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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8] 이근삼 선생님과의 가상 인터뷰
  • 박정기 자문위원
  • 등록 2022-05-11 21:25:57
  • 수정 2023-02-15 08: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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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이근삼 

박정기     선생님, 2003년 원자력병원에서 돌아가신 후, 20년 만에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습 니다. 자하문 밖 평창동에서 사셨던  선생님 댁을 처음 찾은 것이 1993년이었죠.


이근삼     맞아, TV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던 배우가, 내가 심사를  했던 삼성문화재단에서  제정한 도의문화 저작상 희곡부문에 입상해, 선정해 주셔서 고맙다고 나를 찾아왔었지. 원래 자하문 밖은 자두, 복숭아, 능금을 기르던 과수원으로 꽉 차있었는데, 내가 살 때에는 주택들만 들어차 있어서 놀랐다고 한 말을 기억하네.


박정기     선생님 작품은 극단 가교와 극단 민중에서 공연을  많이 했지만, 서울대학교에서도 <원고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공연했습니다.


이근삼    자네가 대학연극 연출을 여러 편 했다는 이야기를, 내 처제한테서 들었다네, 서울미대 출신인데, 미숙이도 자네가 연출한 윌리엄 서로연 원작, 김기팔 번역의 <혈거부족>에 출연했다고 하더군,


박정기     연기를 잘 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근삼     인도네시아에 가서 있다네,


박정기     아! 네.... 선생님 작품은 사실극이 아닌 실험극적이고, 풍자극적이고, 반극적 요소가 많아서 즐겨 관람하곤 했었습니다. 게다가 원로 배우 김동원 선생님 은퇴 공연 <이성계의 부동산>은 한편의 명작이 었습니다.


이근삼     연출을 한 김도훈이 수고를 많이 한 작품이지.



박정기     저도 선생님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2008년에요.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장이셨던 김흥우 교수 소개로, 김후란 선생께서 이사장이시고, 전옥주 희곡작가가 총무이신 문학의 집 서울에서 <위대한 실종>을 각색 연출해 문인극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이근삼     자네가, 내가 세상을 떠난  5년 뒤에, 문학의 집 서울에서 내 희곡 <위대한 실종>을 공연했다고?


박정기     네, 사모님이신 홍인숙 여사께서도 오셔서 관람하셨습니다. 황금찬 시인, 성창경 시인, 이경희 시인, 김흥우 희곡작가, 유자효 시인, 지연희 수필가, 홍성훈 아동문학가, 이애정 시인, 권남희 수필가, 전길자 시인, 김유선 시인, 정승재 소설가, 김용만 소설가, 서지원 소설가가 출연해, 열정과 기량을 다해 공연을 해서 성공을 거두 었습니다. 관객 중에는 김남조 시인, 국립극장 단장 백성희 선생님, 원로배우 최명수 선생님, 신봉승 시나리오 작가, 이길융 극작가, 최보경 의상 전문가, 전세권 연출, 심양홍 배우, 권병길 배우 등 많은 분들이 문인들과 연극 관람 후 갈채와 환호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근삼    연출을 잘 했으니까 그랬겠지.


박정기    제가 아니고, 연세가 많으신 출연자 분들께서 젊은 문인들보다  30분이나 일찍 오셔서 연습에 임하시고,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하셨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원래 선생님 작품이 명작이라..... 


이근삼    명작은 무슨....? 자네가 쓴 도의문화저작상 희곡부문 입상작품인 <고통이  없이 어찌 아름다움이 피어나리>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 탄생 과정을 희곡으로 묘사했는데, 수준 높은 희곡 작품이라,  나도 읽으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다네, 공연은 했던가? 


박정기    그런데, 작품이 선정된 지 30년이 된 현재까지 공연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사에서 난해한 표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 공연하기 곤란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쉬운 말로 풀어서 대본 수정을 했습니다. 


이근삼    오! 그 때 내가 국립극단에 그 작품을 소개하겠다고 했었는데....



박정기    참! 선생님께서는 6 25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을 하셨더군요.


이근삼    그랬었지. 내가 영어로 쓴 첫 희곡 <끝없는 실마리>와 <다리 밑에서>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연되기도 했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동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지, 동국대 뿐 아니라, 중앙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대학에 연극 영화과 설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네, 그래서 중앙대, 동국대, 한양대에서 한국 최초의 연극 영화과가 생겨났지.


박정기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연극영화과 창설의 주인공이셨군요.    


이근삼     그런 셈이지. 정년은 서강대학교에서 마쳤고.


박정기    강의하시면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제18공화국>, <30일간의 야유회>, <아벨만의 재판>, <거룩한 직업>, <국물 있사옵니다>, <향교의 손님>, <유랑극단>, <내일, 그리고 또 내일>, <막차 탄 동기동창>,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외의 희곡을 5, 60편이나 집필하셨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방송 작가 김기팔 선배가 선생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이근삼    오! 김기팔이,,, 내 고향 후배인데,  TV 드라마 <땅>, <제1공화국> <아버지와 아들>, <공주 갑부 김갑순> 같은 시청률이 높은 작품을 많이 썼지, 그런데 아깝게 55세에 요절을 했지. 자네가 기팔이 작품 <춘하추동> <사랑과 슬픔의 강>에서 주인공을 한 것을 기억하네. 참! 기팔이 부인 이름이 최인숙인데, 내 처 홍인숙하고, 이름이 똑같아, 둘이 만나면 가끔 각자 처 이름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다네.


