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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5] 정소 등의 유풍을 기리는 '곡수서원[曲水書院]'
- [이승준 기자] 곡수서원은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정소(鄭沼)[1518~1572], 정자(鄭滋)[1515~1547], 조대성(趙大成)[1520~1566]의 유풍을 ...
-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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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4] 배숙의 학덕 기리기 위해 건립한 ‘미강서원[美岡書院]’
- [이승준 기자] 미강서원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미강서원(美岡書院)은 매곡(梅谷) 배숙(裵璹)[1516~1589]의 학덕을 기리...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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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3] 전남 문화재료로 지정된 '용강서원[龍堈書院]'
- [이승준 기자]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용강서원은, 1821년(순조 21) 학포 양팽손과 장춘 양신용을 추모키 위해 지방 유림이 창건했다. 처음...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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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2] 김굉필을 추모키 위해 창건한 ‘옥천서원(玉川書院)’
- [이승준 기자] 옥천서원은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조선전기 김굉필을 추모키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1564년(명종 19)에 순천부사 이정(李楨)을 중심으로 한 지방...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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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1] 옥천조씨 3세를 배향하고 있는 '겸천서원'
- [이승준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인 겸천서원(謙川書院)은 조유(趙瑜).조숭문(趙崇文).조철산((趙哲山) 등 옥천조씨 3세...
-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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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20] 박세희 등 3인의 유풍 추모키 위해 건립한 '이천서원'
- [이승준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흘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인 이천서원(伊川書院)은 조선 중기의 문신 박세희(朴世熹)[1491~1530].박증손(朴曾孫)[1496...
-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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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9] 영광정씨, 정극인.정숙.정승조 배향하는 ‘율봉서원[栗峰書院]’
- [이승준 기자]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 간동마을에 있는 서원으로, 정극인.정숙.정승조 등 영광정씨 3인을 배향한다.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 정극인(...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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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8-안동시 편(3)] 퇴계 선생이 왕래하면서 강학하던 서재에서 비롯된 ‘창열서원’ 外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단됐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대략 500여 개의 서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이러한 서원...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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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7-안동시 편(2)] 퇴계 선생이 왕래하면서 강학하던 서재에서 비롯된 ‘유암서원’ 外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단됐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대략 500여 개의 서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이러한 서원...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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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6-안동시 편(1)] 안동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 ‘호계서원’ 外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과 8편에 이어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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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5-서원에 대한 이해] 경북도 안동 지역에서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치된 조선시대 사립교육 기관 ‘서원’
- 도산서원 전경[이승준 기자] 숭유 정책을 국시로 내세운 조선왕조는 성균관과 향교 등을 설립해 유학을 적극적으로 보급했으나, 15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관학...
-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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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4] 경남 함양군의 서원들(2)...송호서원.청계서원 등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과 8편에 이어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 20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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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3] 경남 함양군의 서원들(1)...구천서원.도곡서원 등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꽈 8편에 이어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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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2]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 추모키 위해 지은 '남계서원'
- [이승준 기자] 경남 함양 남계서원은 조선 시대 동방 5현 및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했다. 함양 남계...
-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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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1] 김인후와 그의 제자 양자징을 배향하고 있는 ‘필암서원’
- [이승준 기자] 필암서원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서원으로, 호남 지방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와 그의 제자...
-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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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10] 조선 전기의 명유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 ‘도동서원'
- [이승준 기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동에 있는 서원. 조선 전기의 명유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1604년(선조 37)에 건립됐다. 보물 제350호로 ...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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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9]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곳, 한국정신문화의 성지 '도산서원'
- 안동 도산서원 [이승준 기자]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키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
-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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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8 정읍시편] 전북 정읍시의 서원들...동죽서원.도계서원 등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부터는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편집...
-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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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7] 신라말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 세운데서 유래한 ‘무성서원’
- 무성서원 전경/사진출처-문화재청 [이승준 기자] 세계유산은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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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서원 6 부여편] 백제의 마지막 수도(사비성)인 부여군의 서원들...퇴수서원.동곡서원 등
- [이승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지했던 본지가 다시 한국의 서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6편부터는 지역별 서원들을 종합 편집...
- 2022-07-04
- 박정기의 공연산책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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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기의 공연산책 348] 박정기의 공연산책 극단 이루의 손기호 작 연출의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
- 씨어터 쿰에서 극단 이루의 손기호 작 연출의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를 관람했다손기호는 경주 출생. 안동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연출을 배웠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 '부부 쿨하게 살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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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기의 공연산책 347] 강북연극제 창작집단 혜화살롱, 김진아 연출 '엄마집'
- 강북문화예술회관 진달래홀에서 강북연극제 창작집단 혜화살롱의 김정숙 작 김진아 연출의 엄마집을 관람했다.김정숙 작가는 고교시절 연극 동아리 인연 창작극회서 배우 활동 / 현재 극단 무대지기 대표로 극작과 연출로 지평 확대연기에서 극작·연출까지 지평을 넓힌 극단 ‘무대지기’의 김정숙 대표(38). 그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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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기의 공연산책 346] 극단 공연배달탄탄, 이자순 연출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 미미지아트센터 눈빛극장에서 극단 공연배달탄탄의 이강백 작 이자순 연출의 를 관람했다.이강백(李康白)은 1947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했다.이후 이강백은 1970년대의 억압적인 정치사회 상황하에서 제도적인 폭압 체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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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기의 공연산책 345] 서울시극단, 고선웅 각색/연출 '욘 John'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박정기의 공연산책 서울시극단의 헨리크 입센 작 김미혜 역 고선웅 각색 연출의 욘 John을 관람했다,욘 가브리엘 보르크만(John Gabriel Borkman)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96년에 쓴 희곡이다.젊은 시절 부와 명예만을 좇았던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은 사업에 실패한 뒤 스스로를 다락방에 유폐하고 두문불출.