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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46] "내성불 한생을 늦추더라도 이생을 포교하리라"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0-23 19:06:07
  • 수정 2024-04-02 03: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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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2)

지난호에 이어


[박광준 기자] # 신흥사 통일대불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9,900㎡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지름 13m, 광배 높이 17.5m 규모의 대형 석가모니불로 민족통일을 기원키 위해 조성했다. 총 108t의 청동이 사용됐고, 8면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十六羅漢像)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불상의 미간에는 지름 10㎝ 크기의 인조 큐빅 1개와 8㎝짜리 8개로 이뤄진 백호가 박혀 있어 화려함을 더한다.


불상 뒤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불상 내부로 들어가면 내법원당이라고 불리는 법당이 있다. 이곳에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돼 있다. 불상 조성은 1987년 8월 30일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1997년 10월 25일 점안식을 가졌다. 불상 내부에는 점안식 때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도 봉안돼 있다.


# 신흥사보제루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건물로, 1985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장대석으로 쌓은 2단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자연석 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사람 키보다 낮은 높이에 마루를 깔았다. 이 아래를 통해 극락보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본전(本殿) 마당과는 장대석 계단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윤지현(尹之鉉)이 짓고 이계황(李啓潢)이 쓴 ‘보제루중수기(普濟樓重修記)’에 의하면, 이 건물은 1644년(인조 22)에 세웠고, 1770년(영조 46)에 중수했고, 1813년(순조 13)에 벽파(碧波).창오(暢悟).부총(芙聰).승기(勝琦) 등이 다시 지었다.


원래는 사방이 개방돼 있었으나, 1971년 성준(聲準)이 중수하면서 분합문(分閤門.마루나 방 앞에 설치한 큰 문)을 달았다.



보제루 내부에는 불교의식 때 쓰이는 악기 사물(四物)이 세 가지 있다. 지름이 2m에 이르는 비자나무 통에 황소 여섯 마리분의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法鼓)와 3m 남짓한 크기의 용머리 장식 목어(木魚), 1748년에 만든 범종이다.


현판으로는 1788년(정조 12)에 다시 범종을 만들고 그 사적을 새긴 ‘설악산신흥사대종중주명병서(雪嶽山神興寺大鐘重鑄銘幷序)’가 있고, ‘설악산신흥사삼보중건기(雪嶽山神興寺三寶重建記)’가 있다. 이 밖에도 ‘설악산신흥사(雪嶽山神興寺)’ 대자액(大字額) 3개, ‘백설루(白雪樓)’ ‘외설악루(外雪嶽樓)’ ‘해악루(海嶽樓)’ ‘청경당(聽經堂)’ '청송헌(靑松軒)’ 및 1970년에 새긴 ‘임야복구시주(林野復舊施主)’ 현판이 있다.


# 속초 신흥사 금고


강원도 속초시 신흥사에 전하는 조선시대 금고로, 속초 신흥사 보제루 내에 보관돼 있고, 금고의 측면에 음각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다. 1788년(정조 12)에 제작됐고 2011년 8월 12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금고의 앞면에는 3개의 융기선으로 동심원을 그려 공간을 구획했다. 중심에는 당좌가 있고 그 밖에 특별한 장식은 없다. 뒷면은 뚫려 있고, 안쪽에는 '신(神)'자의 글자가 있다. 이는 신흥사의 의미를 담아 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주조 기술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옆면에는 금고의 조성 기록이 음각됐다. “1788년(정조 12)에 60근으로 신흥사 금고를 제작하였다[신흥사 건륭오십삼년무신칠월일 주중육십근(神興寺 乾隆五十三年戊申七月日鑄重六十斤)]”는 내용이다. 함께 소장돼 있는 신흥사 범종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신흥사 금고는 특별한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옆면에 제작 연대가 남아 있어 주목된다. 특히 신흥사 동종의 명문 내용과 일치해, 일괄적으로 조성된 사찰 유물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 공예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속초 신흥사 동종


