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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0] 예산 덕숭산 수덕사(2),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2-18 15:47:54
  • 수정 2024-04-02 04: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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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덕숭산 남쪽에 자리한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에 말사를 약 50여 개 두고 있으며, 7대 총림 중 덕숭총림으로 백제 위덕왕(54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고찰로 추정되고,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을 모신 대웅전(국보49호)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1308년 (충렬왕 34년)에 건립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는 대웅전(국보)를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을 비롯한 백련당(白蓮堂).청련당(靑蓮堂).범종각(梵鐘閣).범고각.염화실(拈花室).조인정사(祖印精舍).무이당(無二堂).심우당(尋牛堂).황하정루(黃河精樓).천왕문.금강문.일주문(一柱門)의 당우를 갖추고 있고, 고려초에 제작된 삼층석탑이 있다.


     ▲일주문(修德寺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서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비롯됐다. 일주는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상징으로 일주문을 경계로 해서 문 밖을 속계(俗界), 문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세워진 것이다. 


건축양식은 다포(多包)형식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엄청난 지붕무게를 버텨야 하기 때문에 기둥이 굵다.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돼 있다.


(修德寺一柱門) 현판은 사찰의 주산(主山)이름을 함께 병기했고,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의 글씨로 이는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 선생의 계보를 이은 근대 서예의 대가이다. 


     ▲금강문


수덕사 금강문에 들어가면서 왼쪽은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고 오른쪽은 밀적금강(密迹金剛)이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서 힘이 세다하여 '나라연'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쥐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의 우두머리로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을 모두 듣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라면서 소리치며 공격형의 자세를 취해 '아금강역사'라 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채 방어형 자세를 취하니 '훔금강역사'라 부른다. 범어인 '아(A)'와 '훔(Um-)'은 영원, 완성, 조화, 통일, 성취, 시작과 끝 등의 신령스런 주문인 '옴'에 나온 말로써, '아(A)'는 시작이고, '우(U)'는 유지이고, '움(M-)'은 끝이며 또한 여운이다.





금강문은 정면 3칸중 가운데는 통로로 사용하고, 양측칸은 판벽으로 하고, 금강문의 공포는 1줄목 2익공이고, 석가래와 부연을 달은 겹처마를 구성하고 있다. 내부는 홍살을 세운 안쪽으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수미산이 상징하는 의미는 모든 구도자나 불자들이 부처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라야 할 고행의 상징적인 산이다. 이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신이 바로 사천왕이다. 동쪽은 인간의 선악을 분별해내는 지국천왕, 서쪽은 악한 말을 물리치는 광목천왕이, 남쪽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증장천왕이, 북쪽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즉 부처의 세계는 고행의 상징인 수미산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 중간에서 사천왕이 구도인의 선악을 가려내어 징계하는 한편 신심을 일으키도록 격려를 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사천왕이 있는 위치는 우리가 부처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해서는 악을 제어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단계이고, 사천왕문은 그런 단계를 통과해야 하는 마음의 중턱에 세워진 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사천왕상을 조성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이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은 수미산 중턱에서 동쪽 영역의 황금타(黃金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면서, 늘 인간들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땅을 지켜준다. 부처님 또는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국천왕에게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한 명을 받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국(持國)천왕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남방증장천왕 (南方增長天王)은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주는 천왕으로 수미산 세계의 남쪽을 영역 류리타(琉璃唾)를 관장하고,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을 소생시키고 덕을 베푼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웠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갑옷을 입고 칼을 쥐는 것으로 표현된다. 


     ▲ 서방광목천왕 (西方廣目天王)


서방광목천왕은 인간세계의 선과 악을 살펴 죄 지은 자를 벌로써 다스리고 반성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하고, 수미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백은타(白銀唾)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킨다.  매서운 눈을 부릅 뜨고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모습이다.


     ▲ 북방다문천왕 (北方多聞天王)


북방다문천왕은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암흑계를 관리하며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瞿盧州)를 수호하는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多聞天)이라 불린다. 다문천왕은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이다. 


