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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사찰 99] 계룡산 서쪽에 위치해 천년고찰 고유의 역사를 갖는 갑사(1) ' 대적전'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4-06 22:14:49
  • 수정 2024-04-02 04: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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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국립공원 계룡산 서쪽에 자리한 갑사는 통일신라 후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크게 번성했을 당시 대웅전이 지금의  대적전 자리에 있었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 일본군에게 약탈당하고 불타버렸고, 그 후 병자호란과 화재를 겪으면서 이 자리에 대적전이 들어섰다. 


갑사 대적전(甲寺大寂殿)은 1654년을 전후로 다시 고쳐 지어졌고,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모셔있고, 주변에는 승탑(보물), 철 당간지주(보물), 공우탑 등이 자리했다.










      ▲ 갑사 대적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대적전(甲寺大寂殿)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대적전이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부처를 모시는 단에는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상을 모셨다. 갑사는 통일 신라 후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크게 번성했는데, 당시 '대웅전'이 이 자리에 있었다. 주변에 남아 있는 주춧돌이 옛 건물의 흔적이다. 갑사는 억불하던 조선 시대에도 잘 유지됐으나,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 일본군에게 약탈당하고 불타버렸고, 그 후 병자호란과 화재를 몇 번 겪으면서 가람 배치에 변화가 생기며, 대웅전 자리에 '대적전'이 들어섰다. 


대적전의 현판에 ‘도광육년사월 목암서’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순조 28년(1826)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매우 화려하고 건물 내부를 보면 부처를 모신 단위에 전장을 한단 더 높여 '닫집 효과'를 내고 있다.





     ▲ 공주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8호)



    

공주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뤄져 있는 불상이다. 갑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1654년 (효종 5년)을 전후로 다시 고쳐 지었다. 삼존불은 이때 함께 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서방의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목에는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새겨져 있고, 옷 주름은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돼 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관음보살은 보관에 아미타불을 새겨 넣었고, 배와 양 무릎에 꽃 모양의 장식을 단 화려한 천의를 입은 채 미소를 띠고 있다.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보배 병이 새겨져 있고, 여래가 입는 단순한 형태의 대의를 걸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삼존불의 넓적하면서 편평한 얼굴 표현과 균형 잡힌 몸, 협시보살이 옷을 입고 있는 착의법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점 등은 17세기 중반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진 불상의 특징이다. 


     ▲ 공주 갑사 승탑 (고려 시대) (보물 제257호)


     ▲공주 갑사 승탑 '동자와 사자상' / 사진 문화재청



     ▲ 공주 갑사 승탑 (고려 시대) (보물 제257호)


     ▲ 공주 갑사 승탑 '기단부' / 사진 문화재청




승탑은 훌륭한 승려의 사리를 담은 탑으로 신라 말 고려 초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승탑은 갑사 외에 대안사, 쌍봉사, 실상사, 보림사에도 남아 있다.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뤄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 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위 받침돌로 나눠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 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했고,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 받침에는 귀퉁이마다 꽃 모양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위 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졌고,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 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고,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 시대 승탑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힌다.








       

     ▲ 공주 갑사 철 당간(통일신라시대) (보물)


공주 갑사 철 당간 (公州 甲寺 鐵幢竿)은 깃발을 달아 두는 깃대이다. ‘당’은 깃발을 ‘간’은 긴 기둥인 장대를 말한다. 당간은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는데, 갑사에 있는 당간은 철로 만들어서 '철 당간'이라고 부른다. 갑사(甲寺) 동남 쪽 기슭에 있는 철당간은 통일신라 중기 문무왕 20년(680)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 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했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전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고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다.


이 철 당간은 1893년에 벼락을 맞아 28개의 통 중에 4개가 사라져 현재의 모습만 남게 됐으나,  통일신라 시대 만든 유일한 당간으로 가치가 높다.




     ▲ 갑사 공우탑


갑사 공우탑은 소의 공적을 기린다는 의미로, 갑사 공우탑은 조선 후기 갑사 중건 과정에 얽힌 전설에서 비롯됐다.


갑사는 나라에서 토지를 내려줄 만큼 크고 중요한 사찰이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 몇 채만 남았다. 선조 (1604) 37년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대웅전과 진해당 등을 다시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주지 스님의 꿈에 항소가 나타나 사찰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날 이후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매일 공사에 필요한 재목을 등에 싣고 왔다. 갑사가 완공 되는 날 갑자기 소가 죽었고, 이에 스님들은 갑사 중건에 도움을 준 소의 공을 기리고자 이 탑을 세운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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