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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117] ‘동재기나루터’라 부른 데서 명명된 ‘동작동’
  • 박광준 기자
  • 등록 2023-01-15 16:40:54
  • 수정 2024-03-14 07: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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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전경 [박광준 기자] 동작구 동명에 대한 유래는 조선시대에 이곳이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도진의 하나였던 동작진 근처 동작진 근처 이남지역을 연결하는 나루로서 그 이름을 '동재기나루터'라 부른 데서 동작동으로 명명됐다. 본지에서는 동작동의 연혁과 동작동의 행정동 변천관계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 동작동의 자연부락 명칭과 지명

 

'동재기 나루터' 표지석

동작동의 자연마을은 '동재기와 '정금마을'로 구성돼 있다.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현재 국립묘지로 넘어오는 강변일대에 검붉은 구리빛을 띈 돌들이 많이 분포돼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동재기나루터는 조선시대 서울에서 과천.수원.평택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가든가. 또 서울로 올라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였다. 

 

동작진은 '신증동국여지승람'권8 과천현 진도조에 보면 과천현 북쪽 18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반포아파트 서편 이수천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보여진다. 예정에는 수심이 깊어 나루 위에는 모노리탄과 기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인근 노량진관할하에 있었는데 호남.호서지방의 과객과 사대부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으나 사선 몇 척만이 운용돼 교통이 불편했다. 

 

영조 4년(1728) 이인좌 (?-1728)의 난을 계기로 나루의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별장이 파견됐고 영조 22년(1746)에는 노량진의 나룻배 3척을 이관하면서 나루터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또, 1857년 철종은 이곳에 주교를 만들어 인릉을 찾기도 했다. 동작나루는 근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한강인도교의 가설로 기능이 약화됐고, 나아가 동작대교가 가설돼 옛 가로망을 재현했다. 지금의 반포아파트 일대는 당시 모래사장 또는 늪지대였기 때문에 일제 대 이 마을 주민들은 유사와 사리채취로 생계를 잇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반포대교 전경이수로타리를 지나 사당동 방면에는 정금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정씨(丁氏) 성을 가진 감사가 살던 마을이라해 '정감몰' 또는 '정가우'라 불렀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조선 후기 이곳에 포방터가 있어 여기서 훈련을 마친 뒤 누루를 건너기 전에 인원과 장비를 점검했다고 해 '전검마을'이라 한것이 '정금마을'로 와전됐다고 한다. 또 서울에서 나루를 건너 호남으로 여행하던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주막이 위치한 산모퉁이 동네라 해 '정거머리'동네라고 도 불리웠다고 한다. 

 

예전의 배나무골 모습 

현 동작동41.42.66.71번지 일대의 마을을 '배나무골'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배나무가 있었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 마을 근처에 이수교라는 다리가 있는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진주강씨 50여세대가세거하고 살았다. 

 

현 동작터널과 국립묘지군악대가 있는 지역에 '농배'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약 15가구가 나루터에서 고기잡이와 잡역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일면 '능배'라고도 한다. 또 현충탑과 창빈안씨 묘소가 있는 지역에는 '능마을'이 있었는데, 약 10여가구가 농업을 주로 했고광산김씨가 주로 살았다고 한다. 

 

급경사여서 빙빙 돌아 아홉구비를 올라야 꼭대기에 도착한다 하여 '아홉고비텡이'라고 불렀다.그밖에 고개.다리 이름을 보면, 동작파출소 부근에서 군악대가 위치한 곳으로 넘어가는 길이름으로 '동재기고개(일명 동적고개), 현 동작터널이 지나는 산으로 옛날 이 산이 매우 급경사여서 빙빙 돌아 아홉구비를 올라야 꼭대기에 도착한다 하여 '아홉고비텡이', 동작중학교에서 국립묘지를 넘어가는 산 11.12.24번지 일대의 '가막재', 경문고등학교 건너편으로 지금은 방배동에 속하나 옛날 삼각개울이 마주치는 개울에 놓여져 있던 '방아다리', 1925년에 일제에 의해 설치된 갯말 앞에 있는 다리로 배나무골이 있고 또 한강물이 앞으로 흐른다 해 붙여진 이름으로 '이수교' 또는 '배물다리' 등이 있다. 

