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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178] 허진수의 학문과 덕행 추모키 위해 창건한 '금산서원(琴山書院)'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2-07 07:58:23
  • 수정 2023-02-07 13: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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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금산서원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390에 있는 서원으로, 1707년(숙종 3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허진수(許進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키 위해 창건됐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毁撤)됐다가 1897년 강당을 건립했고 1906년 동재 및 문을 건립했고 1926년에 사우를 건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하정(下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고,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3,000여평, 임야 10정보, 대지 400평 등이 있다.


허진수(許進壽)의 자(字)는 사서(士瑞), 호(號)는 염호(廉湖),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했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렸고,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琴谷)이라 불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모사(景慕祠), 4칸의 수덕헌(修德軒), 3칸의 동재, 외문(外門),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고, 마루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재원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재원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는 곳이다.

 

사당인 경모사(景慕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이익공 양식을 취하고 있다. 장여를 화반이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초각돼 있고, 겹처마에 풍판을 달았다. 잘 치석된 원형초석에 원기둥을 세웠고, 기단을 시멘트로 보수, 처리했다.

 


강당인 수덕헌(修德軒)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5량가 가구구조이다. 이익공 양식이며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장여를 화반이 받치고 있으며, 전면에 원기둥을 세웠고 두께가 두꺼운 원형초석을 그 아래에 받쳤다. 기단은 시멘트로 보수, 처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배치형태는 양 끝에 1칸씩 방을 두었고,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다. 측면의 경우 2칸 중 1칸 반은 방으로, 반 칸은 마루를 깐 입면형태를 보이고 있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이다. 3량가 가구구조이며, 민도리 양식에 납도리를 사용했다. 전면에 각기둥을 사용했고, 문은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곳간은 동재의 남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판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이고 전면에 각기둥을 사용했다. 현판에 ‘명덕문(明德門)’이라고 쓰여 있는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민도리 양식이다.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에 망와를 사용하여 마감하였고, 전면에 각기둥을 세웠다./사진제공-(사)한국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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