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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98] 남명 조식이 제자를 가르치던 '신산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2 14:49:54
  • 수정 2022-10-02 16: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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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조선시대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30년 동안 학문과 덕을 닦으면서 제자를 가르치던 서원이다. ‘산해정(山海亭)’이라는 이름은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경륜과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해 쓴 것이다. 


1593년(선조 21)에 서원으로 착공했으나 왜란으로 중지된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완성해 신산서원이라고 했다. 같은 해에 ‘신산(新山)’이라고 사액됐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고, 해방 후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김해시에서 신산서원을 복원했다. 


남명 조식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 생원 조안습(曺安習)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승문원판교 조언형(曺彦亨)이고, 어머니는 인주(仁州)이씨로 삼가현 지역의 유력한 사족이던 충순위 이국(李菊)의 딸이다.


1501년 경상도 삼가현(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의 토골(兎洞)에서 태어나 4∼7세 사이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왔고, 이후 아버지의 벼슬살이를 좇아서 의흥(義興).단천(端川)에 가기도 했으나 20대 중반까지 주로 서울에 거주했다.



서울의 처음 거주지는 연화방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이웃에 살던 이윤경(李潤慶: 후일의 판서벼슬을 지냄).이준경(李浚慶: 후일 영의정이 됨) 형제와 절친하게 지냈고, 이로 미루어 황효헌(黃孝獻)·이연경(李延慶)에게서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18세 때 북악산 밑의 장의동으로 이사해 성운(成運)과 평생을 같이하는 교우관계를 맺었고, 부근의 청풍계(淸風溪)에 숨어살던 성수침(成守琛) 형제에 종유했고,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가 죽임을 당한 일과 숙부 조언경(曺彦卿)이 귀양가는 현실을 크게 탄식했다.


이후 7∼8년 간 서울 근교의 백운대나 탕춘대의 무계동(武溪洞)에 있는 절을 찾아 독서에 몰두하면서 때로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다. 22세 때 생원.진사시의 초시와 문과의 초시에 합격했으나 회시에 실패했고, 26세 때 부친상을 당해 고향 삼가로 돌아가 3년 상을 마친 뒤, 한때 의령의 도굴산(闍堀山)에서 독서하다가 30세 되던 해 어머니를 모시고 김해 탄동(炭洞)에 있는 처가로 거처를 옮겼다.


장인인 충순위 조수(曺琇: 남평조씨)가 김해 일대에서 부자로 소문났던 만큼 처가의 도움으로 경제적 안정을 갖게 돼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독서에 힘쓰면서 특히 31세 때 서울 친구이던 이준경과 송인수(宋麟壽)로부터 선물받은 '심경(心經)'과 '대학(大學)'을 읽고 성리학에 침잠하면서 성운.이원(李源).신계성(申季誠).이희안(李希顔) 등과 함께 의리의 구명과 실천에 힘써 그 학적 기반을 확립했다.



37세 되던 해 어머니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되자 어머니를 설득, 과거를 포기한 뒤 비로소 처사로서 삶을 영위하면서 본격적인 학문연구와 덕성함양에 전념했다.


학자로서의 명망이 높아지자 1538년(중종 33) 경상도관찰사 이언적(李彦迪)과 대사간 이림(李霖)의 천거로 헌릉참봉에 제수됐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또 한번 만나기를 원하는 이언적의 요구도 후일을 기약하면서 거절했다.


45세가 되던 1545년(명종 1) 을사사화로 이림.송인수.성우(成遇).곽순(郭珣) 등 가까운 지인들이 화를 입게 되자 세상을 탄식하고 더욱 숨을 뜻을 굳혔고, 마침 모친상을 당함에 삼가로 돌아가 시묘(侍墓)했고, 상복을 벗은 후에는 김해 생활을 청산, 고향인 토골에 계복당(鷄伏堂).뇌룡사(雷龍舍)를 짓고 문인들과 함께 도학을 강론했다.


이 시기 노진(盧禛).강익(姜翼).김희삼(金希參) 등이 종유했고, 오건(吳健).문익성(文益成).이광우(李光友)가 처음으로 문하에 출입했다.



1553년 조정에서 내린 사도시주부의 관직을 사양했을 때 이황이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와 벼슬에 나가기를 권유하면서 '천리신교(千里神交)'를 맺기를 원했고, 이후 서너 차례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다.


