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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3] 장엄한 산맥이 뻗어내린 칠갑산의 장곡사, 자비한 약사여래의 예술적 모습! 마음길 계속 이어지는 천년고찰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3-04 10:00:39
  • 수정 2024-04-02 04: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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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산맥이 산정을 중심으로 7군데로 뻗어나간 아름답고 웅장한 칠갑산에 위치한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오랜 세월동안 변천돼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곳으로 나누어 자리한 특징 있는 사찰이다. 


상 대웅전(보물), 하 대웅전(보물), 설선당(유형문화재), 금동약사여래좌상(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미륵불괘불탱(국보) 상 대웅전의 바닥은 벽돌을 펴놓은 특이한 구조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장전, 응진전, 삼성각, 범종각, 운학루(雲鶴樓), 염화실 등의 당우를 갖고 있다.





     ▲범종각과 운학루









                                                                 

                                                              ▲하 대웅전(下 大雄殿) 조선중기. 목조(보물 제181호 1963.1.21.지정)


하 대웅전(下 大雄殿)은 조선 중기에 건립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돼 있다. 이 건물은 다포식으로 돼있다.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가 배치돼 있고, 중앙 칸은 간격이 넓어서 공포가 두 개 배치돼 있다. 자연석의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은 민흘림에 가까운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건물 안쪽에는 상대웅전이 전돌을 깐 것과 달리 마루를 깔았고,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 것이 보통인데, 이 건물 내는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 및腹藏遺物) 1346년(충목왕2)

                                              (금동.전체높이 88cm 국보 지정)


금동약사여래좌상은 하 대웅전에 모셔져있다. 약사불은 질병과 무지의 병까지 치료해준다는 불상으로 약단지를 들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의 형태가 뚜렷하고 앞에는 장엄구가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윤곽이 뚜렷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오른손은 감슴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손톱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두터운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쳤으며 배에는 치마와 띠 매듭이 율동감있게 나타냈다. 


1959년 불상의 내부 조사에 의해 1346(고려 충목왕 2년)에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물이며, 14세기 불상의 전형 양식이다. 이 시기 불상 중에서 예술적 조형성이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주조기술법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높이 평가되고, 약사 신앙을 알려 준 점이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화재청은 고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했다. 국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고려 후기의 유일한 금동약사불상이자 단아하고 정제된 당시 조각 경향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됐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가운데 약사발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 비례감이 알맞은 신체, 섬세한 옷 장식 표현 등 14세기 불상조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이때의 불상 가운데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닌 대표적인 작품으로 국보로 지정하기에 예술ㆍ역사ㆍ학술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전하고 있다.


청양 장곡사에서 나온 불상과 유물들로 국보 번호 지정제가 폐지된 이후 처음으로 지정된 국보이다. 본래 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보수과정에서 복장 유물이 나와 이들과 함께 묶어서 국보로 승격한 것이다.




                                                                                                                                            ▲지장전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대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 시현하여 영겁하도록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는 원을 세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또는 염라대왕 몸으로, 어떤 때는 지옥졸(地獄卒) 모습으로 나타나서 고통받는 지옥 중생에게 설법한다고 했다. 방위(方位)는 남쪽에 해당된다. 지장보살을 외호(外護)하는 관정대왕(灌頂大王)은 지장신앙이 성행하게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상 대웅전. 고려시대건립, 조선말기 중수(보물 제162호 1963.1.21.지정)


상 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말기에 고쳐지었다. 건물은 약간 높이 설치된 기단 위에 둥근자리가 있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다포식이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가 하나씩만 배치되는 등 주심포 양식(柱心包 樣式)의 특징도 갖고 있다. 기둥머리는 굽 받침과 같은 고려시대의 특징이 일부 있고,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이 보여,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석조대좌 위에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좌측으로는 철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상 대웅전의 바닥은  무늬가 있는 벽돌을 펴놓은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 철조비로자나불좌상및석조대석 전체높이 226cm, 불상높이 61cm

