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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순, 시로 말하다 146 ] 사주
  • 손유순 자문위원
  • 등록 2022-10-14 12:09:21
  • 수정 2022-10-14 19: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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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의 어느 날    

“아줌마! 아줌마”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려온다.

사주 관상이라고 큰 글씨를 써서 붙여 놓고 앉아서 내게 손짓한다.

“아저씨 저를 불렀나요.”

“그래요. 잠깐만 와 봐요.” 

낚시할 때 접는 의자를 내놓으면서 

“앉아 봐요.” 

그런데 어디서 사람들이 모였는지 웅성거리며 내 뒤를 빙 둘러쌓았다.

아저씨는 생년월일을 물어보더니 

“올 한해에 1~2억은 벌 수 있어요.” 

“아저씨 제가 도자기 만드는데 어떻게 넉 달도 안 남았는데 1~2백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걱정 말고 복채만 주고 가구려.”

저녁을 먹고 난 뒤 사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털어놓았더니 큰딸이 눈에서 빛이 난다.

그해 12월 큰딸이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입시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함께 갔다. 지리를 몰라서 너무 일찍 출발하여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추위라도 피할 겸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서 와들와들 떨었다.


첫 시험을 보고 나온 큰딸이 

“엄마! 첫 시간에 데생 시험을 보는데 내 번호가 한쪽 구석이라서 석고상 뒷면만 보였어요. 한 번도 연습 안 했던 곳인데 그리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중간에 나오려고 하다가 엄마랑 함께 추워서 공중전화 부스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생각이 나서 꾹 참고 열심히 완성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더니 둘째 시간 시험 보러 교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험이 끝나고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 내 친구는 자리가 중간쯤 난로 옆인데 교수님 두 분이 내 이야기 하는 것 들었대요. 자꾸 지우더니 끝까지 완성 잘했다고 엄마 꼭 합격 했으면 좋겠어요.”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딸 힘내.”

“그리고 내 친구는 아빠가 고려대학교 교수님이랑 친구인데 그 교수님이 이대 교수님과 친구라서 합격하면 미리 알려 주겠다고 하면서 합격자 발표하는 것 보고 내려온대요.”


그러던 어느 날 큰딸이 호들갑을 떨며 큰소리로 

“엄마 나 합격했어요. 그리고 내 친구는 불합격이래요.”

기뻐하며 친구들을 만나고 오더니 

“엄마 내 친구들은 대학교 합격했다고 엄마가 미장원 가서 머리도 파마해주고 메이커 정장과 화장품 핸드백과 구두도 사주었대요. 엄마 나도 친구들처럼 해줘요.” 

“엄마는 네 입학금 만들어야 하는데 걱정이야! 그리고 시험 보러 갔을 때 이화여자대학교 언니들이 청바지 입고 긴 생머리 하나로 묶고 배낭 메고 다니는데도 예쁘더라. 너도 키가 크고 예쁘니까 괜찮아 알았지?”

“엄마 그때 그 아저씨가 올 한해에 1~2억 번다고 했는데 거짓말쟁이네.”라며 사주 본 이야기를 꺼내면서 서운해 하였다.


“며칠 후에 수원시청 사회복지과 과장인 친구한테 전화 걸어서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친구야 몇 년 전 광운대 사건 기억나니? 그때 지도층에 권력 있던 사람들이 2~3억씩 들여서 자녀들 대학 합격시킨 것 TV 뉴스에 나온 이야기 해줘. 그리고 1~2억 돈 버는 게 좋은지 아니면 대학 합격한 것이 좋은지 

물어봐.”라고 하는 친구 이야기를 듣는데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래, 그때 우리 동네 도자기 공장 크게 하는 곳 손자도 광운대 사건에 걸렸어”

“그것 봐 얘기 잘 해줘 실망하지 않게, 그리고 친구야 축하해”

큰딸에게 내 친구 이야기 들려주었더니  

“엄마 나는 1~2억 돈 번 것보다 대학교합격 한 게 더 좋아요.”

“그래 우리 딸 축하 해”라며 행복하게 웃는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준비가 안 된 자는 때가 찾아와도 기회를 놓치게 되고, 준비된 자는 때가 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대기만성처럼 재능과 달란트를 꾸준히 개발하여 자기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자는 종지 같은 작은 그릇을 어떤 자는 큰 그릇을 만들기도 한다.

비가 올 때 그릇을 똑바로 놓지 않으면 아무리 큰 그릇도 빗물을 담을 수 없듯이 진실한 삶을 살면서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2.6.19


# 소정 손유순/1990 - 현재소정도예연구소장, 1999 - 2000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01-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 개막식(김대중 대통령 접견), 2002-국제도자 워크샵 초대작가 – 한국도자재단, 2004-경기도으뜸이 도자기 부문 선정(청자 참나무재유 개발)-경기도지사, 2014-사단법인) 다온시문화협회 시인, 본지 도자기 부문 자문위원, 2020-한국문학생활회 이사, 감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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