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국의 서원 163] 토정비결 이지함 위패 모신 '화암서원'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1-13 11:49:56

기사수정


[이승준 기자] 화암서원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죽성로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1610년(광해군 2) 창건된 서원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이자 '토정비결(土亭祕訣)'의 저자인 토정 이지함(李芝菡)과 이산보(李山甫), 이몽규(李夢奎)의 위패를 봉안했다. 1618년(숙종 12) 사액을 받고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손된 것을 1920년 토정의 후손이 현재의 자리에 재건립했다.




원래는 맞배지붕 사당 1동과 삼문(三門) 1동에 불과했으나, 현 위치로 이전해 이정암, 구계우 두 사람을 추가로 봉안하면서 축대와 기단을 정비하고 재실과 삼문을 보수했다. 1988년에는 강륜당을 건립하고 충효교실을 운영했고, 1997년 평문 외삼문을 솟을대문으로 개축, 서원의 면모를 갖췄다. 1998년 토정의 후손들이 이지함의 영정을 제작, 표준영정으로 심의받아 봉안했고,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을 기하여 향사를 드린다.




토정 이지함은 본관 한산(韓山). 자 형백(馨伯).형중(馨仲). 호 수산(水山).토정(土亭). 시호 문강(文康). ‘토정비결(土亭訣)’의 저자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우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 들어갔다.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했고, 서경덕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했다. 157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6품직을 제수3)받아 포천 현감이 됐으나 다음 해 사직했다. 1578년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박순(朴淳).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 교유했고, 당대의 일사(逸士) 조식(曺植)은 마포로 그를 찾아와 그를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은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 피력돼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이지함은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고,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시대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돼 있다.또한 이지함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김계휘(金繼輝)의 질문에 이이가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이지함의 기인적 풍모를 대변해 주고 있다.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됐고,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 보은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됐다. 문집으로는 ‘토정유고(土亭遺稿)’가 전한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