                                              (대좌 화강암 (보물 제174호 1963.1.21.지정)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좌상은 상 대웅전에 높은 석등대석(石燈臺石)위에 양쪽 발을 각각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결과부좌 (結跏趺坐)한 모습이다. 머리는 곱슬머리고, 얼굴은 이마가 좁은 느낌을 주며, 얼굴의 전체 모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진 삼각형의 모양이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 걸쳐있고,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나무로 새긴 배(舟形)모양이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연꽃무늬로 꾸몃고, 둘레는 불꽃 무늬를 새겼다. 대좌는 3단으로 하단은 엎어진 연꽃, 중단은 8각의 돌기둥, 상단은 위로 핀 연꽃을 화강석에 각각 새겨 조성했다. 대좌(臺座)에 비해 불상이 전체적인 모습이 약하고, 얼굴의 세부는 명확함이 약하다. 고려 초기 충북 괴산의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상 계열을 잇고 있는 철불로 중요시되며, 신앙적으로 의의가 깊은 불상이며, 전체적으로 신라 불상양식을 하고 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통일신라시대

                                                             (전체높이 232cm, 불상높이 91cm)(대좌 화강암) 

                                                             국보 제58호.1962.12.20


상대웅전의 석조대좌에 봉안된 철조약사여래좌상은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자리가 있다. 3단의 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 핀 연꽃, 하대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의 네 귀퉁이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중대는 전·후에 2개씩, 좌우에 1개씩의 안상을 조각 장식하여 화려한 느낌이 든다. 


불상은 대좌에 비해 작은 편으로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며 법의는 오른쪽 가슴이 드러난 우견편단이다. 오른손은 무릎에 놓았고, 왼손은 질병과 불치의 병까지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는 나무로 된 배 모양인데, 연꽃과 모란으로 장식한 두광과 신광의 주변을 불꽃문양으로 꾸몄다. 




     ▲ 설전당. 유형문화재. 조선중기. (제151호. 1997.12.23.지정)


설전당은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건축된 설선당은 하 대웅전과 같은 때인 조선 중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본래 정면 4칸, 측면 3칸의 ‘-’형이었으나, 건물의 남쪽과 서쪽으로 2부분을 승방으로 증축하여 현재는 ‘ㄱ’형의 맞배지붕으로 돼있다. 


건축양식은 세부 수법이 다포계 특징을 따른 주심포이며, 외부로만 2줄 목을 둔 공포의 돌출된 쇠서의 곡선이 완만하고 힘차게 뻗어있는 조선 중기의 건축특징이 나타난 훌륭한 건물이다. 기둥은 배흘림과 민흘림, 원통형 기둥으로 돼있다. 부엌인 남쪽 1칸은 맞배집부분을 고쳐 지은 부분이고, 여기에 동서로 서익사 3칸을 잇대어 늘려지었다. 서익사는 민간 주택구조를 취한 요사이다.  


                                      ▲ 미륵괘불탱. 1673년(현종14) (길이 8.69m 폭 5.99m)

                                                           (국보 제300호. 1997.9.22.지정)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를 거행할 때 본존불상 대신 법당앞에 높이 거는 불화이다. 미륵불은 석가 입멸 후 56억 7천년만년 뒤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중앙의 미륵존불을 중심으로 육대여래와 육대보살 제석(帝釋)과 범천(梵天) 등을 좌우대칭의 구도를 잡아 배치하고, 십대제자와 용왕과 용녀 등의 배치는 좌우대칭 구도를 벗어나고자 한 것이 보인다. 미륵불의 형상은 원형 두광과 거신광배를 하고 있고, 상체를 크게 묘사하고 길고 큰 두 손에 용화수 가지를 들고 서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마름모골의 화관에는 4구의 화불을 안치하고 영락과 꽃으로 장식하는 등 세부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하였다. 


1673년(현종14) 승옥(勝玉) 스님의 지도아래 철학 등 5인의 스님이 채색하였고, 대형의 삼베에 그렸다. 괘불은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의 내용을 따른 것이고, 미륵불이면서 석가모니불로 화현하여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영산대법회괘불탱화로 그린 것이 특이하다. 






     ▲ 응진전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웅진전이나 나한전이라 고도 한다.




                                                                                                                                           

     ▲ 삼성각


대웅전 뒤쪽에 삼성각 또는 삼신각, 어떤 사찰은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의 세 전각이 있다. 삼성각 안을 보면 칠성신과 산신, 독성신을 모시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신앙인 것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전통종교를 사찰부근에 삼신을 모신 것이다.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는 천신교 또는 신교라하는데, 천지인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소중히 하고 무병장수와 평화, 풍년을 기원했다. 


     ▲ 염화실 


염화실은 원래 사찰에서 가장 어른스님이 계시는 곳이다. 방장 또는 조실스님이 머무는 처소를 염화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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