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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3] 홍성, 고암 화백의 생가 작은 마을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1-30 05:48:42
  • 수정 2023-03-02 11: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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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생가 [윤여금 기자] 이응노 화백은 (1904~1989) 충남 홍성군 중계리 평온한 작은마을에서 태어나 17세까지 자랐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해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남몰래 손가락으로 조약돌로 땅 위에 눈 위에 그렸고, 19세 1922년 서울로 상경, 일본, 프랑스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 그의 예술의 열정은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 멈추지 않고 그림 그리는 것은 언제나 그때처럼 행복했다고 밝혔다. 


                       ▲초가집 


    ▲생가


    ▲연밭 


홍성 고암생가기념관 김보경 학예연구사는 “중계리 고암 화백의 생가는 음의 기운이 흐르며 물이 흘러 나오는 남쪽의 백월산이 있고, 양의 기운이 있으며 물은 없고 돌과 바위로 우뚝 솟은 북쪽의 용봉산이 있다"면서, "이 용봉산과 백월산은 서로 돌을 던지는 싸움같은 마을놀이을 하면서 산의 높이가 서로 비슷해졌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고암 화백의 생가는 이응노 화백의 ‘초가집’ 작품 그림과 그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당시 ㄱ자 형태의 집과 논과 밭이였던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비스듬하게 넓은 잔디밭으로, 또 고암 화백이 ‘버드나무’ 사이에 ‘ㄱ자 모양’의  고향집이라 해서 조경에도 버드나무를 담아 복원했다”고 덧붙였다.


김 학예연구사는 “생가 앞의 넓은 연밭의 연못에는 수중생물들 민물새우 붕어 미꾸라지 등이 자연적으로 순환돼 살고 있다"면서, "봄이되면 철새들이 이곳에 날아와서 연밭사이로 두둥실 노닐며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나가는 자연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산수. 1969년. 한지에 수묵. 28*53

                                                                                                           ▲1940년대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119*30


                                                              ▲대나무. 1940년대. 한지에 수묵. 132.5*33.5


이응노 화백은 1922년(19세) 서울로 상경해 개강 김규진에게 문인화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1924 제 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풍죽’ 작품으로 첫 입선해 더욱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나무 숲이 광풍에 살아 숨쉬는 것, 생동감, 자기로부터 혁신의 예술의 정신을 깊이 깨닫고 스승의 그림자에서 전통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다. 


      ▲반추상. 1957년. 한지에 수묵담채. 49*64


      ▲군상. 1988년. 한지에 수묵담채. 42.5*51


이 화백은 1935년 일본으로 가서 대학이 아닌 사설강습소(가와바타 미술학교, 혼고회화연구소), 개인화실(마츠바야시 베이베츠의 덴코화숙)에서 서양화와 일본화를 배웠다. 실제로 보고 느낀 것을그대로 그리는 ‘사생’을 충실히 하면서 이시기 이응노는 서양의 스케치풍에 동양화의 필묵 맛이 결합한 신남화양식의 풍경화를 창작하면서 전통묵죽화가에서 현대미술가로 변모하게 됐다. 


                                                                 ▲문자추상 1969년. 나무. 22*88cm


                                    ▲문자추상 1970년. 한지에 수묵담채. 141*76


동양의 한자와 세계 문자의 시원을 연구하던 고암은 태피스트리, 헌 목재 나무가구, 양털, 솜, 한지꼴라주, 수묵, 나무조각,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독특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문자추상 작품을 제작해, 이응노의 근본이었던 동양미학을 근간으로 문자추상(composion)이라는 현대미술의 새길을 만들어내 유럽인들에게 높은 찬사를 받았다. 



또한 1964년 프랑스의 각계각층의 후원으로 파리시에 ‘파리동양미술학교’가 설립되면서 이응노 화백은 교수로서 동양 미술의 서예, 수묵, 산수를 푸른 눈의 제자들에게 깊이 있게 가르쳤다. 


이응노 화백의 붓은 대나무 잎에서 풍경으로, 서체로, 반추상, 추상으로, 붓질은 하난인데 천변만화하는 세상의 모습과 진리의 세계를 모두 담아냈다. 


한편, 이응노의집 창작스투디오는 작가들의 개인전 및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한 작가 기획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 5회 운영됐고, 20명의 작가를 만났다.

 

학예연구사 정보경은 “ 이응노의집 창작스투디오는 작가역량 중심에서 벗어나서 프로젝트 레지던시를 향하고 있으며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역과 타지역에서 온 예술가가 지역에 대한 주제를 통해서 예술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 과정이 창작스튜디오의 차별성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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