     ▲ 수덕사 7층석탑 (예산군 문화재자료. 제181호.1984년 지정) 


칠층석탑은 1931년 만공대선사가 화강암으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돼 있다. 기단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했고, 면석은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는 옥신대신에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각 층의 면적과 지붕돌은 별개의 돌로 이뤄졌고, 면석마디에는 우주의 창방이 표현돼 있고, 지붕돌은 2단의 지붕돌 받침을 가지고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하다. 상층부에는 찰주 보주 보륜이 올려져 있다. 대체로 간결하며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코끼리석등


코끼리석등은 2002년에 세웠고 윗부분에 석등이 있고 아래를 코끼리가 받치고 있다. 


     ▲포대화상


커다란 포대화상 상은 9세기 말~10세기 초 중국 승려로 뚱뚱한 몸집에 포대를 메고 다니며 탁발했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고, 중국에선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화현했다고 해서 잘 모신다고 전한다.


     ▲황하정루(黃河精樓)


황하정루(黃河精樓)는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전위누각으로, 부처님의 정신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근역성보관이라고도 하며, 이곳은 1985년 불사를 시작해 1992년 준공돼, 1996년 법장스님에 의해 이전 개축했다. 지하는 박물관인 근역성보관이 있고, 지상1층은 스님들의 요사로 사용되고,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근역성보관에 소장된 거문고(예산군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고, 거문고는 만공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거문고에는 이조묵(李祖默)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 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불이문(不二門)은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며,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문'이라고 일컫는다. 이같은 불이(不二)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할 수 있으므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해탈문은 누각 밑을 통과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2층 누각'은 불법을 설하는 '강당'으로 사용한다.


불이문인 해탈문을 지나면 그 사찰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이 보인다. 불이란 둘이 아니라는 경지이다. 이 문을 본당에 들어서는 곳에 세운 것은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와 네가 둘이 아니요, 생과 사가 둘이 아니며, 부처와 중생,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색과 공,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이며,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불이가 하나를 뜻하는 것도 같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일 수도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개별성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는 평등과 자유 그 자체이다. 진정한 불이는 참된 해탈의 경지, 즉 언어를 넘어선 것에 있다.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한 숭산(崇山, 1927∼2004)이 1949년 고봉(古峰)에게 비구계를 받은 사찰이고, 우리나라 7대 총림(叢林)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으로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에는 1973년에 조성된 무게 6,500근의 종이 봉안 돼 있다. 불전 사물인 범종은 일체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 지혜증장하고 깨달음을 얻도록 울리고, 한 번 타종에 2분 30초 동안 울리며 30리 밖까지 들린다고 전한다.





     ▲법고각(法鼓閣)


법고각(法鼓閣)은 소리로써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불전 사물이다. 법고(法鼓, 축생의 무리에게), 목어(木漁, 수중의 생명에게), 운판(雲版,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봉안돼 있고, 아침, 저녁 예불 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의 순으로 친다.


     ▲ 청련당


     ▲ 백련당


청련당 백련당은 부처님을 보신 법당이 아니고 스님들이 기거하거나 수행하는 요사채이다.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1983년 지정)대웅전 앞에 자리한 고려시대 3층석탑으로 여래탑이라고도 불리운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는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만들어진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그 위로 보륜(寶輪:수레바퀴 모양의 머리장식)과 보개(寶蓋:덮개 모양의 머리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1.2층 지붕돌 귀퉁이 일부가 파손됐지만 전체적으로 각 부분이 균형을 이루어 안정감을 준다. 통일신라 문무왕 5년(665)에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통일신라 석탑 전성기에 비해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의 수가 줄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 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  (국보 제49호 1962년 지정) 고려시대의 불전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1940년에 수리했을 당시 나온 묵서명(墨書銘)에 건물의 건축년대가 확인 돼,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대웅전은 사찰 경내에서 가장 높은 대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다.


건축양식의 기단은 장방형의 화강석을 바른층쌓기로 6단을 쌓아 10척 높이를 이뤄졌고, 후면은 2단쌓기로 하고, 전면의 양측에는 계단을 설치했고, 건물은 전면이 3칸, 측면이 4칸인데, 평면으로 보아 전면과 측면의 비가 1 : 1.315가 되어 전면이 긴 장방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주심포계의 맞배지붕을 한 불전이다. 축대를 겸한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워 창방으로 기둥 윗몸을 결구하고 공포를 기둥 위에만 짜놓았고, 공포는 외2출목공포로 기둥 윗몸에서 헛참차가 나와 외1출목을 구성하고, 1출목 소로 위에 끝이 앙서된 살미첨차를 놓았다. 이 첨차의 기둥 안쪽은 보아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주두와 소로는 굽받침이 있고, 굽면이 곡면이다. 헛참차와 살미첨차의 밑면에는 연화두형수식이 있고 살미첨차의 위에는 소로를 놓아 퇴보머리를 받치는데 퇴보머리는 앙서형이다. 퇴보머리와 결구된 행공첨차와 그 위의 소로는 단장여를 받치고, 단장여는 다시 외2출목도리를 받치고 있다.


