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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78] 조선의 대표적인 상업 거래 공장 '운종가'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07-16 18:48:41
  • 수정 2024-03-14 06: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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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있는 집터, 왼쪽 상단에 큰 길은 배수로로 쓰였다[박광준 기자] 운종가(雲從街) 시전(市廛)은 한성부 중심부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상업 거래 공간이다.


운종가는 시간을 알리는 종(鐘)이 설치됐던 종루(鐘樓:鐘閣) 때문에 이름 붙여진 종길[鐘街]로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길'이라 해서 '운종가'라고 불렀다. 종루가(鐘樓街), 종로(鐘路)라고도 한다.


시전 상점들이 육조거리[六曹街]부터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까지, 종루부터 숭례문(崇禮門:남대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러한 시전 상점들이 입주한 건물들은 조선왕조 초기에 관청 주도로 건설됐다.


운종가에 위치한 유기전-유기로 만든 그릇 등을 파는 가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시전 구역 정비는 1410년(태종10)으로, 이때 업종별로 거래 공간이 구획됐고, 1412년(태종12) 2월부터 본격적으로 행랑(行廊) 건설 사업이 시작돼 이듬해 5월에 1,360칸[間] 규모로 완공된다.


대로(大路) 주변에 양쪽으로 건설된 좌우 행랑들이 모두 시전 공간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으나, 상거래 활성화에 따른 사전(私廛) 증가 추세에 따라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전 상점들의 입주 및 활동 범위는 점차 확장된다.


공납(貢納) 등의 국역(國役)을 지는 대신에 난전(亂廛)을 통제할 수 있는 금난전권(禁亂廛權) 같은 독점적 특권이 부여됐던 육의전(六矣廛)은 종루 인근에 배치됐다. 이를 '육주비전(六注比廛)'이라고 한다. 육의전을 구성하는 6개 시전 업종은 시대에 따라 일부 변화됐고, 육의전 외 상점들은 비육주비전(非六注比廛)이라고 했다.


운종가의 점포-가죽, 말총 잡물을 파는 상점 

이러한 시전 행랑의 뒤쪽 골목을 피맛[避馬]길이라고 했다. '말을 피하는 길'이라는 뜻으로, 운종가 큰 길에는 지체 높은 고관대작(高官大爵) 조정 관원이나 양반들의 행차가 잦았기 때문에 관리들과 마주칠 때마다 예(禮)를 갖추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이 애용한 작은 골목이었다. 피맛골이라고도 한다.


국왕이 행차 도중에 일반 백성들과 만나 상언(上言)을 듣는 공시인(貢市人) 순막(詢漠)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전 인근에 마련됐었다. 운종가와 육조거리가 만나는 혜정교(惠政橋) 앞, 돈화문길과 운종가가 만나는 파자교(把子橋) 앞, 그리고 주변 철물점 때문에 철물교(鐵物橋)라 불렸던 통운교(通雲橋:靑雲橋) 앞 등이 대표적인 순막 설치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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