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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31] 을축년 대홍수 때 사망자를 조문키 위해 세운 '한강수사자조혼비'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2-12-08 20:35:41
  • 수정 2024-04-10 1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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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대한제국기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까지 한강에서는 여러 번의 큰 교량 공사가 있어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실족해 익사자가 다수 발생했다. 여기에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특히 많은 익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1922년 경부터 매년 7월 익사자들을 위한 위령제(慰靈祭)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1929년 6월, 용산기자단의 몇몇 유지들이 위령제를 계속 거행하는 한편 익사한 사람들의 영혼을 특별히 조문키 위해 세운 것이 한강수사자조혼비(漢江水死者弔魂碑)이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사무소에서 가까운 한강 변에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비신을 세워 한자를 새기고 조혼비를 건립했으나, 1970년 홍수로 인해 비석이 쓰러져서 방치돼 오다가 1985년 한강에서 인명 구조활동을 벌이던 김평산이 다시 비를 일으켜 세웠다.



1900년 7월 한강철교 공사와 1917년 한강인도교 공사 등으로 한강에 근대적 대형공사가 진행됐으나 경험과 시공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안전수칙에 밝지 못한 인부들이 다수 익사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에 1922년경부터 익사한 교량 건설 인부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7월 위령제를 거행하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됐다. 


이후 1925년에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해 무수한 인명이 한꺼번에 익사 당하는 큰 재난을 당했다. 이에 1929년 6월에는 위령제를 지속적으로 거행하면서 수많은 익사자 영혼들을 조문키 위해서 용산기자단의 몇몇 유지들이 한강수사자조혼비를 건립하게 됐다.


2단의 기단과 그 위에 세워진 비신의 형태로 돼 있다. 비석의 전체 높이 2m, 비신의 너비 54㎝으로 2층 기단 위에 긴 직사각형 비신을 세로로 세워둔 형태로, 비신에 한자로 ‘한강수사자조혼비(漢江水死者弔魂碑)’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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