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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이어보기 23] 추존 진종-효순소황후 조씨의 능 ‘영릉永陵’
  • 이승준
  • 등록 2022-07-30 05:54:56
  • 수정 2023-03-13 1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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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영릉은 추존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진종소황제, 오른쪽이 효순소황후의 능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검소하게 조성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돼 있다. 영릉의 비각은 총 2개로 비각 안에는 세 기의 능표석이 있다. 1비는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 2비는 진종대왕(眞宗大王)의 비, 3비는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의 비로 진종이 추존될 때마다 능표석을 새로 세웠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했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1쌍씩 배치했다. 문석인은 관모를 쓰고 양손으로는 홀(笏)을 쥐고 있고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한 편이다. 관복의 소매는 길게 늘어져 있고, 팔꿈치 부근에는 세 줄의 주름이 새겨져 있다.


1728년(영조 4)에 진종이 왕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729년(영조 5)에 파주 순릉 왼쪽언덕인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했다. 이후 1751년(영조 27)에 효순소황후가 왕세자빈(현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752년(영조 28)에 효장세자묘 왼쪽에 묘를 조성했다. 그 후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계승상 아버지가 되는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영릉이라 했다.



진종소황제(재세 : 1719년 음력 2월 15일 ~ 1728년 음력 11월 16일)는 영조와 정빈 이씨의 아들로 1719년(숙종 45)에 창의궁에서 태어났다. 1724년에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경의군(敬義君)에 봉해졌다가 이듬해인 1725년(영조 1)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러나 1728년(영조 4)에 창경궁 진수당에서 10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후 1776년(영조 52)에 영조의 명으로 이복동생 장조(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정조)이 양자로 입적이 되자 효장승통세자(孝章承統世子)라 했고,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진종으로 추존됐다. 그 후 1908년(융희 2)에 진종소황제로 추존됐다.



효순소황후 조씨(재세 : 1715년 음력 12월 14일 ~ 1751년 음력 11월 14일)는 본관이 풍양인 풍릉부원군 조문명과 완흥부부인 이씨의 딸로 1715년(숙종 41)에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27년(영조 3)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됐으나, 1729년(영조 5)에 진종이 세상을 떠나자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다. 이후 1751년(영조 27)에 창경궁 건극당에서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빈에게 효순(孝純)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세손 정조가 진종의 양자로 입적되자 효순승통세자빈(孝純承統世子嬪)이라 했다.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효순왕후로 추존됐고, 1908년(융희 2)에 효순소황후로 추존됐다./사진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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