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윤여금의 여행이야기 22] 겨레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영혼이 깃든 ‘홍성 홍주의사총’
  • 윤여금 기자
  • 등록 2023-06-06 16:55:39
  • 수정 2023-06-10 20:48:08

기사수정


[윤여금 기자] 충남 홍성 홍주의사총(사적 제431호)은 을사늑약 이후 홍성지방은 민정식을 중심으로 홍주의병들이 홍주읍성을 탈환했으나, 일본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때 전사자의 유골을 모신 묘소이다.  창의사(사당), 홍주의병기념탑, 등이 자리해 있다. 




    ▲ 창의문



      ▲ 홍성 홍주의사총(洪城 洪州義士塚)(사적 제431호) 면적 36,229㎡


한말 을사늑약 이후 항일구국운동 가운에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성전투에서 전사한 수백 의병들의 유해를 홍성군 홍성읍에 모신 묘소이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나자, 1906년 3월 충청남도 홍성지방에서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한 홍주의병은 홍주읍성을 공격 했으나, 뜻을 이루지를 못했다. 


같은 해 5월 9일 홍산(현 부여군 내산면)에서 다시 일어나 서천, 비인, 남포, 결성을 차례로 점령하고, 홍주 삼신당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면서 , 20일 홍주읍성을 탈환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포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31일 새벽 동문에 이어 북문이 폭파되고, 일분군의 화력에 밀린 홍주의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홍주읍성에서 물러났다. 이때 전사한 시체가 홍주읍성과 홍성천 주변에 흩어져 방치돼 있던 유해는 1949년 이후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져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습돼 이곳 홍주의사총에 모셨다. 



홍주의병의 핵심적 연구자료인 <홍양일기>, <홍양기사>, <조선최근사> 등의 자료에 의하면, 홍주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 전사자는 최소한 80여명 이상, 최대 수백명에 이라고 기록됐다.



묘는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고, 묘의 오른쪽에는 정인보가 짓고 심상직이 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 진충문



     ▲ 창의사



사당인 창의사(彰義祠)에는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해 있어 ‘구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을 바궜다.


매년 5월 30일 순국의사 추모제를 올리고 있고, 을미의병으로부터 연면히 계승되어 온 한말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유적이다.




      ▲ 홍주의병기념탑


성역화가 추진돼 지금은 의사총을 중심으로 ‘창의사’, ‘홍주의병기념탑’, ‘숲길’ 등이 조성돼 있다.


      ▲ 숲길

1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한국의 전통사찰더보기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조선왕릉 이어보기더보기
 한국의 서원더보기
 전시더보기
 한국의 향교더보기
 궁궐이야기더보기
 문화재단소식더보기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