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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월대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은 활용됐다...궁중 차양 고정쇠 발견
  • 이승준 기자
  • 등록 2023-05-31 10:12:26
  • 수정 2023-12-21 15: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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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硏...조선 전기 문화층 추가 발굴

광화문 월대 조선 전기 유구 중 차일 고정 쇠고리 흔적이 확인됐다.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 쇠고리(차일고리) 형상./사진제공=문화재청[이승준 기자]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월대 이전에도 광화문 앞에서 다양한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기 흔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광화문 월대 복원 정비를 위해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종년간보다 앞선 시기 유구 흔적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광화문 앞 공간의 조선시대 전기 활용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으로만 확인해오다가 이번 발굴조사로 물적 증거까지 확인한 것이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1442년)에 의하면 “광화문 밖 장전(왕의 임시 자리)에 납시어 무과 시험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중종실록(1539년)에도 “광화문 밖에 이르러 산대놀이를 구경하고 한참 뒤에 들어왔다”고 쓰여있다.


이번 조사로 광화문 앞 공간 퇴적 양상은 자연층에서 조선 전기 문화층(14~16세기) 조선 중·후기 문화층(17세기 이후), 월대 조성층(19세기)을 거쳐 근현대도로층(20세기)순으로 형성됐음을 재확인했다.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와 조선 전기 유구/사진제공=문화재청조선 전기 문화층은 앞서 2007년 발굴 때도 확인됐지만 이번에 발굴된 유구는 고종년간 월대의 어도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있는 조선 전기 문화층 최상단에서 확인됐다. 사각형 석재 1매(76×56×25㎝)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북 방향 석렬이 각각 한 줄씩 배열된 양상이며, 방형 석재의 중앙에는 지름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었다. 


이런 형태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며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인다. 양쪽 석렬 잔존 너비가 약 85㎝로 길이 20~30㎝의 크고 작은 석재가 일정 너비로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형태이고, 동쪽 어도지 하층 탐색 구덩이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된 점에서 고종년간 월대의 어도지 하층에 전체적으로 유사한 양상의 조선 전기 유구가 분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조선 전기부터 바닥에 돌을 깔아 축조하는 방식의 시설을 갖추고 다양하게 활용했으나,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기능이 상실되면서 방치되다가 고종년간 중건하면서 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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