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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48 상주시 편] 서원철폐에서도 훼철되지 않은 상주 ‘옥동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08-16 14:35:17
  • 수정 2022-12-26 10: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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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서원 전경 [이승준 기자] 상주 옥동서원은 고려 말 3명의 국왕과 조선 초 4명의 국왕을 모신 충신으로 조선 초 유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교 숭상 정책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인물인 방촌 황희(尨村 黃喜, 1363∼1452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세운 서원이다.


옥동서원은 1518년 횡당(黌堂)을 세워 황희의 영정을 모신 것이 효시로, 1580년 백옥동 영당(白玉洞 影堂)이 건립되면서 황희를 배향(配享, 신주를 모심)했다. 171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전식(全湜, 1563~1642년)을 배향했고, 1786년 황효헌(黃孝獻, 1491~1532년)과 황뉴(黃紐, 1578~1626년)를 추가로 배향했다.




1789년에는 조정으로부터 현재의 명칭인 ‘옥동서원’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옥동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황희를 모신 서원으로는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황희 등 4현(황희.전식.황효헌.황뉴)의 향사(享祀, 제사)가 전승돼 오고 있다.황희는 태종(재위 1400∼1418)과 세종(재위 1418∼1450)대에 걸쳐 육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했고 20여년 동안 의정부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서 왕을 보좌했다. 학문에 깊고 성품이 어질며 청렴한 분으로서 조선 왕조를 통해 가장 이름 높은 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 외에 제물을 마련하는 전사청과 서원 관리인이 거처하는 고사, 화직사, 묘직사 등이 있다.


사당인 경덕사는 황희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식.황효헌.황맹헌.황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가운데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했다. 강당은 2층 형식으로 된 기와 건물로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했다. 아래층은 출뒀다. 남쪽은 ‘진밀료’, 북쪽은 ‘윤택료’ 마루에는 ‘청월루’라는 현판이 각각 걸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옥동서원은 황희 선생 영정 3점, ‘방촌선생문집’ ‘반간집’ ‘황씨세보’ ‘장계이고’ ‘만오집’ 등 총 5종 241책의 책판을 비롯해 각종 고문서 300여 건, 현판 11개 등의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사진-문화재청, 상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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