 

그밖에 국립묘지지 설치로 지금은 폐동이 된 상지목.티꿀산.당째(재) 등의 이름이 남아 있다. 이 마을은 한강을 지계선으로 과천의 과천의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의 공작봉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앞에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대안으로 하고 있고 호국영령을 모신 구립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국립묘지가 위치하는 공작봉은 천변만화에 전변기복이 수려하고 동기융결이 원만해 지맥이 방정하고 음양이 분명하며, 성신이 합치된 형세로서 한줄기 한줄기가 편편주옥으로 형성돼 있다. 

 

봉작봉 국립묘지 전체의 형국은 공작장익형이다. 다시 말해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잘 펴고 있는 형국이며 또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이기도 하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좌청룡의 세(勢)는 용이 꿈틀거리면서 강을 결하여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의 세는 금기의 호랑이가 머리를 순하게 엎드리고 머무는 형상이고, 안산을 보면 호필봉이 멀리 앞면 전체를 감돌아 주객이 다정하게 앉은 모양이며, 조산은 문필봉으로 높이 솟아 양각을 이루어 마치 물소뿔 모양으로 소년 선동이 달을 희롱하는 형국이다. 

 

또 수세는 서출동류로 합수가 돼 양수합금의 수법으로 되어 있다. 특히 한강물은 동출서류로 명주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꿈틀거리며 공작봉을 감싸고 흘러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산수의 명당에 자리잡은 것이 국립묘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조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을 제향하는 육신사가 있던 곳으로서 보훈충의가 깃들인 곳이다. 

 

창빈 안씨의 묘국립묘지내 이승만 대통령 묘소 상단 약 20m 지점에는 조선시대 중종의 후궁이며 선조의 생조모가 되는 창빈 안씨의 묘가 있다. 속칭 동작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숙종 9년(1683)에 이 능 아래쪽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이는 후궁완묘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나, 선조 이래 조선말까지 역대제왕이 그의 혈손이었던 까닭이 아닌가 한다. 

 

능에는 곡담으로 둘리워진 봉분 앞에 묘갈.혼유석.석등이 각각 1기씩 있고 석인 2구가 갖춰져 있다. 신도비는 숙종때 한성판윤을 지낸 분애 신정(1628-1687)이 지었고 글씨는 역시 한성판윤을 지낸 서곡 이정영(1616-1686)이 썼다. 이 묘비는 신도비와 함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돼 있다. 이 비의 특징은 비신이 몇몇 예에서만 보여지는 오사각형을 하고 있다. 



국립묘지 경내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사슴목장 위쪽 경찰탑과 박정희 대통령 묘소 중간지점인 305번지에 호국지장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해 갈궁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뒤 갈궁사는 폐허가 되다시피했으나 고려 공민왕 2년(1353) 보인대사가 다시 중건하고 화장암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선조 10년(1577)에 왕의 생조모인 창빈안씨의 묘소를 이곳 공작봉 기슭에 모시게 되자 화장암을 원찰로 승화시켜 화장사로 개칭하고 창빈릉의 조포사찰로 지정했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국립현충원 '호국지장사'(본지 2022.11.30.)/[천년 역사향기 30]  참조

 

그뒤 현종 4년(1663)에 중수했고, 철종 13년(1862)에 승려 운담.경해가 다시 중건했다. 4고종 7년(1870)에 경파루가 건립됐고, 1896년에는 칠성각이 건립됐다. 1920년에 대방을 중수했고, 1936년에는 능인전을 중수했다. 

 

능인보전에는 1994년 5월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지장사철불좌상특히 능인보전에는 1994년 5월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지장사철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철불은 지금부터 약 130여년 전에 국립묘지 앞 강변에 살던 한 어부가 한강에서 발굴해 이 절에 모신 것으로 좌고가 4척이고 무게가 100여관이나 되고, 고려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철불에 불공을 드리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어 한때 신도들이 많이 몰려들기도 했다. 

 

동작동의 교육기관으로는 경문고등학교와 동작중학교가 있다./사진-박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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