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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신남방 정책
  • 박민식/복지국가소사이어티 경제산업위원장
  • 등록 2022-09-26 19: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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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령여한(號令如汗)이란 말이 있다. 호령은 흐르는 땀과 같다. 큰 명령은 한 번 흘러 되돌아갈 수 없는 땀과 같다. 임금의 명령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전쟁에서 한 번 발포(發布)한 명령은 취소하지 못한다. 명령은 엄중하고 또 엄중해야 한다.


# 번복의 반복


지난 6월 22일 경찰 치안감 인사가 2시간 만에 번복되었다. 6월23일에는 고용노동부의 주 근로시간에 대한 번복이 있었다. 8월3일에는 교육부에서 ’취학연령 만 5세 학제개편 방안’을 번복했다. 8월4일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관한 정책이 번복되었고, 동일한 날짜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이 번복되었다. 그리고 최근 9월16일에 영빈관 건립 계획이 취소되었고, 9월 18일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이 취소되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라의 중대사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란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이리저리 뒤집고 휘저으면 연한 생선 살은 다 부서진다. 가만히 두고 세심하게 살피라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해로<解老> 편에서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자주 뒤적이면 생선의 윤기를 해친다. 큰 나라도 다스릴 때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한다.”라고 해석했다. 정권만 바뀌면 생선이 뒤집힌다. 그것도 모자라 같은 정권 내에서도 수없이 뒤집히니 생선이 맛을 낼 수가 있겠는가?


지난 8월 16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블루리본위원회(Blue Ribbon Committee)’를 제안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정책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다. 블루리본위는 정부와 관계가 없는 전문가로 구성된다. 정계·산업계·학계·언론계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위원회다. 정치적 영향이나 기타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된다. 자체적인 권한도 없다. 위원회의 가치는 이해관계에 매이지 않는 객관적 권고사항의 제안 행위에 있다. 기소, 입법 등의 권한이 없다. 정책에 대한 권고사항만이 있다. 그럼에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정책의 전문성, 명료성, 일관성 때문이다.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신남방 정책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때 설립된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이하 KIND)를 소개한 바 있다. KIND는 기존 KOTRA의 단순 정보제공, 교육, 박람회 개최 등 소극적 역할을 극복했다. 신남방 정책이라는 새로운 시장 개척 정책 기조로 공격적인 해외시장개발과 투자를 지원해 왔다. 과거와 같이 사업을 수주하는 방식이 아니라 PPP(Public-Private-Partnership) 모델로 시장을 개발하고 사업을 발굴하는 정책이다. 개발한다는 의미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예로 폴란드의 폴리머리 폴리체 플랜트 사업을 2019년도에 수주한다. 폴란드의 발주에 의한 것이 아닌, KIND가 발굴을 하고 사업의 타당성도 KIND가 검토를 했다. 그리고 폴란드 정부와 협상한 후 국내의 자금을 가지고 투자하여 이후 20년간 연간 40만 톤씩 폴리프로필렌을 생산 및 판매를 하고 이를 통해 투자와 수익을 가져온다. 이는 결코 민간이 수행할 수 없다. 대 정부 간의 협약과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고 개발의 주체와 운영의 주체는 민간이 수행하게 한다. KIND는 설립 후 3년 반 만에 10개 국가에서 15개 프로젝트에서 2억8천만 불(3,400억 원) 수주의 실적을 올린다. 이는 투자 규모일 뿐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설계, 건설, 시공의 단계까지 포함하면 4조 원 규모에 이른다. 더 나아가 생활형 서비스 분야까지 확장하게 되면 지속적인 수익모델이 가능하다. 이러한 모델에 중소기업이 처음부터 참여하게 하면 산업생태계는 대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 개발과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의 매우 바람직한 정책이다. 바로 신남방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신남방, 신북방 정책의 변화를 염려하게 하는 정책 발표를 했다. 신남방, 신북방 정책을 총괄 담당했던 조직은 각각 아주통상과와 통상협력총괄과로 변경된다. 신남방, 신북방의 정책과 비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외교부는 단순의 용어의 변경일 뿐 과거 정책을 폐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핵심은 시장개발이다. 단순 통상의 역할이 아니다. 아주통상과/통상협력총괄과라는 이름은 오랜 과거로의 회귀를 느끼게 한다. 지켜봐야 하지만 우려가 된다. 이낙연 전 총리도 지난 5월 22일 ‘신남방 정책의 폐기가 사실이라면 윤정부의 판단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 총리는 “신남방 정책과 신북방 정책은 오랜 외교 다변화 정책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로이 체계화한 것이고, 특히 인도까지 포함한 남아시아의 부상은 신남방 정책의 정당성과 실적을 높여줬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오랜 숙제이며 시대의 요구인 데다 성과도 나타나는 정책이라면 폐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시키며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정책을 얹는 것이 국익을 위해 옳다고 믿는다. 그 길을 새 정부에 권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 총리의 말을 추가로 빌리자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몹시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 도전의 일부는 새 정부가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한다.


