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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51] 선운사의 말사 대한불교조계종 말사 '내장사'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1-10 07:31:55
  • 수정 2024-02-18 20: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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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내장사는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에 자리잡은 선운사(仙雲寺)의 말사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이다. 


동쪽으로 장군봉(將軍峰).연자봉(燕子峰).신선봉(神仙峰), 남쪽으로는 영취봉(靈鷲峰).연지봉(蓮池峰), 서쪽으로는 불출봉(佛出峰).서래봉(西來峰) 등에 에워싸여 있어 봄에는 꽃,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雪景)으로 사시 풍광명미(風光明媚)를 자랑하는 명승지이다. 입구인 일주문(一柱門)에서 북쪽으로 약수터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옛 벽련암지(碧蓮庵址)에 이르는데, 이곳이 옛 내장사의 자리로 고내장(古內藏)이다.




옛 내장사는 660년(백제 의자왕 20) 환해(幻海)의 초창(初創)으로 세워졌고, 현재의 사찰은 본래 영은사(靈隱寺) 자리인데,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여 동의 대가람(大伽藍)으로 창건한 절이었다. 1095년(고려 숙종 3) 행안선사(幸安禪師)가 건물을 중창했는데, 1539년(조선 중종 34)에 조령(朝令)으로 소각됐다. 




1557년(명종 12) 희묵(希默)이 법당과 요사(寮舍)를 수축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됐는데, 1639년(인조 17) 부용(芙蓉)이 절 건물을 개축했다. 그 뒤 1779년(정조 3) 영운(映雲)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했고, 1938년 매곡(梅谷)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冥府殿)을 신축했는데 6.25전쟁 때 전소됐다. 1957년 다시 요사를 중개수(重改修)했고, 1958년에는 대웅전을 중건(重建)해 면모를 일신했고, 내장산국립공원 개발계획의 추진과 함께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과 은봉암, 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 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했고, 1779년(정조 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했다. 1923년 학명(鶴鳴)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뒤 1938년 매곡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했다. 1951년 1월 12일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957년 야은스님이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했고,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했다. 1960∼1962년과 1974∼1977년에 중건했고, 1992년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을 건립했고, 1997년 해운당을 중건했다. 최근 화재로 대웅전이 불탔다. 


# 내장사 조선동종


내장사 조선동종(內藏寺 朝鮮銅鐘)은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종으로,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총 높이 80cm, 몸체 길이 60cm, 입 지름 50cm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돼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새김 했고, 24개의 원을 배열해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 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했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했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했다.


# 내장사지


내장사지/사진출처-문화재청내장산에 있는 옛 내장사터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련사는 내장사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고 했다.


백련사는 언제 세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백제 의자왕20년(660)에 유해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백련(白蓮)’을 ‘벽련사(碧蓮寺)’로 개칭하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1925년 학명선사가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을 고쳐짓고, 스님들이 생활하던 요사채와, 도량건물인 선원을 세웠으나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현재 절터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탑식으로 된 부도가 남아 있고, 뒷쪽 암벽에 몽련당 김진민의 석란정(石蘭亭)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 내장사의 굴거리나무 군락


내장사의 굴거리나무 군락/사진출처-문화재청굴거리나무는 우리나라 및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지대와 제주도, 전라도의 내장산.백운산 등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다. 한자어로는 교양목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새잎이 난 뒤에 지난해의 잎이 떨어져 나간다는, 즉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뜻이다. 정원수로 좋으며 가로수로도 유명하다.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은 내장사라는 절 앞에 있는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 굴거리나무는 보기가 힘들고, 굴거리나무의 잎은 약으로 쓰이는 만병초라는 나무와 닮아서 이곳 사람들은 만병초라고도 부른다.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은 굴거리나무가 자생하는 북쪽 한계지역이라는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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