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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74] 영험설화가 전해지는 '미륵암'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1-01 20:55:00
  • 수정 2024-04-02 0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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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기자] 동작구 상도 1동 103-2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본래 사찰의 사적이 남아 그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미륵불의 조성연대 또한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제주 고씨 대동보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인 조선 성종(재위 1469-1494) 때 고씨 문중의 이조참판.의금부사를 지낸 고한형이 사망해 이 부근(현 숭실대학교 우체국 자리)에서 광중을 파던 중, 금불암(고려시대 이전의 사찰로 보임)이 발견돼 이곳을 피해서 약 150m 떨어진 숭실대학교 운동장 자리에 묻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의 숭실대학교를 짓기 전에 오랫동안 그곳에서 청기와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절터였고, 이와 가까운 미륵암까지도 사찰 경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록과 전언을 통해 볼 때, 미륵불은 당시 금불암을 지을 때 조성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따라서 그 연대는 성종 이전, 나아가서는 고려시대 이전까지도 소급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륵불이 발견된 것은 조선조 말엽으로 이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당시 미륵암 앞 큰길은 한양에서 과천.안양을 통하는 대로(大路)였고, 길 밑에는 지금 있는 우물(약수)이 있었다. 이 우물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오가면서 쉬어가면서 마시곤 했다고 한다. 그때 단씨란 사람이 포목장사를 함에 매양 이곳을 지나면서 샘물을 마시고 쉬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단씨의 꿈에 미륵님이 나타나 "내가 밤마다 이슬을 맞고 있으니 이슬을 맞지 않게 집을 마련해 달라. 그러면 너희를 도와주마"라고 하는 것이었다. 꿈을 깬 단씨는 이상히 생각하고 꿈에 지시하던 약수터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을 헤치고 보니 나무와 덤불 속에 과연 꿈에 나타난 지금의 미륵님이 묻혀 있었다. 그래서 미륵님을 발굴해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모시게 됐다고 한다. 

 



그뒤 김씨와 강씨라는 사람이 관리하다가 일제 때 고명진 씨가 다시 법당을 중건했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던 중 태고법손 22代, 속명은 이장수, 호는 해봉, 법명은 진법이라는 이가 이 미륵암을 인수해 퇴락하던 사찰을 장비하고 약사전을 증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을 정성껏 모신 단씨.고씨는 그뒤 부자가 됐다는 영험설화가 전한다. 또한 미륵님은 매우 엄해 그곳에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이 섰으므로 반드시 하마(下馬)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륵님한테 정성으로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는데, 미륵님 얼굴이 웃는 모습으로 보이면(마음이 느껴지면) 좋은 일이 있고, 무섭거나 화가 난 모습으로 보이면 좋지 않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본당인 미륵전과 약사전.요사채가 있는데 건물을 달아 지어 통로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미륵전의 미륵은 규모가 큰 석불이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또한 약사보살상은 재질이 경주 옥돌이며 조성연대는 300년 내지 500년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유래는, 한 병자가 미륵님한테 병이 낫기를 기도했는데, 미륵님이 현몽하기를 약사보살을 조상하면 병이 나올 거라고 해 봉안하게 됐다고 한다. 

 

그 밖에 미륵암 경내에는 200년 이상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사진제공-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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