# 반도체 착시가 현실로


지난 8월 무역수지가 94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4월부터 5개월째 적자다. 14년 이후 5개월 연속 적자다. 통계 작성 후 66년 만에 최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해왔듯이, 반도체 착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특정 시장과 반도체 등 특정 산업 분야 주도의 수출구조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대(對)중국 무역수지는 올 8월 말까지 올해만 32조 6800억 달러 적자다. 역시 5월 말부터 4개월 연속 적자다. 한·중 수교 후 처음이다.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의 82.9%가 대(對)중국 무역이었다. 물론 중국 경제 침체가 주원인이다. 따라서 다른 국가들도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반도체 제조 장비 부분에서 미국과 일본의 수출 감소는 각각 13.2%, 15.3% 다. 반면 우리나라는 51.9%가 감소했다. 감소 비중뿐 아니라,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통상과 현상백 팀장은 “무역수지에 있어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데 대중 무역수지만 하더라도 반도체를 제외하면 2021년에 이미 적자로 전환했다”라고 한다. 중국은 이미 메모리반도체의 자급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의 60%(홍콩 포함)가 중국이었다. 그러나 이미 메모리반도체 기술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지난 7월 ‘196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엔 애플이 YMTC 128단 낸드플래시를 아이폰14에 탑재하기로 했다고 한다. 중국을 시장으로 하고 반도체에 편중된 시장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다시 강조한다.


해답은 수출 품목의 다양화, 수출시장의 다변화다. 시장의 개발이다. 수출 품목의 다양화란 제조 위주의 생산 분야를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스마트시티) 수출이라는 국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2018년부터 추진된 ‘신남방 정책’의 기조가 그러하다. 신남방 지역 국가와의 교역액은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2002억 달러를 기록했다. 문제는 정책의 연속성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현 정부에서 ‘신남방 정책’은 역사의 그늘로 사라졌다. 말레이시아 등 현지 기업과 주재원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신남방 정책이 어떻게 되는지 우려하고 있다. 대중국 의존을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리더십이 아쉽다. 리더십 부재의 원인에 정치적 개입이 한 원인이다. 정치적 이해가 정책을 실종시켰다. 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정치만 작동을 할 경우 정부는 골든 타임을 놓칠 것이다. 연속 무역적자 현상을 계절적 요인의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하는 현 정부의 판단이라 더욱 우려스럽다.


# 외교 참사 보다 더 우려스러운 수출 참사


최근 방위 산업 분야에선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와 K9 자주포 1차 이행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약 7조 6780억 원이다. 앞으로 발주하게 될 FA50 경공격기 등을 포함하면 총 148억 달러(약 19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는 호주와 1조 원 규모, 올 2월에는 UAE 및 이집트 등과 약 2조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했다. 그런데 방위 산업의 활성화도 갑자기 도깨비방망이처럼 금 나와라 뚝딱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부터 시작한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국산 전투기로 추진하고자 한 전략적 판단과 리더십, 외교, 국방, 주변국과의 뛰어난 대외 협상력 등을 바탕으로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북관계는 대화와 평화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매년 국방비 예산을 8%씩 증가시켜 나가며 자주 국방력을 키워 온 포괄적, 전략적 정책 리더십이 있었다. 또한, 국방 분야는 정권의 변화와 정치적 이해 속에서도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으로 정치판이 또 뜨겁다. 물론 ‘외교 참사’일 수도 있으나, 더 큰 문제는 ‘수출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국민의 선택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어느 정권이든 성공을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서다. 국방만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분야가 미래 민생의 문제다. 산업경제정책이 정치적 이해로 번복되고 갈팡질팡해서 안 되는 이유다. 제안한다면 이제라도 미국의 ‘블루리본위원회(Blue Ribbon Committee)’와 같은 조직을 검토 바란다. 지금까지 많은 씽크탱크가 나름 제 역할을 해 왔지만 정책적 균형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진보와 보수라는 논쟁도 고루하다. 복지국가라는 국가 전략적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균형 있는 제3지대의 전문가 조직이 필요하다. 정치의 이해와 실리에 휩쓸리지 않고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위원회를 제안한다. 정책은 실종하고 언론과 말놀이만이 있는 정치판에 한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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