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이상 없게 됩니다. 


아이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연작 중 베이징 톈안먼/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인 것입니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현실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생명으로서 개체가 당연히 자신만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 없이는 그 누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이 자유는 사회적인 약속이어야 하며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M+미술관 문제로 돌아가면,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어느 수준의 검열을 받고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만 이러는 게 아닙니다. 중국은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 만약 한국에서 '원근법 연구' 작업을 하신다면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바로 대답하기는 좀 어렵네요. 제 작품은 모두 즉흥적으로 제작된 것이며, 따로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도착한 곳에서 셀프 촬영을 했던 것이며, 언젠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찍고 싶습니다. 


# 코로나 펜데믹이 일상생활과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을 무렵 저는 로마에서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공연을 갑자기 취소해 충격이 컸습니다. 


아이웨이웨이의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 난민들의 피란길을 묘사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사태가 막 폭발했고, 이후 유럽으로 확산되는 출발지였습니다. 그래서 2020년 3월로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했고, 내년 3월에 오페라 '투란도트'를 다시 공연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제한된 생활을 했는데, 계속 스스로의 상태를 조정해 새로운 제약에 적응하려 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을 제한하는지도 보았는데요, 저는 정부가 개인이 스스로의 생명을 관장하는 일에 제한을 가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로병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정부가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했고, 중국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들은 군사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습니다. 


사실 예술가로서 저는 이렇게 제약이 많은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정치 난민으로서 아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습니다. '바퀴벌레' '로힝야', 그리고 우한 코로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입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인 '나무'도 이미 완성했습니다. 


제 작업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이나 예술가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습니다. 만약 역할이란 것이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겠죠.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합니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당연한 것입니다.


왼쪽부터 ‘검은 샹들리에’, ‘색깔 입힌 화병’, ‘한나라 도자기 깨뜨리기’ 퍼포먼스 사진

하지만 지금 예술은 이미 반은 죽은 상태이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미학, 철학적 사유는 사실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세계화가 낳은 문제이죠. 


이렇게 큰 인류의 고난과 불안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한국에 전시된 '검은 샹들리에'는 사람의 두개골과 인체의 골격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묘사한 것입니다. 


# 최근의 시진핑 체제 강화가 중국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영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국 예술계가 더 나아지지 않겠지만,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할 것입니다.


#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미디어 작품을 시도하실 수도 있나요?


예술은 문제와 모순으로부터 나오고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정치 환경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바로 이렇습니다.


# 어떤 채널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제 이슈를 파악하시나요? 또 현재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저 스스로가 바로 국제 이슈입니다. 제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제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죠.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고, 거기서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봅니다.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아이웨이웨이의 대표작 ‘빨래방’(2016)(가운데) 왼쪽 벽면 작품이 ‘난민 구조선 시워치 3의 2019년 6월 항해 경로’, 오른쪽 청화백자 작품이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이다.일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입니다. 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일하기와 작업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일하기란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만 하는 것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지금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고 요 며칠은 이탈리아에 다녀옵니다. 자주 가는 곳은 영국이고, 작업하느라 독일에도 자주 갑니다. 저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 중국 정부가 전국 학교에서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나 정부는 미래의 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국가 내부에 가치관이 꼭 형성돼 있어야 하고, 가치관은 국가의 형태를 만드는 기초입니다. 제가 누군가의 사상을 연구해 본 적은 없지만 모든 국가는 어떤 가치관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가치관의 표현은 주로 정부가 하는 일이 되는 것이겠죠. 


# 'Coronation'을 제작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상영 후 어떤 불이익을 당하진 않으셨나요?


'Coronation'을 비롯해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팬데믹이 심각해지던 시기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우한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을 완성했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반겼지만 결국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행동에 모든 면에서 그 국가들의 행동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난민들 구명조끼로 만든 ‘구명조끼 뱀’# 바디유초가 원래 선생님의 조수였고, 현재 이탈리아에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그는 패러디를 통해 중국 정부에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어 전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선배 작가로서 그의 용기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바디유초는 청년 세대의 예술가입니다. 그는 적극적이고 집요하죠. 또한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을 나름의 의미를 갖습니다.


# 중국이나 중국 미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실 중국미술계와 중국은 하나입니다. 중국이 직면한 도전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힘과 보잘것없는 가치체계로 어떻게 서방 자본주의, 가치체계를 설득하고 정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도전은 점점 거세게 압박할 것입니다. 


중국 미술계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추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했습니다. \ 언어와 다른 수단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중국 미술이 생존하려면 이러한 태도를 전환해야할 것입니다.


# 예술가로서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 자신만을 놓고 보자면,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얘기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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