속초 신흥사 보제루에 걸려 있는 동종으로 1788년(정조 12)에 제작됐다. 2011년 8월 12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종뉴(鍾鈕)는 두 마리 용이 서로 머리를 반대로 향하고 몸통으로 고리를 형성한 모습이고, 몸체에 비해 다소 작게 만들어졌다. 천판과 몸체의 연결 부분에는 굵은 융기선을 돌려 경계를 이뤘다. 종의 몸체 중간에는 4조의 굵은 융기선을 돌려 횡대를 형성했고, 공간을 상하로 구분했다. 상단에는 보살 입상이 얕은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종의 상대에는 만자문(卍字文)과 원형범자문(圓形梵字紋)을 장식했고, 하대에는 연화당초문을 표현했다. 또한 종의 입구 부분에도 만자문이 보이고 당좌는 생략됐다.


종의 몸체 하단에는 양각의 단문과 음각의 장문으로 새겨진 명문이 확인된다. 양각의 명문은 일부 글자의 판독이 어렵지만, 1656년(효종 7)과 1748년(영조 24)의 연대가 언급됐다. 또한 음각으로 장문의 내용을 추가했다. 1788년(정조 12)에 종과 금고 등을 주조했다는 기록이다. 이 내용은 신흥사 보제루에 함께 소장된 금고의 명문과 제작 연대가 일치한다.



두 종류의 명문을 종합하면, 신흥사에서 동종이 처음 주성된 시기는 1656년(효종 7)이고, 이후 1748년(영조 24)에 다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788년(정조 12)에 재차 동종을 주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참여한 장인은 김봉태와 최해중이다.


신흥사 동종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명문이 남아있어 제작 연대, 주조 경위, 시주자, 장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신흥사 금고의 명문 내용과도 일치해, 일괄적으로 조성된 사찰 유물이라는 점에서 18세기 불교 공예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2012년 보물로 지정됐다. 신흥사 명부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중앙에 지장보살상이 앉아 있고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중 관음보살상 내부에서 명부전 불상 조성에 대해 밝힌 발원문이 발견됐다. 


발원문에 의하면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1651년 8월 조각승 무염(無染)을 비롯한 도우(道祐), 해심(海心), 덕명(德明), 처상(處常), 성잠(性岑), 원철(元哲), 도래(道來), 민기(敏奇), 의신(義信), 영택(靈澤), 영봉(靈峰), 처인(處仁), 일상(日祥) 등 모두 13명에 의해 조성됐다. 화성화원(畵成畵員) 명단도 있어 불상을 만든 화원과 개채(改彩)를 담당한 화원이 별도로 존재했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시왕, 판관, 사자, 동자상 조성에 대한 시주질 기록도 있어 원래는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그리고 권속들이 일괄로 명부전에 봉안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찍힌 신흥사 명부전의 모습에는 시왕상이 있어 전쟁 이후 어느 시점에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민머리형에 오른손을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이다. 당당한 자세에 높이 98.4㎝의 큰 크기, 넓은 무릎에서 안정적인 신체비례를 보인다. 장방형의 얼굴에는 넓은 이마, 좌우로 긴 눈, 오똑한 코, 짧은 인중을 표현했고 양 끝이 살짝 올라간 작은 입으로 옅은 미소가 느껴진다. 입이라든가 유난히 돌출된 큰 귀, 귀 가운데 부분에 낮게 솟은 돌기 등의 표현은 무염의 독특한 조각적 특징이다. 


착의법은 변형통견식으로 양 어깨 위에 대의를 걸쳤고 가슴에는 수평으로 된 승각기를 입었다. 다리 위를 덮은 옷자락은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다리 사이로 흘러 내린 옷주름은 간략하면서도 도식적으로 표현했다. 좌우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신체가 짧은 편이며 합장을 하고 서 있는데 얼굴 표현은 지장보살상과 거의 비슷하다. 



젊은 비구의 모습을 한 도명존자는 청색 장삼 위에 붉은 색 가사를 둘렀고 옷주름은 간결하게 표현됐다. 뒷면 다리부분에는 네모난 복장공이 뚫려 있다. 머리에 원류관을 쓴 무독귀왕상은 얼굴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표현했고 붉은색 관복을 입은 모습이다.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을 제작한 조각승 무염은 1633년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조성에 법해의 차화승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수화승으로 1635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50년 대전 비례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 1651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1652년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1654년 영광 불갑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 1656년 완주 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을 조성했다.


