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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06] 두곡서원에 가면 최치원 선생을 만난다
  • 이승준
  • 등록 2022-10-04 18: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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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정숙 기자[이승준 기자] 두곡서원(斗谷書院)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곡길 54(두척동 637번지)에 위치했고, 헌종12년(1864)에 창건했고, 고종4년(1867)에 이건(移建)한 문창후 고운 최치원(文昌侯 孤雲 崔致遠)을 배향하는 곳이다.


34개의 계단을 오르면 두곡서원의 입구인 경앙문(景仰門 : 덕망이 높을 사람을 위해 우러러 보라)을 만난다. 바라보는 방향의 경앙문 우측이 열려 있어 두곡서원의 강당을 보게 된다. 



최치원 선생이 가야산(伽倻山)에서 선화(仙化)하기 전까지 우리지역 인근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바로 진해구의 청용대각석(靑龍臺刻石), 합포구의 월영대(月影臺)와 돝섬(楮島)의 전설 등이다. 


우측으로 가면 두곡강당(斗谷講堂)과 문창공원허(文昌公院墟)라는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문창공원허’라는 비석 아래에는 고종 무진년(高宗 戊辰 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월영서당’을 두곡촌으로 이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마산합포구 월영동 471번지 경남대학교 경내에 있던 것을 1988년 7월 8일에 이전 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고운치원선생조선명신록기(崔孤雲致遠先生朝鮮名臣錄記)에는 '선생의 휘는 치원(致遠)이요 호는 고운(孤雲)이다. 신라왕경 사량부인(新羅王京 沙梁部人)이다. 8세손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러 비로소 경주를 관향(貫鄕)으로 했다. 12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학구(學究)에 전심(專心)하여 희종(僖宗)의 건부원년(乾符元年)에 등과(登科)하였으며 황소(黃巢)가 반란(叛亂)을 일으키니 고변(高騈)이 제도행영 병마도통(諸道行營 兵馬都統)이 되어 이를 토벌(討伐)할 새 선생이 종사관(從事官)으로 종군하여 기초한 격문(檄文) 한통으로 황소(黃巢)를 자진(自盡)케 했다'고 한다.


동국(東國)으로 돌아와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배명(拜命) 받았으나 간신배(奸臣輩)의 시기(猜忌)로 용납(容納)되지 못하고 시사(時事)가 일비(日非)함을 보고 벼슬할 생각(生覺)이 없어 가야산(伽倻山)에 들어가 산수간(山水間)에 소요(逍遙)하면서 서사(書史)를 베개 삼고 풍월을 읊으시다가 졸(卒)했다. 혹은 선화(仙化)했다고 전(傳)해진다. 동방의 문장이 공으로부터 비롯됐으니 당서 예문지(唐書 藝文志)에 공의 46집 1권과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과 문집이 30권이라는 기록이 있다.



려조(麗朝)의 계림 황업(鷄林 黃業)은 곡령청송지어(鵠嶺靑松之語)에 종사문묘(從祀文廟)라 했고, 시(詩)에 이르기를 “동국화국동 호중별유천(東國花國洞 壺中別有天 : 동국의 화개동에는 항아리 안쪽 같은 별천지가 있다네) 선인추옥침 신세숙천년(仙人推玉枕 身世倏千年 : 선인들 옥침을 다지고 몸 붙인 세상 천년이 잠깐일세) 만학우성기 천봉우색신(萬壑雨聲起 千峰雨色新 : 만학에서 우뢰소리 일어나고 일천봉우리 비 내려 만물에 새로워라) 산승망세월 유기엽간춘(山僧忘歲月 猶記葉間春 : 산사의 스님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오히려 나뭇잎 사이에 봄을 기억하네) 간월초생처 송풍불동시(澗月初生處 松風不動時 : 시냇가로 달 떠오르는 곳에 솔바람은 움직이지 않고) 자규성입이 현흥자응지(子規聲入耳 幼興自應知 : 자규새 우는 소리 들려오니 그윽한 흥취 스스로 알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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