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윤여금의 여행이야기 6] 옹봉산 용주사, 고려시대 석불좌상을 옮겨오다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2-22 03:54:42
  • 수정 2023-03-02 11:43:57

기사수정


[윤여금 기자] 옹봉산 줄기에 자리잡은 용주사는 매의 정기가 흐르는 곳으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불좌상이 옮겨와 자리하고 있다. 이 곳 일주문에 들어서면 대웅전, 산성각, 관음보살상, 연못 등이 아름답게 위치 해있다. 





     ▲옹봉사용주사








     ▲광경사지 석불좌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


광경사지 석불좌상은 원래 충남 홍성읍 대교리 광경사 터에 있던 불상이었으나, 1975년 홍성읍 내법리에 있는 용주사로 옯겨왔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불좌상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작은 편이고, 둥근 얼굴은 둥근데 사실미가 흐르며, 직선으로 뻗어나간 두 눈동자는 진주를 끼웠던 흔적이 남아 있고, 목에는 세개의 주름인 삼도가 있고, 양쪽 어깨를 감싼 옷 주름은 평행의 단을 이루고 있으며 석불좌상이 앉아 있는 자리는 연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사실미가 흐르는 얼굴 표정, 간략한 연꽃무늬 표현 등의 수법을 볼 때 고려시대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용주사 관계자는 “일본인은 일제강점기 시대 때 한국에 와서 살았는데, 그 일본인은 ‘들’에 버려져있던 ‘석불좌상’을 자기 집으로 가져와 모셨다. 대한민국이 8.15해방이 되자, 일본인은 쫒겨가듯 가야할 입장이 되어, 너무 무거운 석불좌상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불좌상을 담벼락 추녀밑에 눕혀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 한국의 젊은 보살이 이 집에 들어와 아이들도 낳아서 기르며 살 때에 그 아이들은 추녀밑에 ‘방치된 석불좌상’에 오르락 내리락 뛰어놀았다. 석불좌상을 이렇게 모시는 것이 보살은 부처님께 마음으로 죄송함을 금할 수가 없었고, 꿈도 사납고, 집안이 편안하지 않게 되자, 수소문을 해봐도 석불을 모실 적당한 곳이 없었다"면서, "어느 날 깊이 생각해보니, 스님이 생각에 떠올라서 그 당시 용주사 절을 찾아가 스님에게 석불좌상의 이러한 사연과 석불좌상을 모셔갈 수 없겠느냐고 말을 하자, 스님은 우리 절에서 부처좌상을 모셔야지 누가 모시겠느냐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당시에는 리어카나 우마차만 오갈 수 있는 좁은 길이였으므로 스님은 리어카에 무거운 석불좌상을 싣고 와 용주사에 단을 쌓고 모시게 됐다”는 인연을 전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