#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아미타여래상은 높이 164cm, 무릎 폭 114cm/ 관음보살상_높이 147cm, 무릎 폭 95cm/ 대세지보살상_높이 152cm, 무릎 폭 91cm. 17세기의 대표적 조각승 무염(無染)이 책임을 맡고, 도우(道祐), 덕명(德明) 등 무염파 조각승 10명 이상이 참여해 1651년(효종 2) 제작했다. 금강산, 지리산, 오대산, 묘향산, 태백산 등의 대찰 고승들이 증명(證明; 일종의 고문 역할) 법사가 됐다. 이 중에는 승려의 최고 직위인 팔도도총섭에 올랐던 지리산의 각성(覺性)도 포함됐다. 무염은 각성이 주도한 몇몇 불사에서 조각을 담당한 인연으로 신흥사 불사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무염파 조각승들은 보물로 지정된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도 함께 제작했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둔 아미타여래삼존상으로, 모두 좌상이다. 두 보살은 본존인 아미타여래에 비해 약간 작지만 세 구 모두 어깨와 무릎 폭이 넓고 몸통이 두꺼운 등 안정적 신체 비례를 지녀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얼굴 형태와 착의법도 거의 동일하다. 단, 법의 표현과 손 모양, 조각법 등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여러 조각승들이 작업을 분담한 만큼 각각의 역량과 취향에 따라 세부표현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높이 164cm, 무릎 폭 114cm의 대형 불상이다. 살 오른 뺨과 이중 턱, 미간 아래에서 불쑥 솟은 돌출 코, 반개한 눈을 지녔다. 머리 정수리와 중간 부분에는 계주(구슬장식)가 표현됐다. 법의는 양 어깨를 덮는 통견 식으로 입었는데, 상체의 옷주름은 비교적 단순하고 하체의 옷주름은 세밀하고 복잡한 편이다. 



폭 넓은 무릎에서 비롯된 안정된 신체 비례, 살찐 얼굴, 돌출 코와 이중 턱, 무릎 부분의 세밀한 수평 주름 등은 무염파 불상의 특징이다. 왼쪽의 관음보살상은 높이 147cm, 무릎 폭 95cm,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높이 152cm, 무릎 폭 91cm이다. 두 보살상 모두 끝을 달팽이 모양으로 만 높고 가는 상투를 올렸고, 어깨 위로는 엇갈려 꼰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머리에 쓴 보관은 근래에 만든 것이다. 


관음보살상에서는 축원문과 각종 씨앗, 후령통, 불서 등 복장유물이 발견됐다. 아미타여래상 바닥에 적힌 묵서(먹 글씨)와 관음보살상에서 발견된 축원문을 통해 제작연대와 조각자가 확실히 밝혀져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무염파 조각승들이 강원도에서 활동한 사례로, 조각승들의 활동영역을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2011년 9월 5일 보물로 지정됐다


# 속초 신흥사 부도군



설악산소공원 동쪽 기슭에 있는 이 부도군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신흥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를 단일 장소에 조성한 전형적인 부도군으로, 19개의 부도가 있다.


대원당탑(大圓堂塔) 등 3개가 원당 모양의 부도이고, 성곡당탑(聖谷堂塔) 등 16개가 석종 모양인데,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이다.



부도와 함께 신흥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흥사사적비(神興寺事蹟碑)를 비롯해 강세황(姜世晃)이 쓴 용암당대선사비(龍巖堂大禪師碑) 등 6개의 비석이 있는데, 1764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 계조암(속초)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산내 암자이다. 설악산 울산바위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흔들바위가 나오는데 바로 그 뒤쪽의 커다란 바위에 조그만 암자가 있다. 바위 속에 법당을 마련했는데, 바닥엔 온돌까지 놓여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수도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는데 그 뒤 원효.의상.지각.봉정 등 여러조사(祖師)들이 대를 물려 수도했다고 해 이름이 계조암이라 부르게 됏다고 한다. 계조암이 들어앉은 바위가 목탁 바위인데 이 암자는 목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 10년 걸릴 공부도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문화재청<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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