다음 해인 55세 때 단성현감에 임명됐으나 “자전(慈殿)께서 생각이 깊다하나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어린 나이로 선왕의 한 아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의 재앙을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갈래 민심을 어찌하여 수습하렵니까?”하는 유명한 단성현감 사직소를 올려 척신정치의 폐단과 비리를 통절히 비판하면서 임금이 크게 분발해 명신(明新)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임금으로 하여금 국가 위기의 심각성을 깨우치도록 심금을 울리기 위해 격한 표현을 썼지만 임금의 어머니인 문정대비(文定大妃)를 과부라 한 것 때문에 죄를 입을 뻔했으나 대신과 언관의 구원으로 무사했고, 당대 사림의 훈척공격에 모범을 보인 것이라 해 조야에 명성을 크게 드러내게 되고 후세까지 길이 칭송됐다.


이 때를 전후해 정인홍(鄭仁弘).하응도(河應圖).하항(河沆).박제현(朴齊賢) 등 후일 그 문하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수업받기 시작했다.



61세 때인 1561년 삼가의 토골에서 진주 덕산(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의 사륜동(絲綸洞)으로 거처를 다시 옮기고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강학하자, 진주.산청.함양.거창 등의 인근지역은 물론 서울의 선비들까지 조식을 좇아 몰려들었다. 


바로 그들이 정탁(鄭琢).김효원(金孝元).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이정(李楨).김면(金沔).조원(趙瑗) 등이었고, 정구(鄭逑).최황(崔滉).곽재우(郭再祐).성여신(成汝信) 등은 이들보다 조금 늦게 문하로 들어왔다.


문정대비가 죽고 윤원형이 실각해 척신정치가 막을 내리던 1566년(명종 21), 정치쇄신과 민심수습의 일환으로 성운.이항(李恒) 등과 함께 유일(遺逸)로 징소돼 상서원판관의 벼슬을 받자, 66세의 나이로 상경해 사은숙배 후 임금을 면대하고 물음에 응했는데 명종의 성의와 대신의 경륜이 부족함을 알고 곧 사직, 하향했다.


이듬해 선조가 즉위한 이후 새로운 정치를 보필할 어진 인물을 구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차례 징소되고, 1569년(선조 2)에는 정4품인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의 벼슬까지 내려졌으나 조정이 헛된 자리로만 대우함을 알고 늙고 병들었음을 구실로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당시의 폐단 열 가지를 논하는 소를 올리되 민생구제가 급선무인데도 조정의 논의에 성리설만 무성할 뿐 실혜(實惠)가 없음을 경계했다.



특히 68세 때인 1568년에 올린 '무진봉사(戊辰封事)'에서는 유명한 ‘서리망국론(胥吏亡國論)’을 펴 서리의 작폐를 근절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등 나라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선조 초에 일어난 진주 지역의 음부옥(淫婦獄)에 관련돼 이정과 절교하고 뒤이어 그 문인들이 주동했던 음부집안의 훼가출향(毁家黜鄕)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기대승(奇大升) 등 일부 관료로부터 비방을 받아 곤경에 처하기도 했는데 조정에 나와 있던 그 문인 오건.정탁 등의 변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오히려 흉년이라 해 임금이 음식물을 내려주고 72세로 별세하기 직전 의원을 보내오는 우대를 받았지만, 이정의 편에 서서 음부옥에 관한 조식의 처신을 비난했던 이황의 편지가 후일 알려지면서 그 문인들 사이의 갈등을 깊게 하고, 끝내 정인홍(鄭仁弘)에 의한 이언적.이황 배척을 불러오게 하는 배경이 됐다.


조식의 학문은 처음 과거공부에 주력하면서 좌류문(左柳文: 春秋左傳과 唐代 문장가 柳宗元의 文體)을 주로 익혔으나 25세 되던 해에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다가 원나라 유학자인 허형(許衡)의 글에서 “이윤(伊尹)의 뜻과 안연(顔淵)의 학문을 체득하여 벼슬에 나가면 큰 일을 하고 재야에서는 지조를 지킨다.”는 글귀에 접해 크게 깨우쳐 이제까지 속된 학문에 빠졌던 것을 후회하고 비로소 성리학으로 나아가 6경 4서와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글을 탐독하게 됐다. 특히 '심경(心經)'을 중시해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약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성리학을 근본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다른 성리학자와 마찬가지로 경의(敬義)를 배움의 바탕이라 한다. 마음이 밝은 것을 ‘경(敬)’이라 하고 밖으로 과단성 있는 것을 ‘의(義)’라고 했다(평소 차고 다니는 칼에 內明者敬 外斷者義라고 새겨 넣었음).



이러한 조식의 주장은 바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해 수양하는 기본으로 삼고 ‘의’로써 외부생활 즉, 하학(下學).인사(人事)를 처리해 나간다는 의리철학 또는 생활철학을 표방한 것이었다.


