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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10] 주세붕의 학문과 덕행 기린 함안 '덕연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3 19:32:52
  • 수정 2022-10-03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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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덕연서원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인 주세붕(周世鵬)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워 그 위패를 모시고 향사하는 서원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덕연서원은 1651년(효종 2)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정리에 그 고장 출신 문인으로서 이름을 떨친 주세붕을 길이 기리고자 세운 서원으로, 1676년(숙종 2) 왕이 사액을 해 사액서원으로 격상됐다.

 


1678년에는 특별히 별사(別祠)를 지어 배세적(裴世績).주박(周博).황협(黃挾).주맹헌(周孟獻) 등의 영현을 모셨다. 그 뒤 1869년(고종 6)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완전 훼파됐고, 그로부터 근 백 년 뒤인 1964년 지방 유림들의 끈질긴 선현 숭앙사상과 정성에 의해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이 됐다. 


현재 건물은 3칸의 사우(祠宇),  3칸의 신문(神門)과 4칸의 고사(雇舍), 5칸의 강당 외에 덕연별사와 외문(外門)이 있고, 고사는 제구를 보관하는 곳으로 제사가 있을 때에는 제수(祭需) 등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강당은 서원의 여러 행사는 물론 유림의 회의 및 토론장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향사(享祀)는 해마다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행하는데, 주세붕의 '무릉잡고'등 문집 수권도 이곳에 보관돼 있다. 


주세붕의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 고조할아버지 주유(周瑜)가 상주 주씨(尙州周氏)의 시조이다.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이고, 어머니는 부호군을 지낸 황근중(黃謹中)의 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하옥(河沃)의 딸 진주 하씨(晋州河氏)와 안여거(安汝居)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이다.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합천군 천곡[현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에서 태어나 7세 때 외가가 있는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로 옮겨 살았다. 1506년(연산군 12) 강신효(姜藎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문과 별시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됐다. 1524년 호당(湖堂)에 선발돼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이후 청.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541년(중종 36) 외직으로 풍기 군수로 나갔고, 다음 해 한국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했다. 1549년(명종 4) 5월 호조 참판으로 승진했고. 이 해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됐다. 이때도 해주에 최중(崔中)의 서원을 세웠다. 1550년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돼 교육의 책임자가 됐다. 1552년(명종 7) 명종이 청렴하고 근면하며 덕행이 있는 사람을 뽑아 대궐로 초청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는데, 주세붕은 이황, 이준경(李浚慶) 등 당시 명망 높은 19인과 함께 뽑혔다. 이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으로 일하다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초의 서원지(書院志)인 '죽계지(竹溪志)'를 편찬했고, 저서로 20권 10책의 '무릉 잡고(武陵雜稿)'가 있다.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576번지에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정리에 있는 덕연 서원과 소수 서원에 배향됐다. 예조 판서에 추증됐고, 시호는 문민이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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