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의 서원 101] 송빈 등 3인의 충절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김해 '송담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2 17:46:41
  • 수정 2022-10-03 08:04:12

기사수정


[이승준 기자] 송담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김해성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네 의병장 김득기(金得器), 송빈(宋賓), 유식(柳湜), 이대형(李大亨)의 공을 기리고 있는 묘단(廟壇) 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동래성을 함락한 왜적이 병력을 이끌고 김해성을 공격해오자, 당시 성의 주장군이었던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게 돼 이들 네 의병장이 각기 의병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적들과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 순절했다. 




이것이 임진의병의 시작이 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년 만인 1600년(선조 33) 왕은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각자의 벼슬을 올려 줬고, 1708년(숙종 34) 지방사림들의 도움으로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이들의 위패를 모셨다가, 1833년(순조 33) ‘표충사’라 이름했다. 


1871년(고종 8) 단을 설치해 ‘사충단’이라 이름 짓고 비를 세웠다. 매년 음력 4월 20일을 제사일로 정해 제사를 모시고 있다. 




현재는 비각 이외에는 모두 새로 지은 것들로,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의 규모에, 옆에서 보아 사람 인(人)자의 선을 그리는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송빈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사신(士信)이고, 호는 송담(松潭)이다. 절제사 창(昌)의 아들이다. 경상남도 김해(金海)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부대가 부산과 동래를 함락하고 김해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대형(李大亨)과 함께 장정 1백여 명을 이끌고 김해성으로 들어갔다. 이때 무과급제자인 김득기(金得器)와 유식(柳湜)이 의병을 이끌고 합류함으로써 사기를 높였다.



김해성은 성벽이 높고 참호가 깊어 적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왜군의 공격이 격렬해지자 초계군수(草溪郡守) 이유검(李惟儉)과 김해부사 서예원(徐禮元)이 도망감으로써 수세에 몰리게 됐다. 그는 이대형·김득기·유식과 함께 성이 함락될 때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1600년 공조참의에 추증되고, 1871년(고종 8)에는 나라에서 사충단(四忠壇)과 비석(碑石)을 내렸다. 1875년 이조참판으로 증직됐다./사진-윤정숙 기자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