북송대 성리학자들에 의해 수양론의 이념으로 정립된 ‘경’(보통 居敬.主敬으로 표현됨)을 받아들이면서도, ‘경’을 직접 드러내면서 실천하는 ‘의’를 함께 중시하는 데서 퇴계 이황과 차이를 보인다.


퇴계가 ‘경’의 본원을 찾기 위해 궁리(窮理: 居敬窮理)에 치중하여 사단칠정이기심성설(四端七情利己心性說)의 상학(上學)을 즐겨 논하고 문인들과도 논변을 벌이면서 이에 관한 문자를 적지 않게 남겼다면, 조식은 정주(程朱)에 의해 상학은 이미 소상하게 밝혀진 만큼 다시 이를 가지고 중언부언할 이유가 없고 오직 이를 지키면서 하학 즉, 일상생활을 통해 의리로서 실천해 드러내게 하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자신이 독서할 때마다 선유(先儒)의 글 중에 몸에 긴요한 내용이 있으면 이를 채록해 편찬한 '학기유편(學記類編)'이나 존양(存養).성찰(省察).극치(克治)의 과정을 통해 생사를 걸고 수양에 몰두하는 내용을 적은 '신명사도(神明舍圖)' 이외에는 상학에 관한 별다른 글을 남기지 않았고, 나아가 기대승과 이기심성설 논쟁을 벌인 퇴계에게 편지해, 손으로 물 뿌리고 청소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를 논하여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하는 행위를 그만두게 하라고 한 데서 보듯이 심성논변 자체를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것이라 해 비판하고 경계했다.



퇴계가 시사(時事)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언급하는 경우에도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처럼 군덕의 성취에 필요한 도덕적 내용으로 시종했던 데 비해, 단성현감 사직소에서 보듯 조식이 훈척정치를 정면으로 비판 공격한 것은 현실과 실천을 강조하는 그 학문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조식에 의하면 학문이란 모름지기 반궁실천(反躬實踐)하고 지경실행(持敬實行)하는 것이어야 하고 현실에서는 일반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 삶을 영위하는데 실제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학문의 두 번째 특징이라고 할 성리학을 중시하면서도 천문.지리.의학.복서(卜筮).병학(兵學) 등의 이른 바 잡학(雜學)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능통했던 점도 이런 학문들이 인사, 즉 현실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식의 학문적 특징은 사람을 가르치는 데서도 일관됐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하학’적인 측면에 치중했고 강학(講學)을 하기보다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학습자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심득(心得)을 중시했다.



따라서 심신수련의 수단으로 노장(老莊)적 방법을 담고 있는 참동계(參同契)를 즐겨 읽고 조용히 앉아 깊이 사색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퇴계에 의해 이미 지적됐듯이 도교나 선학(禪學), 양명학적 특징을 다분히 나타내는 요소였다.


조식의 인물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에는 다소 고답적이면서 세상사람에 대해 오만했다고 말해지기도 하지만 “중년 이후 몸을 깨끗이 가지고 결의를 지키며 예법으로 몸을 단속해서 행실이 뛰어났다.”고 한 실록의 기사나 “사람됨이 우뚝 솟아 속세를 벗어났고 희고 맑은 성품이 세상 밖에 있을 정도로 높고 멀다.(亭亭物表 皎皎霞外)”라고 한 퇴계의 평가, 그리고 그 문인인 정구가 “선생은 천지의 순수한 덕과 하악(河嶽)의 맑은 정기를 타고났고, 재주는 일세에 높고 기개는 천고를 덮으며, 지혜는 족히 천하의 변화를 통하고 용맹은 능히 삼군의 우두머리를 앗을 수 있으며, 태산벽립(泰山壁立)의 기상과 봉황이 높이 나는 이상을 갖고 있다.”고 한 말로 보건대 평생을 벼슬하지 않고 처사로 살아가면서도 단순히 학문에만 침잠하여 절의를 지키는 일절지사(一節之士)에 그치지 않고 천길 낭떠러지에 홀로 우뚝 솟은 늠름한 기상을 지니고서 세상을 근심하고 민생을 구하기 위하여 현실에 직접 뛰어들어 불의에 과감히 맞서는 재야의 비판자였다고 하겠다.


조식의 사후 바로 대사간에 추증되고 1615년(광해군 7) 영의정으로 증직됐고, 진주의 덕천서원(德川書院).김해의 신산서원(新山書院).삼가의 용암서원(龍巖書院) 등에 제향됐다.


저서로는 1604년(선조 37)에 처음 간행된 '남명집(南冥集)'과 '남명학기유편(南冥學記類編' '신명사도(神明舍圖)' '파한잡기(破閑雜記)'가 있고, 문학작품으로 '남명가(南冥歌)'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가 전한다. 1615년 문정(文貞)이란 시호가 내려졌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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