특징은 아름다운 우미량의 도리와 도리 사이를 결구하고, 종도리를 안으로 아름답게 휘어진 솟을합장으로 물고 있는 점이며, 장식적이고 화려한 조각과 아름다운 곡선을 보이는 부재 등은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예이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만공스님 대에 대웅전 전체를 해체 보수했다. 


창건 이후 한말에 경허(鏡虛)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광무 2)에 경허의 제자 만공(滿空)이 중창한 뒤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했다.



      ▲ 목조삼세불좌상 일괄(修德寺 木造三世佛坐像 一括)(2003년 지정보물 지정) : 3건


대웅전의 이 목조삼세불좌상 3구(보물)은 만공이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수덕사 대웅전(보물)에 모셔져 있는 목조 삼세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이다.


삼세불좌상은 수덕사의 중흥조(中興祖)인 만공(滿空)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으로서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돼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돼 있고, 네모꼴의 각진 얼굴에는 근엄한 듯 부드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가늘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 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눈.입.코의 표현, 양 손과 옷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약사불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 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비해, 아미타불은 약사불과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해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연(守衍)비구를 비롯한 7명의 화원(畵員)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須彌壇)은 고려시대 심원사(心源寺) 대웅전 불탁(佛卓)과 그 장엄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금강저(金剛杵).삽화병(揷花甁).목단(牧丹).운파(雲波) 등 안상(眼象) 조각에서 고려시대 불탁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수미단의 기초는 좌우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저면 약 30㎝ 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며, 그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대웅전 건립연대(1308)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수미단은 유일하게 대좌형 수미단을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어 공예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후령통(喉鈴筒) 및 오색실.복식 등이 있다. 전적류는 발원문을 비롯해 '묘법연화경'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 '불설관세음경' 등의 경전과 진언문 및 다라니로서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판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후령통 안에는 각각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5색의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금강저, 삼족(三足)과 육족(六足)의 번(幡)을 의미하는 형태의 직물이 들어 있었다. 오색실은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청색.흰색.홍색.자주색.황색의 실이다. 복식은 조선 중기 포(袍)에서 두루마기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모든 직물의 색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 중기 직물사 및 염색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修德寺蘆舍那佛掛佛幀) 보물 제1263호 1997년 지정 


노사나불괘불탱은 1673년(현종 14)에 제작된 괘불로서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12대 보살, 10대 제자 등이 그려졌다.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란 명칭이 머리광배에 기록돼 있고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 주존임을 나타내고 있다. 보관과 가슴에 달린 장식, 옷의 문양, 매듭 등이 화려함을 보인다. 이 불화는 십이대보살, 십대제자, 사천왕상 등이 노사나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십이대보살은 중단과 하단에 걸쳐서 배치돼 있고,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 제자상은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이 보이고 상단에 배치됐다.


조선 현종 14년(1673)에 제작된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이다. '원만보신노사나불'이란 존명이 기록돼 있다. 대형화면에 비로사나삼신불 중 보신불인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십이대보살.십대제자.제석천과 범천.사천왕상 등이 모두 입상으로 배치된 구도이다.


노사나불은 신체에 비해 두손을 크게 강조해 노사나불이라는 존상을 강조한 것으로 보관과 가슴에 장식된 영락과 두팔에 걸쳐진 천의와 하의의 문양, 매듭 등의 장식에서 화려함이 보인다. 



     ▲ 명부전


명부전은 선망부모 및 유연 영가의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생멸없는 진리를 깨우쳐 서방 국토 극락세계에 안주 하기를 발원하며 위패를 봉안한다.




삼성각이 전에 관음전이 자리했던 곳에 새롭게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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