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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73] 사자의 위엄으로 백호를 막은 ‘사자암’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1-01 04:15:51
  • 수정 2024-04-02 04: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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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동작구 상도 3동 280번지 삼성산 국사봉 밑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삼성산이란 명칭은 공민왕사 나웅, 태조왕사인 무학, 윤필거사 등 3인의 성인이 이 사자암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국사봉은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왕사로서 이곳에 안주했기 때문에 대사를 추존하는 뜻으로 궁교산이라고 불리던 뒷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풍수지리학상 리 절의 형세는 청룡백호가 힘차게 내려오고 사자가 허공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인 사자앙천형이다. 이와 관련된 창건 유래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 금천현 산천조에 의하면 ‘호암산은 금천현 동쪽 5리 지점에 있다. 범 모양과 같은 바위가 있으므로 이름이 되었다. 윤자의 설에 의하면, “금천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가는 곳 같고, 또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데, 호암이라 부른다. 술사가 보고 바위 북쪽 모퉁이에다 절을 세워서 호갑이라 하였다. 거기에서 북쪽으로 7리 지점에 있는 다리를 궁교라 하고, 또 북족 10리 지점에 사자암이 있다. 모두 범이 가는 듯한 산세를 누리려는 것이었다.”




한편 이와 유사한 내용의 또 다른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이태조가 공민왕의 신하로 있을 때 무학대사는 장차 이성계가 군왕이 될 것을 예견하였다.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서 왕위에 오르자 무학대사는 왕사가 되어 한양의 도읍을 시설하는데 많은 지도와 조력을 하였다. 대사는 태조로부터 한양천도계획의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한양의 지세를 살펴보즉, 만리현(지금의 중구 만리동)이 백호의 형상인데 밖으로 뛰어 달아나는 모습이므로, 국도의 안정을 위해 그 맞은편 관악산에 ’호압사‘를 지어 호랑이를 누르고 사자형상인 이곳에 사자암을 지어서 그 위엄으로 백호의 움직임을 막고자 하였다 한다.


조선 숙종 때에는 숙종의 여섯째 아들 연령군의 부인 서씨가 이생에서 부부의 정을 다하지 못한 슬픔을 부처님께 의지하여 다시 만나 백년해로할 것을 발원하고, 아미타불게 개금불사로 승화시킨 곳이라고도 했다. 


사자암 극락보전

그 후 이 절은 많은 고승대덕들의 수도와 국태민안의 기도역량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1910년 경암화상이 극락전과 산신각.칠성각.요사체를 중수했다. 1936년 성월대사가 극락전 등을 보수했고, 1964년에 벽호대사가 각 단 단청과 기와번화를 했다. 1977년 10월 원명화상(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범패의 전수자)이 주지로 부임한 뒤, 다음 해 요사 조실당을 시작했고, 1985년에는 극락보전. 단하각(신선각). 수제전(칠성각). 요사2동(큰방.원주실)을 중건했고, 종각.대문을 신축, 범종 및 담장을 축조하는 등 전도량을 일신했다.


사자암의 칠성각인 수세전(壽世殿)

사자암의 산신각인 단하각(丹霞閣)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단하각.수세전.종각,요사체 3동 등이 있다. 유물로는 극락보전의 아미타불상, 지장탱화.신중탱화.현왕탱화 등이 있다. 


아미타불상은 조성연대가 미상이나 조선 초기로 추정되고, 1726년에 개금불사가 있었고, 그뒤 1974년에 주지 벽호가 연화개금, 1980년대에는 주지 원명의 개금불사가 있다.


지장탱화와 신중탱화는 1846년(현종 12, 道光 26)에 현왕탱화는 1880년 9월 28일 봉안 된 것이다. 


극락보전의 주존불로 모신 아미타불(阿彌陀佛)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지장시왕도 (獅子庵 地藏十王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지장시왕도 (獅子庵 地藏十王圖)

19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군도(群圖)형식의 지장시왕도에서는 드물게 시왕 각각에 명칭 및 <수생경(壽生經)>에 의한 간지를 적어놓아 정확한 시왕의 명칭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신중도 (獅子庵 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신중도 (獅子庵 神衆圖)1844년 제작된 봉은사 신중도의 도상을 축소화한 작품으로 19세기 서울, 경기지역에서 유행했던 신중도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특히 향로와 옷 무늬 등에 금박을 사용 했고 세부묘사가 정교한 편으로 당시 불화의 경향을 잘 반영했다.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영산회괘불도 (獅子庵 靈山會掛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영산회괘불도 (獅子庵 靈山會掛佛圖)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괘불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괘불의 지역적 특징을 잘 반영하는 작품이다. 특히 1909년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과 순종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및 황태자 영친왕의 수명장수를 기원해서 금어 혜과(惠果)와 한곡(漢谷)이 그린 괘불탱이어서 다른 예보다 우수한 편이다.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현왕도 (獅子庵 現王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사자암 현왕도 (獅子庵 現王圖)사자암 지장시왕도의 금어(金魚)로 참여한 의민(義旻)이 약 35년 후에 그린 작품으로 서울.경기 지역의 일반적인 현왕도에 비해 작품의 구성이 자유롭고 변화가 있다. 특히 여백을 많이 살린 점이 주목된다. 인물묘사에 사실감이 엿보이고 입체감이 잘 표현돼 있는 등 19세기 후반기 서울.경기 지역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사자후(獅子吼)






사자후(獅子吼)는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라는 뜻으로, 석가의 설법에 모든 악마가 불교에 귀의했다는 말이다. 진리니 정의를 당당히 설파하는 것 또는 크게 열변을 토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전등록(傳燈錄)‘에 나온다.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가리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발자국 걷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우주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이라 하면서 사자후 같은 소리를 내었다."라고 기록돼 있다.또한 ’유마경(維摩經)‘에는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은 마치 사자가 부르짖는 것과 같으며, 그 해설은 우레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라고 돼 있다. 사자후는 석가의 설법을 비유한 말인데, 뭇 짐승들이 사자의 울부짖음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듯이 석가의 설법 앞에서는 모두 고개를 조아릴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뜻인데, 현재에는 열변을 토해 내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연중 행사로는 불가의 4대행사인 4월 초파일.12월 8일(부터의 성도일).2월 8일(부처의 출가일).7월 15일(백중, 신망부모 천도일)에 재가 베풀어지고, 그 외에 매달 음역 1.3.15일에 법회가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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