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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4] 태화산을 품은 마곡사(1)...백범 김구의 발자취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3-07 23:55:26
  • 수정 2024-04-02 04: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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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태화산(泰華山 423m)을 품은 마곡사(麻谷寺)는 신라시대 640년 (선덕9)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로 봄경치가 아름다워 ‘춘마곡’ 이라는 별칭이 있고, 대한불교 조계종 25구 중 6교구이며, 우리나라에서 13번째로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된 산사승원 7곳 중 한 곳이다. 


마곡사(麻谷寺) 태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마곡천을 중심으로 가장 오래된 영산전(보물)을 중심으로 명부전(문화재자료) 산성각 군왕대(君王垈) 김구의 은신처였던 목련암 마애불 등이 남원구역에 자리하고, 대웅본전(보물)이 있는 북쪽에는 범종각 명부전(문화재자료) 대광보전(보물) 5층석탑(보물) 백범 자취가 남아 있는 백범당 등이 북원구역으로 나뉘어 두 사찰이 자리한 듯 각각 자리했다. 









    ▲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부처님의 공간이라는 경계를 표시하고, 일심(一心)을 상징해 기둥을 하나 설치한다. 마곡사 일주문(一柱門)은 측면에 기둥은 3개이나 칸을 구성한 것이 아니고, 일주(一柱)를 보조하는 기둥이므로 이는 기둥3 개가 아닌 보조기둥을 세운 일주문으로 본다.

일주문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돼있고, 기본적인 목조건축의 틀이 있으나, 보조기둥 상부에 출목창방을 설치해 건축물의 특징에 따라 응용해 구조적으로 안정돼, 개성있는 건축물로 선조들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삭발바위


삭발바위는 백범명상길을 거닐면 아름다운 강기슭의 바위로 김구선생이 삭발을 해 붙여진 이름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23세)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의 인연을 갖은 곳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는 1893년 동학에 입도했고, 황해도에서 선봉장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 이후 의병활동에 가담했고, 1896년 3월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살해한 후 투옥됐으나, 1898년 3월 탈옥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다니며 은신하다 1898년 늦가을! 공주 갑사에서 ‘이(李)서방’이라는 공주 사람을 만났고,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해 반년 기간 동안 승려생활의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봄! 마곡사를 떠나,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약 1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는 등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 백련암






     ▲ 산신각



     ▲마애불


목련암에서부터 7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애불은 참배하면 한 가지씩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어,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백련암






     ▲ 백범당


김구 선생은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적에 어지러히 걸어선 아니되겠지.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뒷 사람이 그대로 따를테니까.”라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백범 김구선생의 양옆으로 완장을 찬 좌익과 넥타이를 맨 우익을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평소에는 사상보다 하나 된 조국을 더 원했다고 전한다. 




김구는 은신처 백범당을 떠난 후, 50년 만에 다시 찾았고, 그때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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