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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12] 생육신 조려 선생을 배향한 함안 '서산 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0-05 20: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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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서산서원은 조선 후기인 1703년(숙종 29)에 경상도 유학(幼學) 곽억령(郭億齡) 등이 생육신(生六臣)인 조려(趙旅)[1420~1489], 김시습(金時習)[1435~1493], 이맹전(李孟專)[1392~1480], 원호(元昊),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1454~1492] 등을 사육신(死六臣)의 예에 따라 병향(幷享)해야 마땅함을 상소해 윤허를 받고 창건했던 서원이다.


조려는 단종을 위해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경상남도 함안 출신. 할아버지는 고려 공조전서(工曹典書) 조열(趙悅)이고,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조안(趙安)이다.



1453년(단종 1) 성균관진사가 돼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서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이 서산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라 칭호했다.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됐다.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토록 건의했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됐다.




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해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돼 있다. 1781년(정조 5)에 이조판서로 추증됐고, 저서로는 '어계집(漁溪集)'이 남아 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김시습은 처형된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하고 지방을 유람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이맹전은 경상북도 선산 출신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귀향해 귀머거리, 소경이라 핑계하고 은둔해 30여 년을 두문불출했다. 원호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세조의 즉위 후에 병을 핑계로 귀향해 은거했다. 단종(端宗)이 영월에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집을 지어 임금을 그리워했고, 단종이 죽자 삼년상을 마치고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성담수는 사육신 처형 후 아버지가 연좌됐고 이에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했다. 남효온은 당시의 금기였던,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사실에 관한 '육신전(六臣傳)'을 저술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1703년 창건됐고, 1712년(숙종 39)에 ‘서산(西山)’ 이라는 현판이 내려지면서 사액 서원(賜額書院)이 됐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훼철됐다. 광복 후에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다가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1981년에 복원을 착수해 1984년에 완공했다. 이가원(李家源)의 '서산 서원 중건기(西山書院重建記)'가 남아 있다.



향사일은 매년 9월 9일이고, 함안 조씨(咸安 趙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산 서원에는 묘우(廟宇)[3칸], 강당[5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각각 3칸, 고사(庫舍)[3칸], 신문(神門), 외문(外問), 육각정(六角亭),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려를 중심으로 좌우에 원호, 김시습, 이맹정, 성담수, 남효온 등의 위패가 있다. 목조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이뤄진 강당은 중앙 마루와 양쪽 협실로 돼 있어 여러 행사, 회합, 강론 등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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