박정기     남산 예술센터 드라마센터도, 선생님께서 록펠러 재단을 동랑 유치진 선생께 소개해, 록펠러 재단 지원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근삼     한국에 연극영화과가 생겼으니, 공연장이 필요할 거라며, 적극 협조 하겠다기에, 동랑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지. 그게 계기가 되어 드라마센터 뿐 아니라, 서울 예술대학이 생겨나고....



박정기     드라마센터가 잘 운영되었습니다. 제가 연출한 서울대 총연극회의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알베르 까뮈 각색, 오태식과 김현이 공역한 <악령과> 롤프 호흐후트의 <신의 대리인>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몇 십 년 간 잘 운영되다가, 현재 공연장이 폐쇄가...


이근삼     저런!


박정기    명동국립극장도 폐쇄되어 한동안 증권 거래소를 했었는데, 20 여년 전 한국연극협회 박 웅 이사장하고, 명동상인회 김장환 회장이 자주 만나, 몇 십 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을 했습니다.


이근삼     오!


박정기     극단 가교 창단 대표였던 이승규 연출을 기억하시죠? 


이근삼     기억하고 말고.... 내 제자이기도 한데...... 극단 가교에서 초창기에, 내가 번역한 작품, 내가 쓴 작품을 많이 공연했다네, 이승규 연출로... <아벨만의 재판> <30일간의 야유회>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공연이 되었지.


박정기     이승규 연출은 그 동안 미국에 가 있다가 귀국해, 1995년에서 3,4년간 인천시립극단 단장 겸 예술 감독을 했습니다. 그때 제 작품 <황금 잎사귀>를 인천시립극단 단원 정남철과 공동 연출해서 공연했었죠.


이근삼     나도 관람을 했지. <황금 잎사귀>가 그해 서울 연극제에서, 지방 극단 작품으로는 최초로 초청되어, 당시 문예회관에서 서울연극제  개막 작품으로 공연이 되었지. 난초를 의인화 시켜 만든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이승규 연출 박정기     네, 중투라고, 자생 춘란의 일종인데 잎사귀에 무늬가 있어, 산삼보다도 비싼 가격이라, 중투를 보는 대로 사람들이 캐어가니, 산삼이 차츰 사라지듯, 중투도 멸종이 될 거라며, 중투가 가득 찬 산 골짜기에서, 주인공이 난을 캐지 않고 빈손으로 되돌아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근삼     그래, 한국  최초의 자연 보호나, 환경 보호 연극이라고 할 수 있지. 


박정기    그 작품이 사실은 <중투>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저 세상 사람이 된, 극단 작업의 길명일 연출이, 그 해 서울연극제에 참가 신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정에서 탈락했죠. 그러자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평론가 구희서 선생이, 아까운 작품이라며, 인천시립극단 

이승규 연출에게 작품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이승규 연출이 작가 이름을 보고는, 저와 잘 아는 사이라며, 제게 뮤지컬로 각색을 해 달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이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대성공을 거둔 소문이 나자,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초청이 된 거죠. 현재는 아르코예술극장이지만 당시에는 문예회관 공연을 구희서 선생과 심사위원들이 보시고는, 자신들이 탈락 시킨 사실을  잊었는지, 이런 재미있는 작품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이승규 연출에게 물어서, 구희서 선생과 이승규 연출이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고 하더군요.


이근삼    내가 봐도 좋은 공연이었어, 그 후로, 해마다 계속된 서울연극제 개막 공연으로, 전국연극제 대상수상 작품이 초청공연이 되었다네.


박정기     네....


이근삼    극단 가교를 도와주었지만, 후에는 민중극장에 힘을 쏟았다네, 현재 미국으로 가 있는 이효영 연출, 그리고 내 제자 정진수 연출에게도 힘을 보태주었지. 


박정기    민중극장 공연은, 빼놓지 않고 모두 관람했습니다. 수준 높은 공연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셨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은 연극이라고 생각하면서 관람을 했으니까요. 극단 가교도 현재까지 공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가교 공연을 가서 보고 있습니다.


이근삼    오!


구희서 평론가

박정기    선생님 작품 <막차 탄 동기동창>은 현재까지 극단 단홍에서 유승희 연출로, 몇 년 째 순회공연이 되고 있습니다. 명배우 심양홍과 최성웅 이 출연해 열정과 기량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근삼    오!


박정기    그리고 금년에는 서울연극협회 서초지부에서, 선생님의 희곡 <30일간의 야유회>를 공연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근삼    서초지부라니?


박정기   서울의 각 구마다 연극협회가 생겨나, 현재 20개 가까운 지부극회가 생겼습니다. 제가 서초지부 초대회장을 했었습니다.


이근삼    오!


박정기    선생님께서도 하늘나라에서 계속 작품을 쓰리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80센티미터나 되시는 훤칠한 키에, 이발소에서나 하는 긴 혁대에  면도칼을 갈아서 면도를 하시던 모습,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작품을 계속해 쓰시는 거죠?


이근삼    하하하......글쎄... 자! 이제 그만 가 보시게나,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네. 잘 있게. 좋은 작품 쓰는 것 게을리 하지 말고, 


박정기    선생님!


이근삼    난 가네.....


박정기    선생님!


* 주요경력


황해도 금천생, 서울고 서울대미대, 서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극작가/연출가/평론가, 한국희곡뮤지컬창작워크숍 대표,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위원, 전 서초연극협회 회장,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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