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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45] 밀성박씨 정국군파의 시조인 박위 장군을 향사하고 있는 밀양 '신남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2-06 0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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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신남서원은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판정로 125-13에 소재하고 있는 서원으로, 고려말에 대마도(對馬島)정벌(征伐)은 물론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공이 컸던 정국군(靖國君) 박위(朴葳)장군과 조선 초 문신(文臣)인 박기(朴耆) 부자를 향사(享祀)하고 있다.


1822년(순조 22)에 후손인 박기성(朴基聖)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士林)들의 공론을 모아 이 서원을 창건했다. 사당을 상모사(尙慕祠)라 했고 강당을 경보당(景報堂)이라 하였고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을 응교(應敎) 강세백(姜世白)이 지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따라 사당은 철거됐으나 강당은 경보당(景報堂)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실(齋室)로 삼고 후손들에 의해 이곳에서 박위장군을 주향(主享)으로 하고 박기를 배향해 향사가 받들어 졌다. 1981년에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서원을 복원해 상모사(尙慕祠)를 그전대로 중건했다. 현재 서원의 배치는 사당인 상모사를 중심으로 전면에 신문(神門)을 설치해 신역(神域)을 구획했고 바깥에는 강당인 경보당(景報堂)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사였던 박위(朴葳, ?년 ~ 1398년)는 고려말 신흥무인 중 1인으로,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고 1389년 대마도 정벌을 했다. 밀성박씨 정국군파의 시조이다.



우달치로 등용돼 우왕 때 김해 부사가 됐고 1387년(우왕 13)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동래성을 축성했다. 요동 정벌 때 경상도상원수(慶尙道上元帥)로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해 최영을 몰아냈다.


1389년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돼 전함 100척을 인솔하고 대마도를 쳐서 왜선 300척을 불태워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그 후 판자혜부사가 돼 이성계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추대한 공으로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가 되고 충의백(忠義伯)에 봉해졌고 공신이 됐다.





1390년(공양왕 2) 김종연(金宗衍)의 옥사에 연루돼 풍주(豊州)에 유배됐으나 곧 사면돼 회군공신 정국군(回軍功臣 靖國君)이 되고, 조선 초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거쳐 양광도절도사(楊廣道節度使)가 되어 왜구를 물리쳤다. 이때 밀성(密城:지금의 밀양)의 소경 이흥무(李興茂)의 옥사에 연루돼 구금됐다. 대간(臺諫)과 형조에서 대역죄로 논의됐으나 태조의 호의로 석방,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나갔다가, 사헌부의 거듭되는 탄핵으로 파직됐다.


1398년 이방원의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참찬문하부사 겸 의흥친군위 도진무(參贊門下府事 兼 義興親軍衛都鎭撫)로 숙직 중 쿠데타군의 군세를 살피러 갔다가 살해당했다./사진-윤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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