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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15] 봉수산 봉우리를 둘러싼 백제의 ‘임존성’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4-27 05:08:18
  • 수정 2023-06-10 20: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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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충남 예산 임존성은 백제 때 수도 경비의 외곽기지 역할을 한 성으로, 봉수산을 에워싼 둘레 2468.6m의 뫼테식 산성으로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성벽의 바깥쪽은 돌을 다듬어 쌓았고, 안쪽은 흙을 파서 만들어 놓았다. 성내는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게 하던 수구문, 우물터, 건물터, 치 등이 남아있다.

 

    ▲ 예산 임존성(禮山 任存城)(사적 제90호)


임존성(任存城)은 예산군 광시면.대홍면과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봉수산(해발 483.9m) 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를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다. 임존성은 둘레가 2468.6m(GPS측량값)이고 면적 553.697제곱m이다. 성내 시설로는 문지 2곳,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적대 1곳, 치 4곳, 배수고 1곳, 우물 3곳과 여러 곳의 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삼국(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 자기편, 기와편 등이 있는데, 특히 그 중 ‘임존’ 또는 ‘임존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이곳이 임존성임을 뒷받침한다.


임존성은 ‘삼국사기’와 ‘구당서’ 등에 의하면 ‘백제의 장수 흑치상치가 임존산에 울타리를 쌓고 당나라의 유인궤에 맞서 싸운 곳’으로, 백제의 왕자들이 모두 항북했으나, 장수 지수신만은 항복하지 않고 지켜낸 곳이라고 전한다.


‘신증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에도 비슷한 내용을 전하는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전투를 벌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임존성은 백제가 도성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 요충지에 쌓은 거점 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중요하게 사용됐다. 


    ▲ 임존성 백제복국운동기념비


임존성의 가치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 백제인들이 사비성을 되찾기 위한 부흥운동을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까지 부흥군의 항거했던 근거지이다. 백제의 부흥은 실패했으나, 이성에서 흑치상지(黑齒常之)를 중심으로 백제의 부흥정신이 깃든 곳이며, 또한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이 곳에서 전투를 벌였던 유서깊은 곳이다.



     

     ▲ 남문지 




   ▲ 배수고 




    ▲ 우물 


     ▲묘순이 바위


# 묘순이 바위의 전설


옛날 대흥현 고을에 힘이 장사인 남매가 살았다. 이 당시는 남매 장사가 같이 살 수 없던 시대였으므로 둘 중 한명은 죽어야하는 운명으로 남매는 목숨을 걸고 시합을 한다. 누이인 '묘순이'는 성을 쌓고, 남동생은 한양에 다녀오는 시합이었다. 묘순이는 남동생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성을 쌓았으며 이제 바위 하나만을 올려놓으면 성이 완성될 무렵 묘순이 어머니는 한양에 간 아들이 시합에 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해서 먹인다. 종콩밥을 거의 먹을 무렵 남동생이 성 가까이 온 것을 본 묘순이는 깜짝 놀라 마지막 바위를 옮기다가 그만 바위에 깔려 죽었다는 설화다. 지금도 '묘순이 바위'를 돌로 치면 "종콩밥이 웬수다"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생각하는 남존여비사상의 서글픈 전설이다. 



    ▲ 북서치 



     ▲ 북문지





    ▲ 북동치



    ▲ 건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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