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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의 여행이야기 18] 청양 백화산(白華山) 기슭에 위치해 있는 ‘운장암’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5-19 17:59:57
  • 수정 2023-06-10 20: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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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금 기자] 청양 금동관음보살좌상(靑陽 雲藏庵 金銅觀音菩薩坐像)(보물)은 원래 운장암 앞의 골짜기 길가에 놓여있었는데, 1900년경 운장암을 중수하면서 모셨다.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고려후기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나타내 보인다. 관음전, 요사채 등이 자리했다.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백화산(白華山) 기슭에 있는 운장암은 창건주와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이 절에서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나 확실하지 않으며, 창건 이후부터 고려시대까지 절의 내력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의 유물이 남아 있어 당시에도 사세가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사됐다고 하며, 1900년경에 절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장암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보살상에서 나온 복장유물로 1305년(충렬왕 31)에 청주 원흥사에서 개판된 '불설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佛說金剛般若波羅蜜多心經)'이 있고, 조선시대에 간행된 '수능엄경의해(首楞嚴經義解)'(1462년)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1528년), '다라니경(陀羅尼經)'(1528년) 등이 있는데 불교사적으로 가치가 큰 유물이다.















      ▲ 청양 운장암 금동관음보살좌상 (靑陽 雲藏庵 金銅觀音菩薩坐像) (보물) 


고려말 ~조선 초기에 조성된 청양 운장암 금동보살좌상은 원래 운장암 앞의 골짜기 길가에 놓여있었는데, 1900년경 운장암을 중수하면서 모셨다고 전한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후기(14세기)에 유행했던 금동보살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으로 관음전에 본존불로 봉안해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이 형식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머리는 상투 모양(육계)으로 묶어 올렸고, 몇 가닥의 머리카락은 어깨와 앞뒤로 가지런히 늘어져 있다. 



얼굴은 눈.코.입이 잘 조화를 이루고, 살이 많은 네모형이다. 목은 수행의 단계를 표현한 삼도(三道)가 있고, 가슴에 화려한 목걸이 장식이 있다. 


 

배 위에는 속에 입은 옷을 묶은 띠매듭이 있고, 옷은 양쪽어개를 감싸서 무릎까지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으며 불상의 뒷면에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고, 양 무릎 위에까지 표현된 화려한 구슬장식 등이 특징이다.


불상의 옷 표현중 특징적인 것은 왼쪽가슴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긴 삼각형 모양의 내의 장식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고려불화에서도 확인된다. 








가슴 부분까지 들고 있는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가 닿을 듯 구부리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운장암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보관은 후대에 보수돼 이를 제외하면, 이 불상은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고려후기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인다.


이 보살상과 비슷한 유형으로는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과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금동보살좌상, 양평 용분사 금동보살좌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운장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978년 12월 30일 운장암 철보살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됐고, 1989년 4월 10일 운장암 철보살좌상 보물 제986호로 승격 지정됐고, 2006년 1월 17일 청양 운장암 금동보살좌상 보물 제986호로 지정 됐고, 2020년 10월 청양 운장암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 제986호로 지정됐으며, 규모는 99cm이다.


운장암 관계자는 “78년도에는 철보살좌상으로, 2006년에 금동보살좌상으로, 2020년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보물로 지정됐으나, 지금은 쇠를 철로만 본다. 그러나 한자는 (金)쇠금으로 쓴다. 쇠라고 써있었던 것을 그냥 철로도 쓸 수 있겠구나”라면서, “오래된 역사 기록의 정확한 자료가 없어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재청 제공


이어 운장암 관계자는 “운장암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백의 조성은 자문위원은 일제 강점기때 하얀색 칠하는게 유행이었으므로 인해 그 때 칠했다고 확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서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그때 하지않았나 생각한다.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복장유물을 사진 찍어 관음전에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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