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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옛 절터’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중문.회랑 터 확인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2-12-15 05:23:35
  • 수정 2023-12-21 14: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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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백제가 부여에 도읍했던 사비기(538∼660) 주요 사찰 유적으로 꼽히는 ‘부여 군수리 사지’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건물 흔적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충남 부여군과 함께 부여 군수리 사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중문(中門)과 남쪽 회랑(回廊) 터를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여 군수리 사지는 백제의 절터로, 정확한 절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35~1936년 사찰 내 목탑, 금당, 강당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관(冠)을 쓴 금동보살입상과 석조여래좌상, 기와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이후 2005~2007년, 2011년에도 사찰 내 탑과 건물이 어떠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추가로 조사했지만, 중문의 위치를 추정했을 뿐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중문 터의 위치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중문은 대문 안에 세워진 문으로, 보통 사찰에서는 중심 건물의 앞쪽에 세워지고 좌우로 회랑과 연결된다.


조사단은 과거 여러 유물이 출토됐던 목탑 터 중심부로부터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부분에 있는 모서리에서 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진 뒤 터보다 한층 높게 돌로 쌓는 기단석과 기와를 발견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중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로 약 14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중문 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처음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긴 복도 형태의 회랑 터에서도 기단석과 기와 일부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남 회랑 터에서도 남쪽 기단석과 무더기로 놓여 있는 기와 일부를 확인했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이 중문의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문과 남 회랑의 서쪽 부분은 이후 축조된 백제시대 도로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중문과 회랑 터는 백제 사비도성 내부에 있는 사찰인 군수리 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정비·관리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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